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증평군·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추진 ‘세종대왕100리’ 사업 구설수
사업 완료됐으나 도서관·음식점·카페는 건물만 덩그러니, 활성화모색 절실

▲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저곡리의 정미소카페. 문이 닫혀 있다.

“세종대왕100리 프로젝트의 공통점이라면 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다. 산성마을의 집현전, 내수읍 형동리의 버스도서관, 저곡리의 북카페 정미소. 우산리의 소릿길도서관. 하지만 굳게 닫힌 도서관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세종대왕100리길을 구경하면서 사이 사이 설치된 도서관, 음식점, 카페에 들렀으나 문이 잠겨있다는 글이 여러 블로그에 올라와 있다. 세종대왕100리 사업 현장을 둘러봤다.
 

국가공모사업은 추진 당시 계획대로 진행하고, 사업 완료 후에는 취지를 살려야 의미가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아까운 세금만 낭비하고 만다. 특히 완료 후에는 이 사업이 해당지역에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하지만 세종대왕100리 프로젝트는 소리만 요란했고 남은 것은 이름뿐이라는 비판여론이 거세다.
 

▲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형동리의 할매싸롱. 마을회관을 두부집으로 개조했으나 시작도 못했다.

이 사업은 지난 2013년 5월~2015년 4월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및 지자체간 연계협력 사업의 일환으로 청주시·증평군·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이하 청주문화재단)이 추진했다. 청주시와 증평군 연계사업으로 상당산성권(숲길)~초정약수권(물길)~증평율리권(들길)의 100리 주요마을에 한글, 책, 물, 생태 등을 주제로 마을미술관·문화장터·문화공동체 프로그램 등을  선보였다. 그리고 학술연구사업 일환으로 ‘숲길, 오래된 미래를 품다’ 등의 책을 출간했다.

 

청주문화재단은 “1444년 세종대왕이 초정리에 행궁을 짓고 117일간 요양하며 다양한 문화정책을 펼친 것을 특화한 사업이다. 세 군데 지역에 주변공간의 신화와 전설, 자연과 생태, 농경과 삶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 및 문화콘텐츠로 재탄생 시킨 것”이라고 밝혔다.

이름도 괴상한 할매싸롱, 시작도 못해

이들은 이 사업을 시작하면서 구체적으로 권역별 스토리텔링 콘텐츠 개발과 학술연구, 마을미술프로젝트, 문화체험, 농촌 소득증대 및 역량강화, 문화상품 개발 및 글로벌 마케팅 등을 추진한다고 제시했다. 그러나 이런 거창한 기획과 농촌 현실 사이에는 많은 간극이 존재한다. 일명 ‘커뮤니티 아트’라 불리는 이 사업의 특징은 문화예술가들과 지역주민들이 소통하며 마을을 활성화 시키자는 것이나 단시일내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때문에 사업이 완료된 지금 청주문화재단이 제시한 목표에 얼마나 근접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 세종대왕100리길을 알리는 안내판

현재 사업완료 후 1년 5개월 정도 지났다. 일을 함께 추진했던 문화예술가들은 떠나고 시골마을에서는 세금이 들어간 시설물을 운영할 인력이 없다.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초정약수권에는 가장 많은 사업이 집중됐다. 형동리에는 할매싸롱 두부집·형동행복버스·마을벽화사업이 추진됐고 저곡리에는 북카페 정미소, 우산2리에는 소릿길 프로젝트, 그리고 초정리 초정문화공원에는 훈민정음 관련사업이 있었다.
 

할매싸롱은 기존 마을회관을 두부집으로 바꾼 것이다. 그러나 두부집은 시작도 못했다. 마당에 가마솥 2개를 걸었지만 시운전도 하지 못한 상태. 이름도 두부집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지었다. 김현식 이장은 “내부에 씽크대, 수납장, 조리대 등을 설치했으나 부실해서 다시 바꾸는데 시간이 걸렸다. 10월 이전에 시운전하고 일을 시작하려고 한다. 그러나 친환경으로 지은 콩은 풀 때문에 세 번이나 갈아엎었고 식기류를 사는데 많은 돈이 들어갈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식당운영 인력이 없어 부녀회에 맡겼다고 했다. 또 인근에는 수명이 다한 시내버스 두 대를 도서관으로 꾸미고 책을 들여놓은 설치물이 있으나 역시 잠겨있다. 이장은 관리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형동리는 한국화가 운보 김기창 선생의 집이 있는 동네다. 운보선생 생전에는 아름다운 자연과 작품을 보러오는 관광객들이 제법 많았으나 사후에 토지와 건물 일부가 경매로 넘어가는 등 소유권분쟁이 생기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이 때문에 관광객들이 별로 없다는 게 주민들 말이다. 한 주민은 “운보의집이라도 정상화되면 오가는 사람들이 있을텐데 누구를 보고 식당을 여느냐”고 반문했다.

