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청주시내 공중화장실/시내 14개 공원에만 비상벨 설치
대부분 후미진 곳 위치, 외관 우중충, 조명시설 없는 곳 많아

▲ 공중화장실 안전이 화두가 됐다. 서울 강남역 부근 화장실 피살사건을 계기로 지자체마다 화장실 개선대책을 내놓고 있다. 상가지역과 대학가는 여전히 남녀공용 화장실이 많아 개선이 시급하다.

오래전에 ‘여성이라 행복해요’라는 광고 문구가 있었다. 전자제품 광고였는데 지금은 세상을 떠난 탤런트 최진실이 모델로 등장했다. 그러나 이 문구는 ‘여성이라 무서워요’로 바뀌어야 한다. 여성은 아무 잘못없이 화장실에서 죽고, 길 가다 맞고, 산에서 칼에 찔려 죽는다. 여성이 안전하고 행복한 도시를 표방한 여성친화도시는 전국적으로 66개 도시에 달한다. 그런데 여성을 노린 흉악 범죄는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강남역 주변 여성 피살사건의 핵심은 화장실 문제가 아니다. 범행이 일어난 장소가 화장실일 뿐이다. 하지만 차제에 여성 안전의 취약지인 화장실 문제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피살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도 공중화장실은 몰래카메라의 온상지였다. 수많은 ‘몰카’사건과 성폭력사건이 일어나는 음습한 곳이었다.

 

화장실은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공간이며 위생의 핵심이어서 밝고 공개된 장소에 있어야 하나 그렇지 못하다. 때문에 안전하지 못한 게 현실이고 여성들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장소가 돼버렸다. 여성화장실 안전이 화두가 된 요즘, 본지는 다중 이용시설인 청주시 공원·관광지·상가·체육시설 등의 여성화장실을 취재했다.
 

공원 중에서는 비교적 규모가 큰 청주시내 상당·중앙·삼일·망골·원마루·호수·문암생태·배티·호미골·경산·꽃재공원 공중화장실을 다녀왔고, 상가 화장실은 금천광장, 충북대·청주대 부근, 하복대 부근을 둘러봤다. 그리고 관광지로 분류된 대청댐, 문의문화재단지, 상당산성, 국립청주박물관, 고인쇄박물관 화장실 등을 다녀왔다. 그 외 다중 이용시설인 청주체육관과 무심천 체육공원 등의 화장실을 둘러봤다.
 

여성치고 공중화장실 이용시 무서움을 느끼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아무리 환한 대낮이라도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되고 방어자세를 취하게 된다. 화장실이 대부분 후미진 곳에 있고 실내가 컴컴하기 때문이다. 온갖 괴담의 장소이면서 최근에는 피살사건까지 발생해 여간 무서운 게 아니다.

상당·중앙·삼일공원은 청주시내 중심가에 있다. 이 중 중앙공원은 어르신들로 북적거리나 상당·삼일공원은 평상시 행인들이 많지 않다. 상당공원 화장실은 충북도청 담과 맞닿아 있다. 입구에는 ‘비상벨이 울리면 112에 신고해 주세요’와 함께 경찰서 성안지구대 전화번호가 적혀있다. 여성화장실에 들어가니 빨간색 비상벨이 모두 설치돼 있다. 눌러보았다. 30초간 요란한 경적이 울렸다. 그러나 이 벨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누군가 벨 소리를 듣고 입구에 적힌 전화번호로 신고를 해야 비상벨이 기능을 다하는 것인데 행인들이 흘끔거리며 지나갈 뿐이다.

 

그래서 비상벨이 울리면 관할 경찰서로 곧바로 연결되는 시스템이 꼭 필요하다. 편의점은 요즘 비상벨이 울리면 경찰이 출동하는 체제가 갖춰져 있다. 청주시에는 시내 14개 공원에 비상벨이 설치돼 있다. 이 마저도 일부 화장실에만 있는 것이다. 게다가 남성화장실에는 아예 없어 남성들도 불만이다.

