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강희의 同床異夢

▲ 홍강희 편집국장

행자부가 큰 망신을 당했다. 지난해 12월 29일 행자부는 ‘대한민국 출산지도’ 서비스를 내놓고 거센 비난을 받았다. 지도에서 지역별 합계출산율, 출생아수, 조혼인율, 가임기 여성수를 한눈에 확인하라는 게 출산지도이다. 특히 가임기 여성 수를 지역 별로 구분해 지도에 기재한 내용이 화를 돋구었다. 급기야 여성계는 지난 6일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우리는 출산기계가 아니다”며 시위를 벌였다. 여성에게만 출산 의무를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는 게 여성계 주장이다.

이런 풍자까지 나왔다. “서울지역 가임기 여성 198만5977명으로 전국 2위. 나는 198만5977호 자궁인가?” “니들이 별짓 다 해봐라. 내가 애낳나. 진짬뽕 사먹고 말지” “저출산 문제를 여성에게만 책임지울 일인가. 정부 하는 꼴 보면 아이낳고 싶겠니?”

그러자 행자부는 홈페이지에 게재했던 출산지도를 삭제하고 해명글을 올렸다. “대한민국 출산지도는 국민에게 지역별 출산통계와 출산 관련 지원혜택이 무엇이 있는지 알리기 위해 제작한 것으로 공식적인 주요 통계와 용어를 활용했다. 출산지도 홈페이지를 수정 작업 중에 있으며, 더욱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실제 우리나라 낮은 출산율은 대한민국 행정부가 이런 아이디어를 짜낼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됐다. 그럼 여성들은 왜 아이를 낳지 않는가. 한마디로 여성들은 몇 년전부터 출산파업을 벌였다. 여성들이 다같이 모여서 파업하자고 한 적은 없지만 자연스레 아이를 낳지 않는 시대가 됐다. 왜? 이 나라에서는 아이를 행복하게 키울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일단 아이를 낳으면 안심하고 맡길 곳이 없고 사설 어린이집 보육료는 너무 비싸다. 학교를 가면 공교육·사교육비가 너무 많이 들어가고,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피터지는 경쟁을 해야 한다. 그렇게 대학을 들어가 간신히 졸업해도 취직 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취직을 해서 결혼을 해도 집 장만 하기가 어렵다. 노후도 불안하다. 물론 어느 시대에나 이런 문제는 있었다. 하지만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어 내 아이가 미래에 겪을 일을 생각하면 아이 낳을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지자체가 실시하고 있는 출산장려금과 몇 가지 지원대책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출산율이 약간 올라갈 수 있으나 근본대책은 되지 못한다. 전남 해남군은 예산을 쏟아부은 덕분에 전국에서 가장 높은 출산율을 자랑하나 아이들이 학령기가 되면 도시로 빠져나오는 인구 때문에 결국 큰 도움이 못된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교육·복지·환경·여성정책이 개선되고 살기좋은 나라가 되면 여성들은 자연스레 아이를 많이 낳을 것이다. 정부는 단편적으로 출산율만 올리려고 하지 말고 살기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정의와 질서와 가치가 무너진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운 게 요즘 심정이다. 나도 어디 이민가서 터잡을 데가 있으면 당장 떠나고 싶다. 이런 판국에 가임기 여성 숫자를 세어서 뭐 한단 말인가. 아무리 탁상행정을 한다고 하지만 이건 빗나가도 한참 빗나갔다. 나라가 바로서고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올라가야 출산율도 상승한다. 억지로 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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