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여중, 충북 최초로 반배치고사 없애 화제
시험 대신에 독후감 쓰기‧자기소개서로 대체

평가방식, 좀 바뀌면 어때?
옥천지역이 술렁거린 이유는

시험하면 책상 위에 책가방을 놓고 객관식 문항 중에 무엇을 고를까 고민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사각연필에 번호를 매겨 점을 치며 시험을 봤던 친구, 점수가 선명하게 새겨졌던 빨간색 시험지와 색연필의 자국도 떠오른다. 세대가 바뀌었고, 이제는 시험의 평가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결과형의 시험이 아닌 아이들의 성취수준에 맞춰 얼마만큼 배움이 일어났는지 과정을 평가하는 시대에 이른 것이다. 이미 전북과 경기도교육청은 초등학교에서 일제평가 방식의 중간‧기말 시험은 모두 폐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중‧고등학교의 경우도 객관식 시험이 아닌 수행평가와 논술형 필기시험을 늘리겠다고 강조한다. 시험의 변화, 학교 현장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우리에게 늘 두려움과 설렘을 동시에 안겨줬던 시험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올해 1학년이 되는 옥천여중 학생들은 ‘반배치 고사’를 보지 않는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방학기간에 다른 학교 친구들이 반배치 고사를 준비하고 있을 때 이들은 책 5권을 읽고 자기소개서를 준비해야 한다. 시험 문제가 분야별로 지정해 준 5권의 책 중에서 1권에 대해 독후감을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충북에서는 ‘최초’로 옥천여중이 반배치 고사를 없앤 것이다. 제일 먼저 반응이 온 것은 인근 학교들이었다. 긍정과 우려의 반응이 엇갈렸다. 사실 옥천지역에서도 반배치 고사 1등이 어느 초등학교에서 나오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는 곧 학교의 명예로 이어져 암묵적인 경쟁이 반복됐다.

옥천은 전 초등학교가 동일한 시험지로 반배치 고사를 봤다. 표면적으론 시험을 따로따로 내는 번거로움을 덜어주자는 것이었지만 이면적으로는 줄세우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입학정원이 적어 한반 밖에 되지 않는 작은 중학교들도 시험을 꼬박꼬박 치렀다. 시험 결과에 따라 중학교에 입학 시 장학금이 지급했다. 지금까지 다른 기준은 없었다. 오로지 성적별로 등수를 매겨 장학금을 줬다.

어느 초등학교에서 1등 했나

 

▲ 성현진 교사는 기존의 방식대로 5지선다형 시험으로 반배치고사를 봐도 실제 중학교에 들어와 생활을 해보면 반마다 성적분배가 고르게 나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시험이 등수를 매기는 게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데 힘이 돼주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반배치 고사는 그야말로 성적별로 반을 배치하기 위해 치러지는 시험이다. 기존 방식대로 아이들을 ‘골고루’분배하면 학교 관리자 입장에서도 반별로 등수를 매기기가 쉬운 셈이다. 보통 2월경 시험을 치른다. 중학교 교사들이 초등학교 전 과정을 놓고 국어, 영어, 수학문제를 객관식으로 낸다. 모 중학교 교사는 “중학교 교사들이 초등학교 시험을 내야 하는 모순이 있다. 대부분 초등학교 문제집 몇 개를 가지고 와서 문제를 낸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성적별로 배치되더라도 실제 반을 운영하면 성적차이가 난다. 초등학교 학력이 중학교 학력으로 이어지지 않는 걸 확인하게 된다”라고 덧붙였다.