 

‘화장실’이라는 표지판 너무 작아

중앙공원으로 갔더니 기존 화장실은 리모델링 중이고 공원내 성벽화장실을 사용하라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그런데 어떤 건물이 성벽화장실인지 얼른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청주시내 대부분의 공중화장실 외벽은 우중충한 회색이거나 짙은 밤색이다. 여러 군데를 다녔지만 가운데에 오렌지색을 넣은 배티공원 화장실 외에 유채색을 쓴 화장실을 보지 못했다. 밝고 경쾌해야 할 관광지도 우중충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대부분이 화장실 표시를 크게 해놓지 않아 가까이 가봐야 알 수 있다. 화장실을 밝고 공개된 장소에 지으면서 외벽은 환한 색으로 칠하고 표지판도 크게 달아야 한다. 장애인화장실이 없는 곳도 개선해야 한다. CCTV도 공원 전체를 비추는 게 많고 화장실 앞은 사각지대인 곳도 여러 군데다. 중앙공원 화장실에도 비상벨은 있으나 그 중 한 개는 ‘수리중’ 표시가 붙어 있었다. 그마저도 ‘무용지물’이었다.

솔밭·문암생태·호수공원은 평소에 행사를 많이 하고 휴일에는 시민들로 붐빈다. 솔밭·문암생태 공원은 입구 가까이에 화장실이 있다. 그리고 규모가 큰 호수공원에는 주차장 쪽과 반대쪽 입구 주변 양쪽에 있었다. 하지만 호수공원을 제외한 두 군데 화장실에는 비상벨조차 없다. 호수공원 주차장 반대쪽 화장실 외벽에는 ‘성폭력 예방 주민감시 운영지역 블랙박스 녹화중’이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하지만 매점을 가운데 두고 남녀화장실을 양쪽으로 설치한 구조는 조악하기만 했다.
 

금천광장 등과 대학가 상가 화장실도 안전하지 않다. 주로 밤에 사람들이 북적대는데 대학가 상가는 좁은 편이라 화장실 남녀구분 의무가 없다. 식당·술집·카페에 딸린 화장실은 작고 아무런 안전장치가 돼있지 않다. 금천광장 상가 화장실은 남녀구분이 돼있지만, 복도 끝 후미진 곳에 있는 경우가 많아 무서웠다. 늦은 시간에 복도에서 취객을 만나면 더 무섭다.

상당산성 화장실은 주차장을 바라보고 있다. 건물이 널찍하고 깨끗한데다 지붕을 투명유리로 해서 실내가 밝다. 시내 화장실 중 실내가 가장 밝았다. 관광객들이 찾기 쉽고 옆에 매점과 관리실이 있다. 하지만 이 곳도 범죄로부터 안전한 대책은 마련돼 있지 않다. 밤에도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는 무심천 체육공원에는 두 개의 간이화장실이 있다. 하나는 좀 크고 다른 한 개는 1인용이다. 주변 가로등이 환해 출입구가 어둡지 않지만, 1인용 화장실은 다소 어두워 대책이 요구된다.
 

본지 박명원 수습기자는 “청주시내 화장실을 둘러보니 여성친화도시라는 이름이 무색하다. 야간 공원 화장실은 너무 어두워 남성이 들어가기에도 무섭다. 대청댐과 문의문화재단지는 관광지인데도 화장실에 비상벨이 없고 CCTV도 없다”고 지적했다. 분평동 원마루공원 여성화장실 취재를 위해 들어갔다 행인이 경찰에 신고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른 그는 “비상벨을 눌렀을 때 행인이 이렇게 빨리 신고할지 의문이 든다. 위기상황을 생각해 비상벨을 하루빨리 경찰과 바로 연결되는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중화장실의 문제점 중 하나는 조명시설이 제대로 돼있지 않아 야간에 이용하기 불편하다는 것이다. 충북살림연대 회원 최영주 씨는 “밤에 공원 화장실 가보면 실내에만 불이 있고 밖에는 어두운 곳이 많다. 화장실이라는 표지판도 보이지 않는다. 환한 곳에서 어둔 곳으로 나오면 뒤에 누가 서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무섭다. 화장실이라는 표지판을 네온사인으로 해서 보이게 하고 건물 밖에도 불을 밝게 켜놓았으면 좋겠다”며 “가경동 일대에서는 경산공원 화장실만 건물 밖 입구에 등이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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