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근 전 경제실장, 명예퇴직 두 달 만에 서한모방 고문으로 취업
부동산개발로 사업전환, 산단 개발 참여…업무연관성 높아 뒷말 무성

지난 6월 말 명예 퇴직한 이충근 전 청주시 기획경제실장이 퇴직한 지 두 달 만에 서한모방 고문으로 취업해 뒷말이 무성하다. 그의 취업이 관심을 모으는 이유는 공로연수 대상인 이 전 실장이 명예퇴직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이 전 실장이 차기 행선지를 이미 정해놨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명예퇴직 전부터 그의 차기 행선지를 놓고 이런저런 추측들이 쏟아져 나왔다. 지난해 청주시시설관리공단 이사장으로 간다는 설을 시작으로 산하기관장부터 이승훈 시장 정책보좌관까지 설익은 소문들이 흘러 나왔다. 결국 그의 1차 선택은 서한모방 고문으로 결정됐다. 이 전 실장에 따르면 지난 1일부터 고문으로 출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 문 닫힌 서한모방

2014년 구조고도화사업 신청 ‘인연’

이 전 실장과 서한모방의 인연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서한모방은 모사·혼방사·직사 등 고급원사를 생산하는 섬유업체다. 해바라기 상표로 잘 알려진 서한모방은 지난 1954년 한국전쟁 후 청주방직으로 섬유사업을 시작한 향토기업이다. 청주산업단지 1호 입주기업이기도 하다. 청주산업단지가 조성되자 1974년 6만1484㎡에 현대적인 공장을 짓고 청주합섬㈜이라는 이름으로 별도의 회사를 설립해 소모사를 주로 생산했다. 1979년에는 청주방적으로 상호를 변경했고, 1995년 다시 서한모방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한때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기관인 석천여상을 설립하며 대농과 함께 청주산단 양대산맥으로 우뚝 섰지만 섬유산업 쇠퇴와 함께 생산을 중단하는 운명을 맞게 됐다.

공식적인 중단은 2012년이지만 섬유기업으로서 생명은 그보다도 수년전 끊어졌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하지만 서한모방이라는 이름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서한모방은 업종변경을 준비해왔고, 부동산개발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기업 인수합병과 부동산개발을 주 사업으로 하는 자회사 서한인베스트먼트(대표 전영훈)을 설립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서한인베스트먼트는 회사소개에 자사보유 부동산 개발을 주요사업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 전 실장과 서한모방의 인연도 서한모방이 부동산개발에 관심을 가진 것에서 시작한다. 지난해 청주시 기획경제실 소속 투자유치과는 산업통상자원부가 공모한 노후산단 구조고도화사업에 서한모방 부지를 활용한 계획안을 제출했지만 선정이 불발됐다. 한 관계자는 “서한모방 부지만 활용하는 계획안이었다. 논리구조에서 밀렸다”고 평가했다. 서한모방과 청주시는 함께 부지활용계획안을 작성했고, 이 과정에서 이 전 실장과 서한모방 측이 자주 접촉하면서 관계가 형성됐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결과물은 올해 나왔다. 노후산업단지를 대상으로 하는 정부의 경쟁력강화사업에 선정된 것이다. 지난해 산자부의 구조고도화사업에 신청했다가 떨어진 청주시가 올해 산자부의 구조고도화사업과 국토부의 재생산단사업을 합친 경쟁력강화사업에 재도전한 것이다.

지난해와 달리 대상지역을 청주산단 1·2 ·3· 4단지 전체로 확대하고 재생단지와 혁신단지를 거점으로 3곳의 부거점을 연결하는 형태로 구상했다. 총사업비 6185억원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번 사업의 두 중심축이 혁신단지와 재생단지다. 혁신단지의 상당한 면적이 서한모방 부지이고, 연접한 동원F&B·해태제과 부지가 포함된다. 재생단지는 한세이프와 조광피혁 부지가 중심이다.

서한모방은 이번 사업에서 단순히 부지를 제공하는 것이 아닌 시행사 형태로 참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민간투자가 큰 몫을 차지하는 이번 사업에서 토지주는 기존의 공업지역을 주거 또는 상업지역으로 변경한 뒤 일정부분을 기부채납하고, 나머지 부지에 수익형 사업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영이 대농부지 일부를 공공청사부지로 기부채납하고 아파트를 건설한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물론 단순히 아파트를 짓는 것은 아니다. 전체 경쟁화사업 틀 속에서 각각의 부지 성격에 맞는 시설들이 들어서게 된다.

▲ 문 닫힌 서한모방

옥산2산단까지…부동산개발 본격화

이 과정에서 청주시와 사업시행사는 기부채납 규모, 용도변경 등 여러 사안에 대해 협의를 진행해야 한다. 서한모방이 이충근 전 실장을 영입한 이유로 꼽힌다. 한 관계자는 “서한모방도 관피아 등의 시선에 부담을 느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이 실장이 고문으로 활동하면 사업 진행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전 실장도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청주산단 구조고도화 사업의 완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자신의 역할을 설명하곤 했다.

한 관계자는 이 실장의 취업에 대해 순기능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 관계자는 “업무연관성이 높다는 점에서 부적절한 취업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민·관합작 개발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두 기관을 잘 아는 이 전 실장의 참여로 사업이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서한모방이 이 전 실장을 고문으로 영입한 데는 분명한 목적성을 가지고 있다. 서한모방은 청주산단 경쟁력강화사업 외에도 옥산면 국사리 일대에 옥산2산단 조성도 진행 중이다. 현재 투자의향서를 제출한 상태로 각종 평가를 통과해야 한다. 당분간 청주시에 협조를 구할 일이 많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 전 실장의 취업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유다.

한편 4급 이상 공무원이 퇴직후 기관이나 기업에 취업할 경우 퇴직 전 업무와 연관성을 사전에 심사해 공직자 취업을 제한하는 제도가 운영되고 있지만 이 전 실장의 경우 해당 사항이 없다. 인사혁신처가 해마다 관련 기업이나 기관을 추가해 현재까지 1만여 기업과 기관을 사전 심사가 필요한 기관·기업으로 정하고 있지만 서한모방은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참여연대가 조사 발표한 ‘퇴직 후 취업제한제도 운영실태 보고서 2014’만 보더라도 현행 제도가 얼마나 무기력한지 알 수 있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공직자윤리위가 취업을 제한하지 않은 224명 가운데서도 최소 49명은 퇴직 전 소속 기관이나 부서와 업무연관성이 있는 업체에 취업해 이해충돌 가능성이 우려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걸러지지 않은 것이다. 인사혁신처가 제시한 제한기업에서도 이러한 상황이니 제한기업에 포함돼 있지 않은 수많은 기업에서는 어떨지 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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