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의 <출판의 미래>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이연호 꿈꾸는책방 대표

▲ 출판의 미래 장은수 지음, 오르트 펴냄.

두 발로 서서 첫걸음을 내디딘 인간은 스스로가 얼마나 대견스러웠을까? 비로소 먼 곳을 응시할 수 있는 시선을 확보한 기쁨과 환호를 우리는 이해할 수 있을까? 그 가슴 떨리고 아뜩한 직립보행의 짜릿한 첫걸음을 뒤로 하고 인간은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진화해왔다. 지나온 길이 너무 멀고 아득해서 뒤돌아봐지지 않을게다.

이세돌과 알파고가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던 그 순간에도 인공지능은 인간의 상상력을 넘어서고 있었다. 인류문명의 근간을 마련해온 인간의 상상력조차 그 속도를 당해내지 못하고 변화의 맥락을 놓치고 말았다.

20세기를 지나오면서 변화에 민감한 몇몇 학자들이 이 변화의 과정을 예측하고 맥락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보여준 바 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만남을 통해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려는 ‘통섭’이 학제 간의 자유로운 소통의 길을 열어주고 인간의 사유를 도왔다.

또한 휴먼 스케일에 갇힌 상상력만으론 해석되지 않는 자연적 현상과 역사에 대한 성찰로서 ‘빅히스토리’를 꺼내 들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조심스럽게 ‘미래학’의 새로운 지형을 예감하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편집문화실험실 장은수 대표가 펴낸 <출판의 미래>는 출판인의 시각에서 세상의 변화를 감지해보고 적절한 대응력을 찾아보려는 노력의 결과로 각별한 의미의 출판물이다.

장은수 대표는 이 광폭한 변화의 중심에 있는 ‘초연결사회’를 주목했다. 만인과 만인이 시차 없이, 공간의 구분도 없이 즉각적으로 ‘연결’되는 사회가 초연결사회다. 그야말로 전 세계가 동시다발적이라 더 이상 중간의 매개를 형성할 이유가 없어졌다. 기존의 사유체계와 프레임으로는 변화의 원인과 맥락을 좇아 그 방향을 읽어내는 일이 쉽지 않아졌다. 사실 그럴만한 시간적 여유조차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창안해낸 장치가 ‘플랫폼’인 듯 싶다. 이 책의 저자뿐만 아니라 출판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거드는 단어가 ‘플랫폼’이다. 출판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시급히 ‘플랫폼’을 만들고 이를 통해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물론 희망도 있겠지만 필자는 여기저기서 두서없고 맥락 없이 이뤄지는 변화의 내용을 우선은 담아두고 보자는 다급함도 있겠다 싶다.

사회전반에 대한 문제의식 담은 책

여하튼 이 책은 효과적인 ‘플랫폼’ 구성을 위해 콘텐츠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기술적 문제, 변화된 시장에 적응할 수 있는 비즈니스 방향의 전환 문제,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는 독자의 시선 안에서 생존의 가능성을 찾아보려는 발견성 확장의 문제 등을 제안하고 있다.

이 책의 제안은 출판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출판의 문제를 넘어 사회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어 누구나 눈 여겨 볼만하다. 그의 제안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콘텐츠 큐레이션’의 역할이다. 서점의 일과 관련해서도 의미 있는 제안이며, 정보 과잉의 시대에 사는 모두에게 새로운 역할을 모색할 상상력을 제공하는 것으로서도 시의 적절한 제안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출판 시장의 규모가 40조 원을 넘겼다고 한다. 물론 전년 대비 1.0% 정도 감소한 것이긴 하지만 여전히 출판대국의 면모다. 등록된 출판사도 5만 곳이 넘는다. 일 년에 유통되는 책의 종수도 50만 종이 넘는다고 한다. 주목받을 만한 수치를 자랑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독자의 피곤함을 살피지 않을 수 없는 숫자로 받아들이는 것이 마땅하다. 독자를 대신해 독자가 원하는 최상의 콘텐츠를 선별하는 능력을 갖춘 콘텐츠 큐레이터의 역할이 절실해진 숫자로 여겨야 한다.

독자는 이미 읽는 사람이 아니다. ‘검색하는 사람’으로 변하고 있다. 엄연한 현실이다. 주요 독자층은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문화적으로 세련된 이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엄선되고 정리된 정보를 제공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2015년 프랑크푸르트도서전의 비즈니스클럽에서 스프링어네이처의 비전을 발표한 닐스 페터 토마스에 따르면 “출판 시장은 항상 책이 아닌 지식을 대상으로 한 시장”이었다. 독자는 책을 읽는 사람이 아니라 지식을 찾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충고한다.

이제 독자들은 지식의 계통과 맥락을 살펴 지형의 실제와 변화를 보여줄 수 있는 세련된 콘텐츠 큐레이터의 출현을 무엇보다 간절히 원하고 있다. 오랜동안 출판계에 몸을 담아 온 저자의 노련함과 지혜가 돋보이는 대목이긴 하다.

촘촘한 분석과 명석한 판단에 크게 공감하면서도 뭔가 허전함이 남는다. 급변하는 지식 사회에서 뒤처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지점을 찾아 노력하는 것이야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어디 다른 리듬과 다른 박자의 삶은 없을까 싶어 두리번거리게 된다. ‘꿈꾸는책방’은 그 사이 어디쯤에서 흔들리며 독자를 맞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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