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예비후보 1426명 중 여성 140명···충북은 정윤숙·이순옥 단 2명
여성정치인 내보자는 분위기 사라지고, 여성정치세력화 단어조차 없어

오는 4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지지만 여성 후보는 10%를 간신히 넘었다. 총선 도전장을 낸 후보는 현재까지 1426명이다. 이중 남성이 1286명, 여성이 140명(전체 10.9%)이다. 절대다수가 남성이다. 따라서 이번 총선은 남성들만의 잔치가 될 전망이다. 서울시는 전체 316명 중 여성이 47명, 경기도가 314명 중 43명, 부산시는 97명 중 여성이 11명이다. 인천시는 83명 중 7명, 대전시는 46명 중 5명이다.

그 외 지역 여성후보는 채 5명이 안된다. 대구·광주·전북이 4명, 충남·경북이 3명, 충북·경남·제주가 2명, 울산·강원·전남은 1명, 세종시는 단 한 명도 없다. 충북은 전체 43명의 예비후보가 총선 출마를 선언했으나 이 중 여성후보는 2명에 불과하다. 충북도내에서는 정윤숙(59) 국회의원과 이순옥(63) 한국연예문화예술재단 총재가 나란히 흥덕을에 출사표를 던졌다. 둘 다 새누리당이고 지역구도 같다.
 

그럼 여성후보가 이렇게 적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정치를 하려고 하는 여성들이 적다. 충북의 성향이 보수적인데다 정치를 하기 위한 기본 조건인 돈과 조직면에서 남성들에게 뒤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지역인사는 “충북은 보수적이라 여성들이 나서는 것을 싫어한다. 과거보다 나아졌다고 하지만 뒤에서는 여전히 수군거린다. 일을 하다 실수하거나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여성들에게는 남성들보다 훨씬 가혹한 비판이 따른다. 여성이기 때문에 더 많은 욕을 먹는 것이다. 정치를 하게 되면 여러 사람들의 입줄에 오르내린다. 이 때 수많은 소문과 뒷담화로 난도질을 당하기 십상이다. 이 때문에 여성들은 정치를 기피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인사는 “정치하려면 돈과 조직을 갖춰야 한다. 그런데 자기 돈을 자기 마음대로 쓰는 여성이 얼마나 될까. 대개는 남편이 벌어오는 돈을 쓰고, 자기 돈이라 하더라도 남편 동의를 얻어야 한다. 조직기반을 갖추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남성들은 누군가를 만나 유대관계를 맺는 게 생활의 일부분이다. 하지만 여성들은 그렇지 못하다. 직장생활을 하더라도 가정살림에 자녀들 키우는 일까지 해야 하다보니 바깥활동에 전적으로 매달릴 수 없다”고 의견을 밝혔다.
 

최근 전국의 여성의원수는 40명대를 맴돌고 있다. 제17대 40명, 제18대 41명, 제19대 국회는 45명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절반 이상이 비례대표 의원이다. 지역구 의원만 치면 10여명 선이고, 제19대 국회 때 21명으로 처음 20명을 넘었다. 제19대 여성의원 비율은 15%. UN권고 수준인 30%의 절반에 불과하다. 전국적으로 5선 이상 의원은 이미경(더민주) 의원이 유일하고 추미애(더민주) 의원이 4선, 박영선(더민주) 의원과 나경원(새누리)이 3선, 심상정(정의당) 의원이 재선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충북에는 없다.

 

2004년 충북 여성계 조직적인 힘 발휘

충북에서는 현재까지 제17대 국회에서 열린우리당 비례대표로 당선된 강혜숙 의원이 유일한 여성 국회의원이다. 하지만 강 전 의원이 제18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으면서 명맥이 끊겼다. 그는 당시 청주대 무용과 교수이면서 충북여성민우회 대표였다. 충북여성민우회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으로 열린우리당에 유리한 바람이 불자 여성의원 내보자며 적극적으로 뛰었다. 여성 후보를 앞 번호에 배치할 것을 정당에 요구하는 한편 선거기간 동안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그래서 당시 여성 정치세력화의 모델을 만들어 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성의 조직적인 도움 없이 혼자 선거판에 출마해 당선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이미 수많은 선배 여성운동가들이 남성들과 싸워 여성공천 할당제와 여성 가산점 제도를 만들었으나 충북은 올해 여성후보가 없어 이런 제도를 써먹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정당에서는 “여성후보가 있어야 공천을 하지 않느냐”라고 말한다. 올해는 여성의 정치세력화라는 단어조차 실종됐다. 여성 유권자만 있지 여성 정치가 빠진 것이다. 이는 충북 여성계의 전반적인 침체와도 관련이 있다.
 

남기예 충북여성단체협의회장은 “여성후보 내는 건 고사하고 여성 의원을 탄생시키자는 바람조차 불지 않고 있다. 정치철인데 너무 조용하다. 아무도 나서지 않고 관심도 없는 듯하다”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이는 특정단체 임무가 아니라 충북여성단체협의회의 책임이기도 하다. 다른 여성단체들 역시 책임을 느껴야 한다.

그런가하면 하숙자 청주여성의전화 대표는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정치가 즐거워야 하는데 기득권자들끼리 싸우는 곳이 되다보니 여성들은 들어갈 틈이 없다. 아울러 정당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사람을 키우는 조직이 돼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며 정당과 정치개혁을 강조했다.
 

앞으로 여성 정치인을 탄생시키려면 정당, 여성계, 본인의 노력 등 삼박자가 갖춰져야 한다는 게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다. 정당·여성계에서는 적극적으로 후보를 발굴하고, 여성들도 정치에 참여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당은 선거 때만 인물난을 걱정할 게 아니라 평소 여성 정치인을 육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실시해야 할 것이다.

일본의 ‘가나가와 네트워크’를 본받아라
회비와 자원봉사자 힘으로 여성 정치인 탄생···전체 19명 배출 

 

여성정치세력화를 논하려면 일본의 ‘가나가와 네트워크’를 빼놓을 수 없다. 지난 1980년 가나가와현 생협 조합원들이 7개 시의회에 ‘합성세제 추방대책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정을 청구했으나 모든 시의회에서 부결되자 스스로 의원 만들기에 나섰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진출을 위해 개인이 해야 할 일을 이 운동단체에서 해준다는 것이다. 이들은 정치자금을 모금하고 정책을 개발해서 여성 정치인을 탄생시킨다. 그래서 돈이 없고 조직이 없는 여성들도 의회에 들어갈 수 있다. 지난 1983년 가와사키시의회에 의원 1명을 당선시킨 이래 지역정당 ‘가나가와네트워크 운동’을 설립했다.
가나가와 네트워크 운동이 내건 3대 이념은 시민의 정치참여 확대, 생활정치 추진, 시민민주주의 육성 등이다. 재정은 3000여명의 회원들이 내는 회비와 의원 의정비로 충당한다.

지난 2010년 이 곳을 방문했던 하숙자 청주여성의 전화 대표는 “이곳은 시민모금과 자원봉사자 활동으로 선거를 치르고, 의원과 회원은 모든 활동을 주민에게 공개하며, 의원 보수는 네트워크에 돌려줘 재분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선거 때는 후보들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주지 않고 모금이나 바자회 등을 열어 충당한다. 의원의 임기는 8년으로 제한하고 임기를 마친 의원은 네트워크로 돌아와 회원활동을 한다. 우리나라도 여성정치 기금을 모아 여성후보들을 후원하고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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