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주최한 기도회에 10만명의 시민들이 운집해 국가보안법 사수 국민대회를 열었다고 합니다. 종교계, 재향군인회 등 300여개 보수·극우단체들이 참여한 이날대회는 최근 우리 사회의 이슈가 되고있는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2004년 대한민국은 대통령 탄핵에 이어 이라크 파병, 행정수도이전, 친일과거사 규명 등의 문제로 국론이 갈려 대립해온 상황에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국가보안법 폐지를 놓고 갈등은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바람 잘 날’이 없는 우리 사회입니다.

-중국집 종업원이던 K씨는 어느 날 친구와 술을 마시다 의견 충돌이 생깁니다. 격한 말이 오가던 중 열이 오른 K씨는 친구에게 소리칩니다.“야, 인마. 너는 김일성이 보다 더 나쁜 놈이야!” 때 마침 옆자리에 있던 사람이 K씨를 밀고했고 그는 곧 경찰에 연행됩니다. 혐의 내용은 국가 보안법 7조 2항 ‘고무 찬양 죄’ 위반이었습니다.

“김일성이 보다 더 나쁜 놈”이라고 한 것은 상대를 아주 ‘나쁜 놈’이라고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김일성보다 더 나쁘다면 ‘김일성은 좋은 사람’이라는, 억지논리를 뒤집어 씌웠습니다. 견강부회의 극치입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로 K씨는 1년 6개월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해야했습니다. 70년대 충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국가 보안법이 어떻게 죄 없는 사람을 옭아매어 인생을 망치게 했는지, 그 사례는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을 만큼 많습니다. 온갖 논란 끝에 1948년 12월 제정된 국가보안법은 무소불위의 철퇴가 되어 56년 동안 ‘마녀사냥’의 도구로 군림해 왔습니다.

물론 국가보안법은 남북이 이념으로 첨예하게 대치해온 상황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또 사회안정을 위해 긍정적으로 기여 해 온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법이 국가를 위태롭게 한 사람이 아니라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처벌하는데 압도적으로 많이 쓰였다는 점입니다.

독재자들은 그 때마다 야당을 탄압하고 정권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이 법을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로 악용해 왔습니다. 부도덕한 정권들은 위기에 처할 때면 어김없이 국가보안법을 동원했고 그로 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잡혀가고, 고문당하고, 감옥에 갇히고, 형장의 이슬이 된 것을 우리는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 동안 양식 있는 이들이 국가보안법폐지를 목이 쉬도록 끈질기게 외쳐 온 것도 실은 그 때문입니다.

왜, 세계적인 인권단체 엠네스티가 이 법을 폐지하라고 계속 요구하고, 유엔이 폐지를 권하고, 미국무성조차 폐지를 권고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이 법이 생사람을 잡는 ‘나쁜 법’이기 까닭입니다.
국가보안법이 그처럼 악명이 높은 것이라면 이제 역사에 묻어야 합니다. 그리 하여 중국집 종업원도 술좌석에서 거리낌없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버스 기사도 제 말을 할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국보법은 마땅히 폐지돼야 옳습니다. 그것이 시대정신이요, 대세입니다. 바야흐로 21세기를 구가하는 이 대명천지에 우리는 언제까지 낡은 유물을 끌어안고 ‘아, 옛날이여!’를 부를 것입니까. 문화비평가 진중권의 말대로 “국보법은 죽었습니다. 남은 것은 진단서를 떼고 송장을 치우는 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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