국가인권위 조사, 찬성 46.1% 반대 52.1% 헌재판결 기대

예비군 훈련에 불참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청주지법이 무죄 판결을 내렸다. 그동안 입영을 거부한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무죄판결을 받는 경우는 더러 있었지만, 예비군 훈련 거부자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은 두번째다. 

2004년 서울남부지법에서 무죄 선고를 한 이후 13년 만의 일이다.청주지법 형사4단독 이형걸 판사는 15일 향토예비군설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유모(34)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유씨는 지난해 3월께 정당한 사유 없이 예비군 훈련에 불참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이 판사는 "기본권 보장을 위한 대안 마련이 필요하고 그것이 가능한데도 국가가 아무런 노력 없이 일방적으로 양심에 따른 예비군 훈련 거부자에게 형사처벌만을 감수하도록 한다면 헌법에서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하는 결과가 된다"며 유씨의 손을 들어줬다.

성인 남자에게 병역의 의무를 지운 우리나라는 집총을 거부하고 인명살상 훈련을 거부하는 행위를 법으로 처벌해 왔다. 하지만 자신의 종교와 양심에 따라 대체복무를 요구하는 병역거부에 대해 사회적 판단이 바뀌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10일 공개한 ‘국민인권의식 조사’결과를 보면 뚜렷한 변화를 알 수 있다.

최초 조사했던 2005년 당시엔 양심적 병역거부 찬성(10.2%) 보다 반대(89.2%)가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6년뒤인 2011년엔 찬성 33.3%, 반대 64.1%로 찬성 의견이 크게 늘었다. 이어 2016년 조사 결과는 찬성 46.1% 반대 52.1%로 찬반 의견이 대등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군대내 인권침해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고 국민들의 기본적인 인권의식이 향상된 탓으로 분석된다. 

법원 ‘타협판결’ 자성 목소리

지난 15일 청주지법 무죄판결도 5일전 국가인권위원회의 이같은 인권의식 조사결과에 영향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법원 판결은 국민인권의식 변화처럼 처벌불가 쪽으로 전향적인 변화가 이어져 왔다. 지난해 10월에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항소심에서 첫 무죄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 광주지법 형사항소3부(부장판사 김영식)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 A씨에 대해 원심대로 무죄를 선고하며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해 우리 사법부는 그동안 '타협 판결'을 했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현행 병역법 88조는 현역 입영 또는 소집통지서를 받고 정당한 사유 없이 불응하면 3년 이하 징역형에 처하도록 되어있고, 예비군 훈련 거부자는 향토예비군법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1천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과거에는 이 법조항을 근거로 군 입영 거부자의 경우 복무 기간에 상응하는 1년 6월 이상의 실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법원의 무죄 판결이 점점 늘어나 2015년 5월 이후에만 광주지법 7건, 수원·인천·청주지법 각 2건, 부산·전주지법 각 1건 등 모두 15건이나 된다.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인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만도 40여건에 이른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판결이 이어지면서 이 법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도 계속됐다. 이미 헌법재판소는 2004년과 2011년 두차례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합헌 판결 이후 2016년까지 법원 6곳이 병역법 88조에 대해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했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청구한 헌법소원도 22건이나 된다. 그중 2015년 실형을 선고받은 3인에 대한 헌재의 3번째 위헌법률 심판이 진행 중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미 2005년“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것은 보편적 인권인 양심인 자유를 침해한다”는 공식 입장을 낸 바 있다. 헌법재판소에도 “대체복무제로 국방의 의무와 양심의 자유를 조화롭게 해결할 수 있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에대해 국방부는 지난 2007년 ‘병역이행 관련 소수자의 사회복무제 편입 추진 방안’에 한센·결핵·정신병원 등 전국 특수병원 9개소와 국·공립 노인전문요양시설 등에서 출·퇴근 없이 헌역병 복무기간 18개월의 두 배인 36개월 복무 방안을 제시했다가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철회한 바 있다.

국방부, 대체복무안 작성후 폐기

불발로 끝나긴 했지만 당시 국방부의 안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병역거부권 인정 대상을 '종교적 사유'만으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평화주의자의 신념만으론 인정할 수 없고 특정 종교에 대한 활동이력이 뒷받침 될 때만 인정하겠다는 입장이었다.

또한 대체 복무 기간을 일반 현역병의 2배 수준인 36개월로 정한 것도 문제였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대체복무 기간이 현역복무 기간의 1.5배를 넘으면 징벌적 수준에 해당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병역거부자들의 대체복무는 평화적 신념에 대한 권리로서 보장해야할 문제이지 병역거부에 대한 징벌이 되어선 안된다는 것이 찬성론자들의논리다.

국방부에 따르면 종교적인 문제 등으로 입영을 거부한 대상자는 지난 2006년 이후 10년간 5723명이다. 해마다 600명 정도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발생하는 것이다. 충북지방병무청이 올해 지역내 사회복지시설,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공단체 등 485개 기관에 배정한 사회복무요원(옛 공익근무자)은 906명이다.

전국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다 합쳐도 충북도내 병역대체근무자인 사회복무요원 인원보다 적은 셈이다. 특히 청년실업과 함께 입영 대기자가 늘어난 상황에서 정부 차원에서도 대체근무를 적극 활용할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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