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과 부엌 분리로 불편… 김치없는 식탁 우울하지만 밥 맛 좋아
각종 동물·벌레와 같이 지내, 청소해도 바로 먼지와 죽은벌레 투성이

안남영의 赤道일기
전 HCN충북방송 대표

“쯔쯔쯔찍,쯔쯔쯔찍”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울음소리는 여기저기서 호응하며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새소리같은데 늦은밤이라 좀 의아스러웠다. 아침, 그 소리에 잠결이 더 엷어졌다. ‘주위에 숲도 없는데 새가 어째 이리 많을까’ 하는 궁금증도 잠깐, 점점 요란하게 들렸다. 새벽 기도를 알리는 ‘아잔’ 소리에 달아난 잠을 겨우 붙들어 놓았는데…. 짜증이 났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 먹었다. 고맙다고. 아침잠을 줄이라는 자연의 계시나 선물 같은 거려니 여겼다. 새소리와 함께 들고 깨는 잠자리라니, 얼마나 운치로운가?
 

▲ 이 도시 단독주택은 특이하게도 물위에 말뚝을 박고 구조물을 얹는다(원안 주목). 하수도가 없어 집 아래 물웅덩이는 빗물 저수조 또는 생활오수 정화조의 역할을 하는 한편, 복사열 감쇄 기능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의외로 냄새가 별로 나지 않으며, 물고기도 자라는데 낚시하는 사람도 있다.

작년 12월11일. 임지 셋집에서의 자취생활은 ‘감사 철학’과 함께 이렇게 시작됐다. 첫날 무엇보다 소리에 익숙해져야 일상이 편안해진다는 걸 깨달았다. 익숙해지기 전까지 겪어야 하는 모든 불편은 어쩌면 수양의 동기요, 토대가 되는 법이리니….

자취생활은 대학교 때와 자카르타에 머물 때 잠깐 해 봤지만 룸메이트 없는 독숙은 처음이다. 셋집은 방 2칸에 거실과 식당, 화장실을 갖춘 단층집. 크기는 25평형 아파트쯤 되겠다. 특이한 것은 층고와 부엌 구조. 4m를 족히 넘는 층고에 벽지도 없다 보니 실내가 휑한 느낌을 준다. 거실 외벽 쪽으로는 벽돌 크기의 통풍구가 여러 개 나 있다. 더운 공기 배출을 위한 것이다.

식당은 조리대가 있는 주방(ruang makan)과 개수대가 있는 부엌(dapur)으로 분리돼 있는데 그 설계 이유를 모르겠다. 그런가 하면 화장실에는 세면대가 없다. 콘센트와 스위치는 눈높이보다 높고, 출입문은 좁다. 새집이라는 게 무색하게도 집구조 외에 낯설고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모기, 도마뱀, 쥐 등 별수 없이 동거해야 하는 것들은 늘 인내력을 시험했다. 앞서 언급한 새소리의 정체가 사실은 집 주변에 사는 큰 도마뱀이란 걸 알고는 허탈했는데, 따지고 보면 그조차 적응의 과정이고 추억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깻잎, 멸치볶음으로 때워도 맛있어

▲ 눈높이를 내리기 위해 기마자세로 설거지를 해야 하는 개수대.

일상의 과업 중 요리, 빨래, 청소는 충분히 각오했다지만 은근한 스트레스로 의지를 시험해왔다. 경험미숙 때문이리라. 그러나 낯선 환경에서 오는 불편도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다.

요리라고는 김치찌개밖에 해 본 적이 없거니와 김치를 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서 계란 프라이, 감자 튀김 정도 해 먹는 게 고작이었다.

그나마 자카르타에서 올 때 사 온 몇 가지 밑반찬이 ‘원기소’였다. 생각건대 김치 빠진 식탁이 우울했지만, 깻잎 몇 장과 멸치볶음 한 종지로 한 끼를 때울지언정 식사 때가 기다려지고 밥맛을 잃지 않은 게 신기했다.

정작 스트레스는 딴 데 있었으니 주방 구조였다. 조리대와 개수대가 떨어져 있는데, 그 거리가 한 7m쯤 됐다. 밥 안칠 때나 뭘 하려 해도 그 사이를 수시로 왔다갔다 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싫었다. 게다가 수돗물은 식수로 사용 불가. 설거지를 해도 헹굼물은 생수를 써야 하는데 생수통(디스펜서) 역시 개수대와 떨어져 있어 번거롭다. 또 개수대와 조리대 위에 각각 설치된 찬장의 높이와 깊이가 애매해서 불편했다. 즉 고개를 앞으로 숙일 수 없도록 낮고 또 튀어 나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설거지할 땐 무릎을 굽혀 기마자세를 취한다. 개수대가 운동부족을 동정할 줄이야. 그런데 그게 돌아가신 엄마를 추억하게도 했다. 재래식 부엌, 그 불편한 공간 속에서 밥하고 요리하고 군불 때고 도시락 싸느라 보낸 수십 년이 얼마나 힘든 시간이었을까? 어려서 살던 집 부엌은 문지방이 유난히 높아 작은 키에 넘나드시느라 당신 다리가 참 고생 많았음을 눈으로 기억하는 바다.