“이렇게 국비를 낭비해도 돼?”

차를 타고 저곡리로 갔다. 그 곳에는 “그 옛날 마을사람들은 이 곳에서 벼를 찧고 쌀을 빻고 떡을 빚었다. 발동기소리, 벨트소리 농부들의 꿈이 영그는 소리가 쏟아지는 듯하다”는 설명문과 함께 정미소 카페가 있다. 주민들은 “부녀회가 운영하는데 요즘 문을 안 연다. 찾아오는 손님도 없다”고 했다. 설명문과 카페 건물은 그런대로 낭만적으로 보이나 현실은 전혀 달랐다. 창문 너머로 안을 들여다보니 차림표만 덩그러니 있다.
 

▲ 내수읍 우산2리의 소릿길도서관

우산2리에는 소릿길 프로젝트가 추진됐다. 이 마을회관에는 “마을회관 2층 키오스크에서 어플리케이션 다운로드를 받고 이어폰을 착용한 후 다양한 소리와 풍경을 감상하며 우산리 소릿길을 산책하라”고 쓰여있다. 역시 이 곳도 문이 잠긴 채 연락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지만 바람에 팔랑거렸다. 전화를 걸자 “경로당으로 쓰는 마을회관은 농한기인 겨울철에만 운영한다. 요즘은 농사철이라 바빠 아무도 못 간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어 문을 잠가놓고 있다”며 “문 따봐야 볼 것도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어서 초정리 초정문화공원으로 간다. 이 곳에는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이미지를 활용한 설치미술, 초정리의 과거를 보여주는 사진 등이 걸려 있으나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지 못하고 있다. 공원 조성 당시 세운 조형물과 세종대왕 100리길 설치미술이 뒤죽박죽 서있다. 19억8000만원이 들어간 세종대왕100리 사업은 아이러니하게도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가 주관하는 2015 지역발전사업평가에서 우수사례로 선정됐다. 청주문화재단은 이 사업을 기획할 때 자체 홈페이지를 만들었으나 이후 업데이트조차 해놓지 않았다. 담당자도 기획자, 실행자, 현재 관리자가 모두 따로 따로라 연계성이 없다.
 

▲ 내수읍 초정리의 훈민정음 프로젝트 조형물

내수읍의 한 주민은 “일을 추진했던 사람들이 떠난 뒤 주민들이 운영해야 하는데 이 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나. 관광객은 없고 주민들은 70~80대 노인들이다. 마을회관 리모델링하는데 들어간 많은 돈을 어떻게 벌어들일 것인가. 세금을 이렇게 허투루 써도 되는지 화가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모 씨도 "이런 게 국비 받아 인건비 따먹는 일 아닌가. 세금은 먹는 사람이 임자냐"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여러 사람들은 40km에 달하는 100리를 다니려면 투어버스가 있어야 하고, 볼거리를 안내할 문화해설사 배치, 머무는 관광으로 끌어들일 만한 농촌 홈스테이 개발 등이 우선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오려면 오고 말라면 말라는 식의 부족한 홍보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 시민은 "세종대왕100리를 걷는 길로 생각했는데 가보니 차타고 다니는 길이다. 차라리 이 곳을 걷는길로 정비하면 더 좋을 것"의견을 냈다.
 

한편 김호일 청주문화재단 사무총장은 “이 프로젝트를 원점에서 분석해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답을 내겠다. 이 사업은 문화를 통한 농촌 지역경제의 활성화에 초점을 맞춘 것이나 사후관리와 운영에 문제가 있었다"고 말한 뒤 “이 사업이 완료된 후에는 관광이 접목돼야 한다. 청주는 역사-산업-문화도시였다가 이제는 관광도시로 가야 한다. 그러려면 시티투어가 도입돼야 하고 관광공사 충북권역의 거점이 청주시로 와야 한다. 지금은 세종시에 있다. 세종대왕100리 프로젝트는 관광차원에서 활성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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