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사십리 백사장 시작…우리조상, 적대청람 등 시로 읊어
기암괴석 사이로 난 오솔길…도담삼봉 닮은 세 개 바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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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백면 평사마을에서 바라본 평사낙안. 평사십리라 불렸던 백사장이 원형을 잃으며 육상화되고 있다. 백사장 맞은편으로는 기암괴석이 솟아있다.사진/육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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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상산8경을 찾아서
① 임꺽정 이야기
② 미르 숲
③ 이심이 이야기
④ 소두머니의 전설
⑤ 거물래‧흑양군
⑥ 평사낙안
“우리 어릴 적에 하루는 친구들과 이곳에서 멱을 감고 놀았어. 그런데 말이야. 저기 저 수십 길 바위 위에서 노루가 발을 헛디딘 거야. 어떻게 됐겠어. 수십 길을 떨어졌으니 노루가 그 자리에서 죽었을거 아냐. 그런데 친구 한 놈이 억지를 부리는 거야. 자기가 제일 먼저 봤으니 노루를 자기 혼자 가져가겠다는 거야.”
신선이 피리를 불며 놀았다는 취적대 바위를 가리키며 평사마을에 사는 한 노인이 말했다. 노루가 발을 헛디디다니... 아무리 생각 해 봐도 과장돼 보인다. 그러나 멀리 보이는 것과 달리 취적대 아래에 서면 사람은 작아지고 우뚝 솟은 바위는 끝도 없이 높아 보인다.
누군가가 말했다. 백기완‧방동규‧황석영을 조선의 3대 구라 라고. 누군가가 주먹 좀 쓴다는 말에 백기완 선생은 “사내로 태어났으면 3만명은 상대해야지. 겨우 30명이야. 너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마”라고 말했단다.
만약 백기완 선생이 평사마을 취적대와 평사십리 모래밭을 보았다면 뭐라 했을까? 노루가 아니라 황소 열 마리쯤 떨어지지 않았을까?
진천군은 군지에 상산팔경으로 평사낙안(平沙落雁), 우담제월(牛膽霽月), 금계완사(錦溪浣紗), 두타모종(頭陀暮鐘), 상산모운(常山暮雲), 농암모설(籠岩暮雪), 어은계석(漁隱溪石 ), 적대청람(笛臺晴嵐)이라고 기록했다.
이중 평사낙안(平沙落雁), 적대청람(笛臺晴嵐) 두 곳이 한곳에 모여 있다. 이곳은 문백면 평산리에 있는 평사마을이다. 평사리는 많이 들어본 지명이다. 어디서 들었을까? 박경리가 지은 토지에 등장하는 곳으로 경남하동에 최참판 댁이 자리잡았다. 마을을 흐르는 냇가를 따라 섬진강으로 나아가는 곳에 넓은 들과 섬진강이 일궈 놓은 백사장이 끝없이 펼쳐진 곳이다.
그런 평사리가 진천에도 있다. 이곳도 마찬가지다. 이곳 평사마을부터 아랫마을인 은탄리 소두머니까지 백사장이 길게 펼쳐져 있다. 이름하여 평사십리. 백사장이 십리 이상 펼쳐져 있다는 것인데 하나도 과장돼 있지 않다.
금빛 모래가 십리 이상 펼쳐져 있으니 어찌 아름다운 전설이 없으랴. 우리 선조들은 이곳을 평사낙안(平沙落雁)이라 불렀다. 평사낙안. 달 밝은 가을밤에 백사장에 내려앉은 풍경. 생각만 해도 멋지다.
평사낙안은 취적대에서 시작한다. 취적대는 수십미터 이상 하늘로 치솟았다. 뱀처럼 휘감아 도는 곳에서 취적대는 하늘로 솟고 건너편에는 모래사장이 펼쳐진다. 취적대를 휘감은 물길은 이번에는 다시 반대 방향으로 물길을 돌려 십리 백사장을 만든다. 취적대. 신선이 피리를 불며 노닐던 곳. 이 아름다운 곳에 시 한수 없다면 얼마나 황망하랴. 조선후기 선비 한원진은 이곳을 보고 ‘적대청람’이라는 칠언절구로 된 시를 남겼다.
김봉곤 선촌서당과 평사마을
이곳 평사마을에 김봉곤 훈장이 운영하는 선촌서당이 들어섰다. 한옥식으로 지어진 건물에는 김봉곤 훈장이 아이들에게 예절교육을 가르치고 있다. 김봉곤 훈장은 서당 앞 나루에 놓여있는 나룻배를 타고 홀로 평사낙안 백사장으로 건넌다.
김봉곤 선촌서당 뒤로 아직 소개되지 않은 천혜의 절경이 숨어있다. 이곳부터 하류 1㎞ 지점인 충청북도청소년종합수련원 자리까지 기암괴석과 백사장이 펼쳐있는 협곡이 존재한다. 단양의 도담삼봉처럼 강 물길위로 솟은 3개의 바위도 있고 넓은 구릉처럼 펼쳐진 바위도 있다. 백사장 건너편에는 바위가 병풍처럼 솟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접근 할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김봉곤 선촌서당에서 시작하는 오솔길이다. 오솔길은 오고 가는 사람이 겨우 교차할 수 있을 정도로 좁다. 아슬아슬하게 강둑에 걸쳐져 있는 곳도 있고 사람 두키를 넘는 바위와 바위 틈새로 지나가는 곳도 있다. 높낮이가 크지는 않지만 곳곳에서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해야 한다. 나무에 가려 강에서 보이지 않았던 산 경사면에는 위용을 뽐내는 바위가 곳곳에 포진해있다. 전설이 서려있을 법한 동굴도 보인다.
아직 이곳은 사람들의 손 때를 타지 않았다. 그래서 더 원시에 가까운 형태로 남았다. 하지만 언제까지 비밀로 남을 수 있으랴. 이미 알아버린 낚시꾼들은 알게 모르게 이곳을 찾는다. 그들이 버리고 간 볼썽사나운 쓰레기가 아쉬움을 더한다.
적대청람(笛臺晴嵐)
(시 : 조선후기 선비 한원진(1682~1751)이 평사마을 취적대 풍경을 읊은 한시)
신선이 놀다 간 자취 천년이나 지난 듯 [游仙往跡隔千秋]
취적대만 남아 있고 벽류만 보이네 [惟有高臺俯碧流]
맑게 빛나는 봉우리 반이나 잠겼는데 [隱約晴嵐籠半面]
생황 소리 산머리에 울려 퍼지는 듯하구나 [鸞笙彷佛響山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