결혼 후 세탁기는 여기 와서 처음 써 봤다. 삼성세탁기지만 단추 이름은 인도네시아 말로 돼 있어 작동에 조심스러웠다. 처음엔 세제투입구를 몰라 가루세제를 그냥 빨래 위에 뿌리기도 했다. 적당량도 모른 채. 손빨래 해야 하는 것도 무조건 세탁기에 처넣었다―옷이 이상하게 늘어진 이유를 몇 달 뒤에야 알았다. 세척력이 미덥지 못한 게 불만이었다―물이 탁한 건 알았지만 세탁과정 단추를 ‘단축’으로 눌렀기 때문이란 걸 안 것도 반년이 지난 뒤였다.

그럼에도 빨래가 금세 마르는 게 참 좋았다. 빨래를 거두며 보송보송해진 촉감을 맛보는 일이 작은 행복이란 걸 여기서 처음 알았다. 다만 널 때마다 약해 빠진 건조대가 영 못마땅했다. 날개를 연결하는 이음쇠가 사용도 하기 전에 부러져 테이프로 단단히 묶어 뒀지만 늘 지탱이 약해 보였다―공산품 품질 관리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일례로서 뒤에 이에 관한 주제를 따로 다루려 한다.
 

▲ 입주 초기 식탁은 이보다 못한 적이 더 많았다. 3일 만에 처음으로 계란 프라이와 감자전을 해서 먹어 봤다. 경험이 없다 보니 뒤집기에 실패해 계란 프라이 모습이 흉하다.

잠을 방해하는 모기와 더위

청소는 만인이 귀찮아하는 일. 하지만 예서 청소가 짜증스러운 것은 그 수고가 아니라 청소한 뒤의 개운함이 얼마 가지 못한다는 낭패감 같은 것 때문이다. 하루만 지나면 먼지와 죽은 벌레가 방구석 곳곳에 뒹군다. 일일이 막을 수도 없게 생긴 통풍구가 곳곳에 있는 데다 시공불량으로 문틈과 창틈이 벌어져서다.

특히 쥐똥과 비슷해 보이지만 좀 작은 도마뱀 배설물은 방바닥뿐 아니라 조리대 위에도, 벽에도 붙어 있어 선의의 시각을 유린한다. 군데군데 물똥 자국은 어떻고. 도마뱀은 문틈 사이로 들어오거나 문을 열어 놓았을 때 몰래 들어오기도 하는데, 모기를 잡아먹는다니 공생하는 셈 치고 호생지덕을 쌓는 수밖에.

그런가 하면 마당에는 매일같이 무슨 동물이 밤새 다녀가면서 흔적을 남겨 성가셨다. 과일 부스러기와 씨는 비로 단번에 쓸어낸다지만 배설물은 콘크리트 바닥에 더럽게 늘어붙어 짜증을 더한다. 무엇보다 혐오감을 주는 것은 ‘가등가등’이라고 하는 벌레. 거머리 같은 길이에 지렁이 같은 색깔을 띤 이것은 느릿느릿 기어가는 모습이나 사체가 보기에 참 징그럽다.

하루에 몇 번씩 안방과 거실, 마당, 부엌 개수대, 슬리퍼 등을 가리지 않고 발견되는데, 한번은 자다가 베개에서도 만져져 기겁을 했던 적이 있다. 아무리 청소해도 퇴치가 안 되긴 도마뱀과 마찬가지다.

잠이 보약이라는데, 늘 숙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잠을 방해하는 것은 천장의 쥐나 사원의 아잔 같은 소리뿐이 아니다. 모기 때문에 잠을 설치기 일쑤다. 모기약을 뿌리거나 바르고 잔다 해도 소용없을 때가 많다. 낮엔 체력 고갈, 밤엔 수면 방해의 주범이 더위다.

덥고 습하다 보니 잠결에 에어컨과 선풍기를 습관처럼 켰다 껐다를 반복하다 아침을 맞는다. 그런 생활을 한 지 어느덧 1년 남짓. 요즘이라고 적응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낮은 곳에서의 낯선 일상’을 즐기고자 하는 여유가 생겼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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