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검‧청소기‧칼 모든 것이 흉기…폭력피해 탈출했지만
가해남편 주거지 찾아와 2‧3차 폭행…대부분 강력범죄

파란 가을 하늘 아래 무심천을 동서로 갈라 85만명의 시민이 삶을 터전을 자리 잡고 있는 청주시. 이곳 어느 곳에 10여세대가 올망졸망 모여 살고 있는 다가구 공동주택이 있다. 외형만 보면 낡았다 싶은 것을 제외하곤 별반 다른 점은 없다.

이곳엔 웃음이 없다. 작은 발자국 소리에도 놀라고 집 근처에 눈에 익은 차량이 와 있을까봐 신경이 곤두서 있다.

방안에는 세간도 거의 없다. 그 흔한 텔레비전도 컴퓨터도 없다. 옷장도 없다. 최소한의 옷가지와 휴대 가능한 작은 가재도구만 있다.

없다는 것은 불편한 것이다. 하지만 이곳엔 없어서 행복한 것이 하나 있다. 오직 딱 하나, 바로 폭력을 행사하는 아빠 혹은 남편이 없다.

그랬다. 이곳은 가정폭력을 피해 탈출한 아이와 여성이 숨어 지내는 은신처였다. 그들은 분명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자라왔다. 그러나 그들의 실상은 사실상 무국적자 만큼 비참했다.

이곳에 있는 가정폭력 피해자들은 병원을 이용하지 않는다. 아니 못 간다. 4대보험이 적용되는 직장엔 취업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도대체 왜?

공권력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가정폭력의 사각지대에서 제2, 제3의 폭력을 피해 투명인간처럼 숨죽이고 사는 ‘가정폭력 난민’들의 눈물겨운 실태를 살펴본다.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 정보와 가족관계는 실제와 다르다는 것을밝힙니다. 기사에 나오는 개인정보에 의해 또 다른 폭력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어 일부 사실을 변형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 가정폭력 피해자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가해자가 현재의 거주지에 나타나 다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피해자인 한 여성은 “병원에 가면 전 남편에게 진료기록이 공개돼 아이가 아파도 병원을 갈수 없다”며 눈물을 흘렸다.사진/육성준 기자

엄마는 아이를 교회에 보낸다. 엄마가 아이를 교회에 보내는 이유는 믿음 때문이 아니다. 엄마는 아이가 친구들과 어울리며 놀 수 있는 안정한 공간이 필요했다. 엄마의 바람대로 아이는 친구들과 잘 어울렸다. 노래를 잘 했던 아이는 합창단에 들어갔다.

어느날 아이는 엄마에게 “엄마. 합창단 대회에 나가. 만약 내가 잘하면 유명해진다. 유명해지면 텔레비전에 나온대. 그러면 아빠가 보고 찾아오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그 뒤로 아이는 합창단을 스스로 그만뒀다.
 

“병원에 가보는 것이 소원입니다”

아빠는 아이를 어렸을 때부터 때렸다. 프라이팬이 옆에 있으면 프라이팬으로, 청소기가 옆에 있으면 청소기로... 이유는 없었다. 아빠가 기분이 좋으면 괜찮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모든 것이 폭행의 이유가 됐다.

두 세 살 아이가 정리정돈을 못한다는 것도 이유였고 말을 제대로 못한다는 것도 이유가 됐다. 아빠는 엄마도 때렸다. 엄마는 아이를 가졌을 때 아빠에게 맞아 고막이 찢어졌다.

엄마는 아이를 데리고 떠났다. 아빠의 폭력을 피해 무작정 나와 경찰의 도움을 요청했다. 엄마는 이후 여성의전화를 통해 이곳으로 오게 됐다. 이곳으로 온 이유는 단 하나. 연고가 없어아빠가 가장 찾기 힘들 것 같기 때문이다.

집을 나온 뒤로 아이와 엄마는 병원을 가지 않는다. 정 아프면 약국에 가 병원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는 약을 구입한다.

