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한다/주형민 청주노동인권센터 노무사

▲ 주형민 청주노동인권센터 노무사

내가 청주 지게차 산재 사망 사건을 알게 된 건 8월 20일경이었다. 그 사건은 7월 29일에 발생했는데, 8월 10일경 청주CBS에서 처음 취재하였고, 8월 18일경 JTBC 방송에 보도된 후 빠르게 전파된 걸로 알고 있다. JTBC 방송을 찾아서 보았다. 손석희 씨가 차분하게 “그는 살 수도 있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이어지는 영상은 충격 그 자체였다.

내수읍에 있는 어느 화장품 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운행하는 지게차에 깔려 수 미터를 끌려갔다. 이를 본 동료 노동자가 119에 신고하여 구급대원들이 출동했는데, 회사 관리자가 ‘단순 찰과상’이라며 이들을 돌려보낸 후 멀리 있는 회사 지정병원으로 싣고 가는 과정에서 시간이 지체되어 결국 재해 노동자는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 이게 이 사건의 경위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어이없어 했다.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는, 1분 1초가 아까운 상황에서, 출동한 119 구급대원들을 ‘침착하게’ 돌려보낸 회사 관리자. 이후 재해 노동자를 마치 짐짝처럼 회사 승합차에 실어 굳이 멀리 있는 지정병원까지 이송한 비상식적 행태. 이러한 회사 측의 행태를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지난주에 나는 이 사건에 관하여 여러 방송국과 인터뷰를 했다. 회사 측의 이처럼 해괴한 행태를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달라는 거였다. 여러 이야기를 하였다. 중대재해를 관계 기관에 보고했을 경우 기업이 입게 될 불이익, 건설업종에서 벌어지는 각종 산재 은폐 시도, 현행 형법과 산업안전보건법령의 솜방망이 처벌, 그래서 결국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을 제정하여 기업을 강력하게 제재해야 할 필요성 등등……

그런데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하지 못한 듯하다. 결국 사람의 생명과 건강보다 이윤을 앞세운 우리 사회가 이 노동자를 죽인 것 아닌가. 이 사건은 또 하나의 세월호 참사가 아닌가. JTBC 방송의 한 분석처럼, 청주 지게차 산재 사망 사고에는 세월호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무리하게 화물을 실었던 세월호처럼 지게차에도 운전자의 시야를 가릴 만큼 짐이 가득 쌓여 있었다. 팬티 바람으로 뛰어나온 선장은 지게차를 과속 운전한 운전사로, 사고 직후 해경이 아닌 청해진 해운에 전화했던 1등 항해사는 상사에게 보고하고 119 구급대원을 돌려보낸 회사 관리자로 바뀌었다.

살아날 걸로 굳게 믿고 객실에서 기다리던 아이들 대신, 공장 바닥에 누워 20분 넘게 고통을 호소하던 이씨가 있었고, 두려움과 공포에 질려가는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했던 안내방송처럼 내장이 손상된 이씨는 모포와 우산으로 가려진 채 방치되었다. 민간업체에 세월호 구조를 맡긴 해경처럼, 지게차 회사는 멀리 있는 지정병원으로 가서 내장이 파열된 이씨를 치료할 수 없는 정형외과 의사에게 이씨를 맡겼다. 그 사이 골든타임은 사라졌고 304명의 세월호 탑승객처럼 이씨도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지난 주말인 8월 29일에 서울역 광장과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500일 추모 행사에 다녀왔다. 잊지 않겠다고, 행동하겠다고 한 다짐이 벌써 무뎌진 나 자신을 추스르는 계기가 되었다. 이 정부는 세월호 참사를 금전 배상으로 빨리 마무리 짓고 싶을 것이다. 국민들이 세월호 참사를 빨리 잊어버리길 바랄 게다.

하지만 이 정부와 우리가 알아두어야 할 게 있다. 우리 사회가 세월호 참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청주 지게차 산재 사망 사건과 같은 중대 재해는 속수무책으로 계속 일어날 것이다. 마치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역사의 잔재가 끈덕지게 이어지는 것처럼, 세월호의 그림자는 유령처럼 우리 사회 곳곳을 배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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