12월 방학이 되자 옥천여중에도 반배치 고사를 묻는 문의가 이어졌다. 시험이 몇 항목인지 출제유형이 어떤지를 묻는 전화였다. 그러한 열의를 보고 제일 먼저 의견을 낸 사람이 옥천여중 이성희 교감이었다. “기존 시험 방식은 의미가 없다”라며 새로운 방식을 주문한 것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중학교 과정을 공부하는 게 의미가 있지 과거에 배웠던 초등과정을 되풀이 하는 것은 시간만 아깝다는 생각이 모아졌다. 행동대장은 옥천여중의 행운부장(충북형 혁신학교인 행복씨앗학교의 운영부장)인 성현진 교사가 맡았다. 성 교사는 “처음에는 교사들이 모여서 시험이 아니면 학생들을 어떤 방식으로 분류할지 의견이 분분했다. 심리검사, 인성검사, 성격유형별 검사 등의 얘기가 나왔지만 관련 예산을 확보해놓지 않아 올해는 기존 방식대로 시험을 치르되 내용을 바꾸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수행평가 올해 50%로 늘린다

옥천여중 교사들은 고민 끝에 5권의 책 <연어><갈매기의 꿈><사람이 누려야 할 권리인권><즐거운 생태학 교실>을 선정했다. 혹시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거나 기억이 나지 않을까봐 간단한 지문을 제시하기로 했다. 자기소개서에는 성장과정, 성격, 특기 및 적성, 중학교 생활계획, 장래계획을 쓰라고 했다. 학생들이 낸 답안지를 놓고 교사들은 A,B,C로 분류한 뒤 1학년 7개반에 학생들을 배치하기로 했다.

현재는 옥천지역에서 옥천여중만 반배치고사를 없애기로 결정했다. 이 소식을 들은 학원가와 서점가가 술렁거렸다. 학원가는 방학기간 반배치고사반을 운영하지 못하게 됐고, 서점가는 문제집을 예전보다 덜 팔게 된 것이다. 일부 학부모들의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점차 지지하는 목소리가 커져갔다. 초등학교 교사들 사이에서는 ‘감동적인 배치고사’라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성 교사는 “암기식 지식을 테스트 하는 건 시대의 흐름과 맞지 않는다. 미래의 핵심역량은 지식이 아니라 책을 읽고 자기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다. 학부모들의 저항도 생각보다 없다. 부모가 되면 방학기간 초등학교 문제집을 풀고 있는 게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반배치고사를 안보니 성적 장학금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되지 않을까 싶다. 기존 흐름을 좀 깨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일부 우려에 대해서도 그는 “충북에서 처음 시도된다는 부담감은 있지만 문제가 생기면 해결해 나가면 된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맞춰놓고 변화를 시도하기는 어렵다고 본다”라고 강조했다.

옥천여중은 충북형 혁신학교 1기로서 지난해 다양한 변화들을 이끌어냈다. 올해로 2년차를 맞는 옥천여중은 4년 단위호흡으로 공교육의 변화를 실현하고자 한다. △민주적 학교문화 만들기 △교사학습 공동체를 통한 협의 문화 만들기 △수업혁신 △평가혁신 등이다.

현재 옥천여중은 다른 중학교와 달리 수행평가 비중을 40%대로 끌어올렸다. 수업혁신을 하다 보니 평가에 있어서도 과거처럼 OMR카드에 의존하는 객관식 시험 체제가 무의미했다. 또한 1학년 2학기부터는 자유학기제로 한 학기동안 시험을 보지 않아 전체적인 학교 운영 방식과도 맞지 않았다.

성 교사는 “평가 방식에 대해 교사들이 같이 고민하고 논의하고 있다. 올해는 수행평가 비중을 50%대로 끌어올리려고 한다. 일부 예체능 교과의 경우 비중이 100%까지 될 수도 있다. 그러면 시험 보는 과목이 11개에서 7개로 줄어든다. 융합 방식의 평가를 도입하고, 지필고사라 하더라도 서술형 평가 비중을 높일 계획이다. 서술형 평가가 답을 외워 쓰는 게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묻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교사들의 재량권이 늘어나야 한다. 평가로 등수를 매기는 게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데 힘이 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미 교육부에서는 ‘성취평가제’를 도입해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 방식의 수행평가 확대를 강조하고 있다. 올해 고등학교 3학년까지 이에 해당된다. 하지만 일선학교에서는 여전히 등수가 매겨진 성적표를 보내고 있다. 옥천여중에서는 중학교 성적표에 등수와 점수가 기록되지 않는다. 모든 교과목의 평균을 내지 않고, 반별 줄세우기도 하지 않는다. 대신 절대평가인 ABCDE로 성적표가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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