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시, 일조권 피해 예상하고도 최고층 건물 사업승인 강행
전 건축과장 “법적 민사문제는 사업자가 해결한다 했다” 변론

▲ 주변 상공에서 드론으로 촬영한 36층 건설현장. 아래쪽엔 주공아파트, 오른쪽엔 북부영어체험센터가 보인다.

2013년 제천시 최고층 건물의 건축허가 신청이 승인됐다. 오피스텔, 분양·임대아파트 등 7개동 860여세대에 대한 건축공사가 시작됐다. 사업주인 신안건설산업(주)는 높이가 105m에 달하는 주상복합건물을 제천의 ‘랜드마크’로 홍보해 100%로 판매실적을 올렸다. 하지만 ‘신안밸리스카이시티’라는 이름의 제천 최고층 아파트 건설 현장은 50m 이내에 주공임대아파트 단지가, 100m 이내에 장락초등학교가 자리잡고 있었다. 누가봐도 일조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 하지만 제천시는 상업지역은 일조권 건축제한 예외지역이라며 아무런 제약없이 건축허가를 내줬다.

주공임대아파트 주민들이나 소유권자인 LH토지주택공사에 아무런 사전정보도 주지 않았다. 결국 공사가 시작되고 소음피해에 시달리면서 36층 건물이 들어서는 걸 알게 됐다. 주민들은 소음피해 보상금으로 1억 5000만원에 합의했고 LH토지주택공사는 일조권 침해를 이유로 공사금지 가처분·청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제천 최고층 36층 주상복합 건축 인허가에 얽힌 의혹을 정리해 본다.

‘신안밸리스카이시티’ 건축사업이 제천시에서 첫 논의된 시점은 2013년 5월이다. 대규모 주상복합아파트 사업이다보니 도시계획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했다. 민관이 참여하는 심의위원회에는 시 건축과장, 교육청 관리과장을 비롯해 건축사 등 민관위원들이 참석했다. 당시 회의록 가운데 일조권 언급 부분에 대해 열람해 본 결과 일부 위원들이 진지하게 문제제기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위원 실명을 가리고 발언내용만을 공개하기 때문에 대화 내용만 간추려 본다.

한 위원이 “주공아파트의 경우 9시~14시 사이에 (사업자측) 자료대로 라면 햇볕이 전혀 안들어오는 상태다. 법적문제가 없다고 했는데 이건 문제가 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상당히 구체적으로 우려를 표명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다른 위원의 답변은 “민원이 해소될 수 있도록 하겠다. 허가나 사업시행을 할 때 그런 민원 자체를 유추해서 허가를 해주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충분히 검토하겠다” “법적 제한할 근거가 없다. 권고할 수 있지만 그것 때문에 불허할 수 없다”며 허가 방침을 강조했다.

그러자 민원 발생에 대한 직접적인 질문이 이어진다. “그런데 건축 이후에 그쪽에서 (민원을) 걸면 지죠” 건축허가가 나간 상태에서 민원을 제기하면 소용없지 않느냐는 반문으로 풀이된다. 이에대해 다른 위원은 “그럼 민사문제로 번지겠죠. 그런데 신청자가 법적인 민사문제는 자기가 해결하겠다는 얘기가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저희도 우려가 되지만 그걸 원인으로 해서 불허하기에는 근거가 취약해서 고민입니다”

충주 원주보다 최고층 ‘자부심’(?)

‘불허할 수 없다’고 초지일관 주장한 위원은 당시 제천시 건축디자인과 B과장으로 추정된다. 사업승인 이후 명예퇴직한 B과장은 회의록 내용에 대한 확인취재 과정에서 “3년전 일이라 민사문제 등을 누가 언급했는 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사업부지는 주거지역이 아닌 일반상업용지라서 일조권 제한을 받지 않는다. 그런 민원을 이유로 사업승인을 불허할 수 없다는 사정을 설명한 건 맞다. 법적절차상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제천시의 균형발전에 기여할 개발사업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충주, 원주에도 없는 30층 이상 초고층 건물을 유치(?)한 데 대한 자부심마저 느끼는 듯 했다. “개인적으로 일 욕심이 많다보니 도시발전에 긍정적이라고 판단해 적극적으로 처리했다”고 덧붙였다.

