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경제위기 바탕으로 한 실화영화 <빅쇼트>

영화로 말하는 세상
윤정용 영화평론가

 

▲ 빅쇼트 The Big Short, 2016 제작 감독 아담 맥케이 출연 크리스찬 베일, 스티브 카렐, 라이언 고슬링, 브래드 피트

1930년대 미국은 경제 공황으로 유례없는 경제 침체기를 맞이한다. 경제 공황의 직접적 원인과 해결책에 대해서는 지금도 주장이 엇갈리지만, 경제 공황 직전의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가 경제 공황을 가져왔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체로 이견이 없다. 경제 공황 직후 미국은 규제를 강화하기 위해 업종별 칸막이를 두는 일명 ‘글라스-스티걸 법’을 만들었다. 글라스-스티걸법은 투자은행만이 고위험 투자가 가능하도록 규제했다. 그러나 투자를 활성화시킨다는 명분으로 1999년 클린턴 행정부는 ‘그램-리치-블라일리법’을 만들어 업종별 칸막이를 없앴다. 그때는 이게 재앙의 단초가 될 것이라고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업종별 규제가 무너지자 온갖 파생 금융 상품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행여 부채담보부증권이 부실해질 위험에 대비해 보험 성격의 상품도 만들었다. 그게 바로 ‘통화부도스와프’다. 보험사들은 이 상품을 팔고 대신 투자은행들에게 수수료를 받았다. 문제는 통화부도스와프가 단순 보험 상품이 아닌 파생상품이라 부채담보부증권이 없는 투자회사들도 보험료를 내고 통화부도스와프를 살 수 있었다. 만약 특정 부채담보부증권이 망하면 보험금을 같이 받는 형식이었다. 은행 대출채권이 투자은행을 지나 보험사까지 연결됐다. 그런데 은행 대출 채권이 부실해졌다. 부채담보부증권을 산 투자은행이 망가졌고, 이어 부채담보부채권 보험금을 주려다 보니 보험사도 망가졌다. 금융위기는 상업은행, 투자은행, 보험사, 증권사 등 전 금융권을 휩쓰는 금융 쓰나미가 됐다. 그리고 그 쓰나미는 미국을 지나 유럽과 아시아 등 전 세계로 퍼졌다.

무지에서 비롯한 낙관

영화 <빅쇼트>(2015)는 세계 경제 쓰나미를 초래한 미국발 경제 위기를 다소 장황하면서도 쿨하게 그리고 있다. 당연히 이 영화는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미국발 경제위기는 처음에는 낙관적인 전망에서 출발했다. 사람들은 경기가 좋기 때문에 당연히 주택시장을 낙관했다. 너나 할 것 없이 집을 사기 위해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렸다. 심지어 대출 자격이 안 되는 사람도 높은 이자를 물면서까지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렸다. 누군가는 한 군데가 아니라 여러 군데서 돈을 빌렸다.

그 다음 단계에서는 ‘누군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즉 대출금을 갚지 못할 위험이 큰 주택담보채권을 ‘여러 개 묶어서’(bundle) 파생금융상품을 만든다. 그 파생금융상품을 묶어 또 다른 파생금융상품을 만든다. 그 파생금융상품으로 또 다른 파생금융상품을 만든다. 누군가 그 파생금융상품을 산다. 누군가는 그 파생금융상품의 위험성을 알고 신용부도스와프를 만들어 팔고, 또 누군가는 비싼 수수료를 내고 이것을 사간다. 단계가 거듭될수록 당연히 위험성도 커진다. 그러나 은행은 걱정하지 않는다. 채무자들은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집에서 쫓겨나기 때문에, 은행은 그들이 어떻게 해서든지 대출금만은 갚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대출금을 갚지 못하자 주택담보채권은 부실해지고, 그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파생금융상품 역시 부실해지고, 투자은행은 막대한 손해를 본다. 증권사와 보험사는 더 막대한 손해보험을 떠안아 결국 파산하면서 미국발 금융위기가 시작된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글로벌 금융 쓰나미가 되어 전 세계 경제를 휘청거리게 만든다.

영화는 허구가 아니다

<빅쇼트>에서 천재적인 펀드 매니저 마이클 버리(크리스찬 베일)는 미국 주택시장의 위험성을 간파하고 경고하지만, 대부분 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그의 투자자는 투자금을 회수하고, 심지어는 그를 상대로 고소하려한다.

결국 부동산 시장의 붕괴로 누군가는 막대한 손해를 보고, 누군가는 막대한 이익을 보고, 누군가는 집에서 혹은 직장에서 쫓겨난다. 하지만 이 사태에 대해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영화에서는 자세히 언급되지는 않지만, 금융위기가 터진 뒤, 정부를 향해 자신들의 경제활동에 대해 손을 떼라고 주장했던 월스트리트 엘리트들은 정부에 당당하게 구제금융을 요청한다. 그리고 정부 역시 그들이 원하는 대로 막대한 구제금융 자금을 투입한다. 심지어 그들은 집을 빼앗긴 노숙자에게 마땅히 지급되어야 할 실업급여, 건강보험료까지도 챙긴다. 그러면서 노숙자에게 주는 돈은 무의미하고 단지 버릇만 나빠지게 한다고 주장한다. 놀라움을 넘어서 무서운 생각이 든다. 그래서 <빅쇼트>를 본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공포영화’라 했다. 왜냐하면 허구는 보고 나면 끝이지만, 실제는 이게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이들 중 누가 가장 나쁠까? 갚을 능력이 없는데도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린 사람, 그들에게 돈을 빌려준 은행, 그리고 은행과 그들을 연결해준 브로커, 부실담보채권으로 파생금융상품을 만든 투자은행과 그걸 매수한 또 다른 투자은행, 파생금융상품의 위험성을 알고 신용부도스와프를 만들어 구입한 펀드매니저, 그것을 ‘공매도’(big short)한 헤지펀드, 은행을 감독해야할 은행감독위원회 직원, 다 알면서도 신용도를 조작한 신용평가회사, 그 모든 사태를 전혀 몰랐던 사람들, 알면서도 모른 척 한 사람들.

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분명 책임의 경중은 있겠지만 문제의 원인은 모든 사람들에게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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