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주에게는 연락조차 안 해…산자부 승인 후 일방적 수용 절차 진행
세종시 보이콧 ‘반쪽 운영’…법적 구속력 없는 협의체, 한계성 드러내

한국전력이 송전탑 건설과 관련해 ‘밀실행정’ ‘갑질행정’ 등 오명을 벗기 위해 오송 제2생명과학단지 송전선로 경과지 선정에 대해 최초로 제3자 주도 입지선정 시범사업을 진행했지만 진행과정에 대한 법적 구속력이 없어 반쪽자리 협의체로 전락하는 등 협의체 구성과 참여에서 문제점을 드러냈다. 또한 토지주들에게는 사전에 어떤 연락도 취하지 않는 등 사업진행과정의 폭력성 또한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전으로부터 입지선정 절차를 위탁받아 진행한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 이강원 소장은 “세종시 위원들을 참석시키기 위해 수차례 시청과 마을을 방문해 부탁했지만 거절당했다. 제도가 뒷받침되지 못한 상태에서 절차 개선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고 밝혔다.

무소불위, 전원개발촉진법

그동안 한전의 입지선정 과정은 폭력에 가까웠다. 입지선정을 위한 위원회를 열지만 위원들을 직접 선정하고, 위원회에서 송전선로 입지를 결정하면 그대로 밀어붙였다.

한전이 이처럼 간단한 절차를 통해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전원개발촉진법이 있다. 전원개발촉진법에 따르면 사업자가 산자부 장관으로부터 사업 실시계획을 승인받으면 도로법, 하천법 등 관련법에서 다루는 인·허가 사항을 모두 거친 것으로 판단한다. 산자부 승인만 받으면 무소불위의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입지 선정 등의 사업계획 수립부터 추진 과정, 보상 대책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를 주도적으로 강행할 수 있다.

땅주인들은 따져보지도 못하고 법에 근거해 자신의 땅을 수용 당한다. 오송 제2생명과학단지 송전선로 입지결정 과정에서도 예상 경로 토지주들이 협의 과정에서 배제됐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한 토지주는 “내 땅에 송전탑이 세워질지도 모르는데 누구 하나 연락해주지 않았다. 11월 주민간담회 뒤에야 친분있는 주민이 알려줘 사업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송전탑이 들어서면 땅값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매매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전 중부건설처 관계자는 “송전탑이 건설이 지가하락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은 인정한다”고 하면서도 “토지주와 사전에 협의하는 절차는 없다. 보상은 관련법에 따라 진행된다”고 말했다.

협의체 관계자 또한 “실제 측량을 해야지만 대상토지가 확정된다는 점에서 측량 이전에 진행되는 입지선정 협의체에 토지주를 포함시킬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보상은 토지이용에 따른 사용료를 지불하는 수준이다. 현행법 틀에서는 토지주가 하소연할 방법이 없다.

관렵법 제정으로 보상 길 열려

그럼에도 예전보다는 나아진 것이다. 2명이 목숨을 바친 밀양송전탑 사건으로 송전탑 건설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졌고, 정치권에서도 앞 다퉈 관렵법 개정과 제정을 진행했다. 2014년 송·변전설비 주변지역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법에 정한 기준에 따라 전자파 등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을 주변지역으로 정하고, 이 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 마을지원사업 등의 지원과 보상이 가능하도록 했다. 한전이 제3자 주도 방식의 외부 입지선정 절차를 도입한 배경이기도 하다.

그 첫 적용 사업지가 오송 제2생명과학단지 송전선로 건설 사업이다. 한전으로부터 첫 사업을 위탁받은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도 각오가 남달랐다. 이강원 소장은 “기존 입지선정위원회는 전문가로 구성된 반면, 우리는 주민 참여를 극대화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전문가는 교수와 설계사 한전 관계자로 제한했고, 각 마을의 이장과 이장단 협의회장을 포함시켰다”고 설명했다.

앞서 설명했듯 입지선정 또한 투표방식이 아닌 협의로 진행했다. 이 소장은 협의방식이 주민갈등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옥산면 주민들은 협의체가 내놓은 결과물에 대해 만족스럽지 못하다. 일부 주민들은 협의체가 이미 제외된 전동면 경유안을 끝까지 경쟁하는 것처럼 주민들을 속였다며 협의체를 신뢰하지 않았다. 주민들은 특히 세종시 관계자들이 단 한 차례만 참석했다는 점을 들며 협의체 자체를 부정했다.

이 소장은 “옥산주민들로서는 불만스러운 결과였겠지만 주민 피해를 최소화하고 현실적인 안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협의체가 법적기구도 아니고, 세종시 참여를 강제할 수 없었다. 투명한 절차와 합의를 통한 의사 결정을 시도했지만 제도적 결함이 있다”고 사실상 협의체 진행과정이 불완전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76만 5000볼트 송전탑…찜찜한 등산객

마을주민들에게는 영검한 산으로 여겨지는 동림산(해발 457m). 청주시와 통합되기 전 동림산은 청원군 서쪽에서 가장 높은 산이었다. 청원군은 수차례에 걸쳐 등산로를 정비하고 주차장까지 만드는 등 군민들의 휴식 공간은 물론 등산객 유치를 통한 관광자원 활용 등 다양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등산객들이 찾기에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하늘 위로 지나가는 76만 5000볼트 초고압 송전선로다. 그것도 모자라 인근에는 15만 4000볼트의 고압 송전선로가 하나 더 지나간다. 옥산면 경유안이 관철될 경우 여기서 연결된 15만 4000볼트 송전선로가 동림산으로 지나가게 된다.

76만 5000볼트 송전선로는 송전선로 중 최고 전압으로 밀양주민들이 목숨을 걸고 반대하던 그 송전탑이다. 송전탑 유해성 논란은 여전히 결론내리지 못하고 있지만 송전선로 전압은 변전소에서 각 수용가에 전기를 전달하는 ‘배전선로’ 전압의 6배 수준이다. 송전탑으로부터 노출되는 전자파에 대한 우려가 클 수밖에 없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02년 송전선로에서 나오는 극저주파 전자파를 ‘발암 가능성 물질’로 구분했다. 한전은 2007년 “전자파에 대한 ‘단기간 고노출’은 발암 요인이 분명하나 ‘장기간 저노출’의 경우 그렇게 판단할 과학적 근거가 미약하다”고 밝힌 점을 들어 반박하고 있다.

2013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장하나 의원은 한전으로부터 ‘가공송전선로 전자계 노출량 조사연구’ 보고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765kV 고압 송전선로 80m 이내에는 페이칭 보고서 기준으로, 어린이 백혈병 발병률이 3.8배 높아지는 3mG(밀리가우스자기장 세기 단위) 전자파에 연중 노출되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밖에도 유해성을 주장하는 여러 보고서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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