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물도 주시고 동해 물도 주소서. 용왕님 맑은 물 많이 주시옵소서."

 '우물물이 세 번 넘치면 말세가 온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충북 증평군 증평읍 사곡2리(사청마을)는 8일 '증평 사곡리 우물'(충북도 기념물 143호), 일명 '말세우물', '영천(靈泉)'에서 정주제(井主祭)를 지냈다.

정주제는 마을 공동 우물에 물이 잘 나오라고 치성을 드리는 일종의 '샘굿'이다.

이 우물은 극심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

올해 그렇게 가물었어도 말세우물은 평소보다 1~2자(尺·30~60㎝) 정도 내려갔을 뿐 5m 수심은 한결같았다.

마을에서는 정월대보름과 칠월칠석을 전후해 해마다 두 차례 우물 청소와 함께 제사를 올린다.

8일 영천 정주제에는 마을 주민과 장뜰두레놀이 회원 등 20여 명이 참석했다.

제사상에는 시루떡과 포, 제철 과일 등을 올려 놓고 마을 이장 연규학(59)씨가 제주를 맡아 진행됐다.

연 이장은 축문에서 "올해는 유난히도 가뭄이 들어 마실 물도 부족하고 온갖 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해 주민이 많은 걱정을 하고 있다"며 "부디 만백성이 평안하게 삶을 영위하도록 보살펴 주시옵소서"라고 기원했다.

제사에 이어 장뜰두레놀이 회원들은 풍물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했다.

말세우물은 버드나무 틀을 설치하고 그 위에 석축을 쌓아 올려 수백년이 지난 지금도 조선시대 우물의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사계절 가뭄이나 장마철과 관계없이 일정 수위를 유지하며 겨울에는 물이 따뜻하고 여름에는 물이 찬 것이 특징이다.

말세우물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조선 7대 왕 세조(재위 1455~1468)가 조카인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를 빼앗은 이듬해인 1456년 병자년 여름에 가뭄이 극성을 부렸다.

장삼을 길게 늘어뜨린 한 노승이 마을을 지나다가 갈증이 심해 아낙네에게 물을 청하니 물을 길어 온다는 아낙네가 한참 뒤에야 땀을 뻘뻘 흘리며 물동이를 이고 돌아왔다.

노승은 물을 마신 뒤 늦은 이유를 물으니 아낙네는 10리 밖에서 물을 떠 왔다고 했다.

노승은 물을 얻어 마신 감사의 뜻으로 우물터를 찾아주겠다며 사립문을 나서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가 큰 고목 옆 땅을 지팡이로 두드리더니 "자, 이곳을 파시오. 겨울이면 따뜻한 물이 솟을 것이고 여름이면 차가운 물이 나올 것"이라며 "가물거나 장마가 져도 물이 줄거나 넘치지 않겠지만 꼭 세 번 넘치는 날엔 말세가 되니 마을을 떠나시오"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이 우물은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1592년 정초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1910년 1월 중순 등 나라에 불운이 닥쳤던 시기에 물이 넘쳤다고 전해진다.

6·25전쟁 때는 우물 아래 1m까지 물이 올라왔고, 2009년 노무현 대통령 서거 전에도 물이 넘칠 조짐을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말세우물은 1947년 우물 석축 일부를 부분 보수했고 1996년 목재 귀틀난간을 대리석으로 교체했다가 2007년 상층부 우물 석축을 바른 층 쌓기로 보수하고 난간은 방부목 귀틀로 원형 복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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