결국 B 전 과장의 소신(?)은 다른 위원들의 일조권 우려에도 불구하고 사업승인을 이끌어냈다. 문제는 사업자의 입장에서 적극적인 검토의견을 낸 주무과장이 일조권 피해가 우려되는 주공아파트 주민들 입장에선 아무런 대책도 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취재진은 “사업승인 이후 일조권 피해가 예상되는 주공아파트 주민이나 LH토지주택공사를 위해 사후조치를 취한 것이 있는가?”고 물었다. 전화기 넘어 B 전 과장은 한동안 침묵한채 답을 하지 못했다. 제천시는 사상 최대 규모의 36층 건물 신축을 앞두고 주변지역 주민들에게 아무런 정보도 제공하지 않았던 것이다.

2014년초 공사 착공이후 지반을 다지는 파일박기 등 공사소음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2차선 이면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장락동 주공임대아파트 주민들의 인내심을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내 집이 아닌 장기임대 세입자지만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다보니 집단민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6월 주민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김수재)가 구성됐고 단체시위에 돌입했다. 비대위와 주민들의 신고로 5회에 걸쳐 기준치를 넘는 공사소음이 적발돼 과태료가 부과됐다. 비대위는 제천시에 공사중지명령을 요구하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소음피해 가구당 6만~16만원 합의

또한 소음 진동 피해로 시작된 집단민원은 향후 예상되는 일조권 피해까지 확대됐다. 비대위는 자비를 들여 일조권 피해예상 시뮬레이션을 용역의뢰했다. 놀랍게도 신안밸리 공사현장과 마주보는 109·110동은 하루 일조량이 1시간에도 못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동지(冬至)를 기준으로 오전 9시∼오후 3시 사이 연속 2시간, 또는 오전 8시∼오후 4시 사이 총 4시간의 일조량이 확보되지 않으면 일조권이 침해된 것으로 본다.

이에대해 김수재 비대위원장은 “일조권 판례 기준에 못미치는 동이 단지내 5개 동에 달했다. 109·110동은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울 정도이고 5개 동은 겨울철 난방비 부담도 걱정해야한다. 임대아파트 단지라서 고령자들이 많은데 저런 고층건물이 햇볕을 가로막으면 건강악화도 뻔한 노릇이다. 그럼에도 제천시가 인접 아파트단지에 주민설명회조차 없이 허가를 내준 것은 납득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결국 지난해 10월 비대위는 신안건설산업과 보상금도 아닌 위로금 명목으로 1억5000만원을 받는 것으로 합의했다. 소음 피해정도가 큰 앞동은 세대별 16만원, 뒷동은 6만원씩 나눠 지급했다. 시쳇말로 알바시위 일당(?)에도 못미치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최근의 소음피해 소송 판례와 비교해도 턱없이 낮았다. 지난 4월 서울지법 민사합의26부는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의 A아파트 주민들이 소음과 분진 등으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1인당 최대 60만원씩, 1가구당 최대 300만원씩 배상 판결을 하기도 했다.

한편 LH토지주택공사는 지난해 12월 신안건설산업을 상대로 공사금지 가처분·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나도록 가처분 소송 결과도 나오지 않고 있다. 이에대해 비대위측에서는 “우리 세입자도 일조권 손해배상 청구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LH공사가 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우린 일조권 피해 시뮬레이션 용역 결과가 1주일밖에 안걸렸는데 6개월이 되도록 감정조사 중이라니 납득이 안간다. 주민비대위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조만간 모임을 가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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