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실상과 이면을 보인 영화 ‘돼지의 왕’
영화로 말하는 세상
윤정용 영화평론가

1978년 생 연상호 감독의 <돼지의 왕>(2011)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애니메이션이다.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에 동화에 가깝다면 <돼지의 왕>을 비롯한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은 사회적 금기를 다루고 있는 일종의 스릴러에 가깝다. <돼지의 왕>에서는 학교 폭력을 다루고 있고, 또 다른 문제작 <사이비>(2013)에서는 종교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연상호 감독은 애니메이션을 통해 “우리 사회의 실상과 이면”을 차갑게 보여준다.
<돼지의 왕>은 소설가가 되지 못해 자서전 대필작가로 살아가는 종석에게 15년 만에 중학교 동창 경민에게서 연락이 오는 것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경민은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중학교 시절 자신들의 우상이었던 철의 이야기를 꺼낸다. 그리고는 종석을 중학교 때 교정 옥상으로 이끌고 간다.
영화의 시점은 확실하지 않지만 대체로 1990년대 초반 혹은 중반으로 상정할 수 있다. <돼지의 왕>의 등장인물들은 <말죽거리 잔혹사>의 등장인물들보다 생물학적으로 더 어리다. 이제 중학교 1학년이다. 그러나 생물학적으로 어릴 뿐 그들은 결코 어리지 않다. 오히려 <말죽거리 잔혹사>의 주인공들보다 더 교활하고 보다 정치적이다. 감독은 등장인물들을 중학교 1학년이 영화적 배경으로 설정한 이유에 대해, 당시의 중학교는 지금의 중학교와는 많이 달랐다고 설명한다. 당시의 중학교는 대체로 남녀공학이 아니었기에, 남자들만 득실거렸고, 자연스럽게 그들 사이에 힘의 역학 관계가 성립해 강자와 약자로 구분되었다.
<돼지의 왕>에서 경민은 반 아이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한다. 그리고 종석 역시 경민의 친구라는 이유로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한다. 바로 이때 그들에게 구원자 철이 등장한다. 철은 괴롭힘을 당하는 경민과 종석을 구해주고, 그들은 곧 철을 따르게 된다. 철은 경민과 종석을 자신의 아지트로 데려가 그들에게 어른들의 세계를 들려준다. 즉 강자와 약자로 나뉜 이 세상에서 짓밟히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더 사악해지고 더 악랄해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괴물’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경민과 종석에게 고양이를 죽이라고 시킨다. 종석은 분노에 가득 차 고양이를 칼로 찌르지만 경민은 망설이며 아지트를 나선다. 종석은 당황하지만 철은 경민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태연하게 말한다. 철의 말대로 경민은 아지트로 돌아와서 고양이를 무참하게 칼로 찌른다. 결국 그들은 일종의 공범의식으로 ‘하나’가 된다.

불편하고 불쾌하고 폭력적이다
중간에 경민은 철의 세계에 잠깐 흔들린다. 어느 날 찬영이 전학을 온다. 찬영은 공부도 잘 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패거리에게 당당하다. 경민은 그런 찬영을 부러워하며 철의 세계를 떠나려한다. 즉 경민은 찬영을 통해 정상의 세계로 진입하려 한다. 하지만 찬영 역시 폭력에 순종한다. 그는 폭력이 지배하는 세계에 자신을 의식적으로 길들인다. 경민은 그런 찬영을 절망적으로 바라보며 다시 철의 세계로 돌아간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철을 자신들의 구원자, 영웅, 우상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철에게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진다. 아버지는 죽고, 경민과 종석을 돕기 위해 여러 명과 싸우다가 결국은 퇴학까지 당한다. 결국 철은 어머니가 자신을 걱정하고 있음을 알고 ‘돼지의 왕’이 아닌 평범한 아이로 돌아가려 한다. 그런 철을 경민과 종석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즉 그들은 자신들이 영웅이라 생각했던 철이 진짜 영웅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들은 철이 변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왜냐하면 그가 바뀌면, 즉 그가 세상의 법칙에 순응하고 복종하면 자신들은 원래의 약자로 다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철이 떠난 뒤 경민과 종석이 다시 괴롭힘을 당하는 약자로 돌아갔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15년이 지난 그들의 현재 삶은 헝클어져 있다. 종석은 경민을 성공한 사업가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 경민은 사업이 실패해서 부도가 났고 아내까지 살해했다. 종석 역시 소설가로 성공하기를 원했지만 현재는 자서전 대필작가로 연명하고 있고, 자신을 위해 애쓰는 아내(혹은 여자 친구)를 의심하는 찌질한 인물일 뿐이다. 경민은 자신과 종석의 불행의 근본적인 원인이 철이 떠나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철이 떠나간 그날의 충격적인 진실을 밝히려 종석을 찾은 것이다.
시간이 흐른다고 모든 게 다 잘 되지는 않는다. 시간이 흘렀다고 모든 게 추억이 되지는 않는다. 때로 어떤 과거는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는 나쁜 기억으로 남는다. 즉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게 용서되지 않는다. <돼지의 왕>에서 경민과 종석에게 과거는 결코 추억이 될 수 없을뿐더러, 단지 지난 일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를 얽매고 있는 족쇄나 다름없다. 그들에게 과거는 현재만큼이나 잔인하다.
전술했듯이, 애니메이션은 보통 아름다운 이야기와 예쁜 그림을 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돼지의 왕>은 불편하고 불쾌하고 폭력적이다. 하지만 영화적 완성도를 떠나 <돼지의 왕>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특히 폭력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즉 폭력을 행사하는 입장이건, 폭력에 순화되는 입장이건 폭력은 무의식적으로 내면화된다.
예컨대 학창시절의 폭력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군대와 사회, 더 나아가 국가로까지 이어지고, 그러면서 일상화된다. 그렇기 때문에 폭력이 무서운 것이다. 그리고 더욱 더 무서운 것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 우리가 누군가에게는 폭력적이고 누군가에게는 무력한 돼지가 되어간다는 사실이다. 그런 폭력의 끝은 어딜까 상상하기도 싫고 무섭다. 여러모로 <돼지의 왕>이 불편하고 무섭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돼지의 왕>이 더욱 공감이 가는 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