아이와 엄마가 병원을 가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병원을 가면 기록이 남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털어놓는 엄마는 끝내 눈물을 흘렸다. 엄마는 “도대체 내가 왜 이래야 되죠.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죠. 짐승같은 그×× 한테 맞은 피해자인데...”라며 울부짖었다.

 

“병원에 가면 기록이 남는다”

지난 6월 가정폭력을 피해 피난 온 A씨의 거주지에서 사고가 났다. A씨의 거주지에 남편이 찾아온 것. A씨의 남편은 새벽에 유리창을 깨고 그의 거주지에 침입했다. 부엌 칼로 아이들과 A씨를 협박한뒤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했다. A씨의 남편은 법원으로부터 접근제한조치를 받은 상태였다.

출동한 경찰도 무기력했다. 경찰은 범죄현장에서 A씨의 남편을 격리시켰지만 신체를 구속하거나 감금하지 않았다. 이 일이 있은 뒤 A씨는 청주를 떠나 다른 지역의 쉼터로 이동했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폭력남편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피난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안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A씨 사례처럼 가해자는 피난처에 다시 찾아온다. 기껏 가해자의 눈을 피해 왔는데 그가 다시 나타나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피해자로선 가장 무서운 일이다. 그렇다면 A씨의 남편은 어떻게 알고 거주지에 나타났을까?

이에 대해 가정폭력 피해자들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해 이혼하고 청주로 피난 온 B씨는“동사무소나 학교에서는 주거지에 대한 정보를 차단해 주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병원 진료기록이나 아이의 건강보험 등재정보를 노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B씨는 “공단에 찾아가 가정폭력 피해 사실을 밝히고 아이 아빠에게 관련 정보를 차단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공단관계자는 ‘자녀가 미성년자일 경우 친권자에게 정보를 제공해 주지 않을 근거가 없어 불가능하다’고 답변했다”고 말했다.

건강보험공단도 이같은 사실을 인정했다. 공단 관계자는 “부모에게 정보 제공을 하지 않을 규정은 없다. 이혼을 했다고 하더라도 부모가 미성년자인 자녀의 정보를 요청할 경우 공단이 가지고 있는 각종 정보를 제공하게 되어 있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가정폭력의 50% 이상이 강력범죄화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가정폭력은 이혼을 했다고 하더라도 가해자의 폭행이 멈추지 않는다”고 말한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주거 정보를 어디서 얻었는지 단정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정보 누출만으로도 병원조차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 어떻게 하나

학교는 ‘비밀전학’ 제도, 동사무소는 열람제한 조치

부부 중 어느 일방이나 자녀가 상대방의 폭행에 노출이 되어 정상적인 학교 생활이 힘들 경우 폭행의 가해자인 상대방에게 알리지 않고 자녀를 다른 학교로 전학시키는 제도를 소위 비밀전학이라고 한다.

통상의 전학은 공동친권자인 부부의 동의하에 진행이 되지만 비밀 전학은 폭행 등에 노출된 급박한 상황이기에 공동친권자의 동의가 필요치 않으며 부부 중 어느 일방의 요청에 의해 가능하다.초, 중등학생은 관할 교육청이 담당한다.

교육청 담당 부서는 전,편입학 부서이며 제도의 정식 명칭은 ‘가정폭력으로 인한 피해학생 전학제도’이다. 비밀전학을 원할 경우 가정폭력에 대한 상담이나 진단서, 형사 관련 서류를 만들어 담임선생님과 상담해 학교장 추천을 받은 다음 진행하면 된다.

동사무소에서는 당사자의 요청이 있으면 가정폭력 피해 사실이 확인 될 경우 가해자가 피해자의 주민등록등본에 기재된 정보를 열람하는 것을 제한한다. 또 가해자인 남편이 자녀의 친권자라고 하더라도 동의 없이 주민등록을 이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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