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환 중에 국기게양대로 가 일장기에 큰절하고 죽었다는 이원하 씨
지원병 최초 전사자로 사후 금치(제1급 무공)훈장 받은 이인석 씨
일제 강점기, 일본이 우리 국민을 일본 천황의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 내세운 정책이 ‘황민화’다. 이를 위해 영웅이 만들어졌고 충북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원병 최초의 전사자로 기록된 이인석 상등병과 '국기 밑의 노인'으로 선전된 이원하가 일본이 만든 황민화 영웅이다.
이인석은 옥천군 하동리 출신으로 지원병 1기생(1938년 수료)이다. 수료 6개월 뒤인 1939년 6월 중국 산서전선에서 전사했고, 일본은 이듬해 이인석에게 조선인에게는 처음으로 1급 무공훈장인 금치(金치)훈장을 줬다. 그리고 일본은 언론을 통해 이인석을 충군애국의 모범이라 추켜세웠다.
또 한명의 충북 출신 영웅화의 주인공은 청주군 사주면 사창리에 살던 이원하 씨였다. 이 씨는 한국군 특무정교로 근무하다 1907년 군대 해산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왔다. 당시 신문 보도에 따르면 1939년 1월 26일, 당시 74세였던 이 씨는 감기에 노환이 겹쳐 심하게 앓고 있었는데 한밤중에 실종됐다. 사라진 이 씨는 집에서 200미터나 떨어진 국기게양대 밑에서 큰절을 하는 자세로 죽어 있었다는 것이 당시 화제가 된 내용이다. 그가 천황폐하가 사는 동쪽을 향해 엎드려 있었다는 설명도 덧붙여졌다. 그해 2월 이 씨의 이야기는 소학교 교과서에 실렸다. 애국의 전 조선적 모범 인물로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다. 그의 이야기는 후에 ‘국기 밑에서 나는 죽으리’라는 영화로 제작 돼 애국 교재로 사용됐다.
평생을 친일 연구에 바친 고 임종국 선생은 자신의 저서에서 이들 충북의 황민화 영웅에 대해 두가지 문제를 지적했다. “사실이라면 당시의 황민화 세뇌교육이 얼마나 철저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조작이라면 식민지 관료나 통치 당국의 교활성이 드러나는 대목”이라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