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한다/ 김수정 젠더사회문화연구소 ‘이음’소장

▲ 김수정 젠더사회문화연구소 ‘이음’소장

매년 3·8여성대회를 주관하는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성평등 디딤돌’과 ‘성평등 걸림돌’ 상을 수여한다. 올해 ‘성평등 디딤돌’ 부분에서는 ‘자림성폭력대책위’와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대학생 단체 ‘평화나비네트워크’를, 페미니스트에 대한 편견과 왜곡을 없애려는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선언운동과 ‘전국여성노동조합 인천지부 연세대 국제캠퍼스 기숙사 분회’, ‘여수 유흥업소 여성사망사건을 제보한 9명의 여성’을 선정 시상했다.

시상식에는 각 단체를 대표하는 몇몇이 참석하여 수상의 영광과 격려의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선언운동은 SNS 상에서 불특정 다수가 자신이 페미니스트임을 천명하는 운동이었으므로 구체적 대상자가 없어 수상은 피켓을 들고 나온 키 큰 청년이 대리하였다.

SNS에서 순식간에 퍼져나간 이 운동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성차별적인 우리 사회의 현실을 고발하면서 자신이 페미니스트임을 공표하는 방식을 취한다.

예를 들면 “우리가 겪은 차별과 불평등의 경험은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 우리의 가까운 미래엔 페미니즘이 당연한 시민의 교양이 될 것. #나는 페미니스트다”, “19대 국회의 여성의원이 15%밖에 안 된다는데 현재 필리버스터에서 힘을 보여준 혹은 보여줄 의원은 전체 중 여성이 반 혹은 과반수다. 이제 가녀리고 연약한 여성, 바깥일=큰일에 맞지 않는다는 말은 사라질 때가 됐다. #나는 페미니스트다” “1년이 지났다. 세상이 변하진 않았지만 몇몇 사람들의 생각이 변했다. 이렇게 2년, 3년 계속 사람들이 변하다 보면 결국 마지막에는 세상이 변하지 않을까. #나는 페미니스트다”라는 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다.

이 선언운동은 지난해 봄 “나는 페미니스트가 싫다”며 이슬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에 가담한 ‘김군’과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씨의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해요’라는 칼럼으로 촉발된 여성혐오 논란 위에서 자발적으로 퍼져나갔다.

선언운동에 대해 알고는 있었으나 참여하지는 않았다. 젊은 층들이 제각각의 색으로 페미니스트임을 천명하는 문화가 신기했으나 정작 참여할 생각은 못했다. TV에 김태훈이 나오면 ‘여성에 대한 인식만은 정말 무뇌아’라는 생각이 들어 채널을 돌리는 것이 반항의 고작이었다.

40대까지는 ‘페미니스트’라고 밝히는 순간 쏟아지는 비난과 질시, 혹은 이상한 경멸과 훈계 등이 불편했다. 20대부터 최근까지 당당하게 드러내지 못했던 것은 발언이후 나를 대하는 상대의 태도가 이상하게 껄끄러웠기 때문(당연한 건가?)이다. 그래서 때로는 “저는 휴머니스트예요”라며 오해하지 말라는 제스처까지 쓰면서 페미니스트와는 거리두기를 하는 그야말로 모순적인 태도를 보였다.

어릴 때부터 나는 어른 앞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느낄 때마다 분노했었다. 눈치나 보고 내숭이나 떨면서, 맘에 없는 소리를 늘어놓는 자리는 어서 뜨고 싶을 뿐이었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부족했으나 부당한 것에 동의할 수는 없었다. 그런 나를 사람들은 ‘너무 직설적이다’라거나 ‘참는 말이 없어 속은 시원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나도 내 말을 검열한다. 상대가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으면 농으로 둘러치거나 우회해가기도 한다. 그러므로 내 속이 언제나 시원한 것은 아니다.

페미니스트는 여성우월주의도, 여성제일주의도 아니다. 그저 당신과 내가 같다고, 인격적 대우도, 임금도 그저 당신, 남성들과 차별 없게 해 달라고, 못된 것에 대한 온갖 혐의를 여성에게 덮어씌우지 말고 진짜 상식적으로 생각하자고 얘기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런 생각에 동의하는 페미니스트다. 기꺼이 페미니스트임이 자랑스러운 이른바 ‘골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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