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사람들/ 김동진 청주삼겹살 ‘함지락’ 대표

▲ ‘삼미족발’집을 운영하는 김진성·황연옥 씨(왼쪽부터).

청년실업 문제는 이미 우리사회에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다. ‘인문계 졸업생의 90 프로는 논다’는 풍자적인 의미의 ‘인구론’이나 요즘 세대를 ‘5포 세대’라 하여 연애, 결혼, 취업, 인간관계, 내집 마련 등 5가지를 아예 포기하는 세대로 규정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실제 최근 발표되는 청년실업률은 10%를 웃돌며 역대 최고치를 보여주고 있다. ‘청년 3명 중 1명은 논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취업보다는 창업을 통한 청년실업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청년창업 지원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거의 모든 대학교에서는 창업 동아리나 창업보육센터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정부 부처에서도 경쟁적으로 창업자금 지원방안을 발굴, 시행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각종 정책에도 불고하고 청년실업 문제는 좀처럼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안타깝게도 청년층의 창업은 갈수록 줄어들며 정부의 의도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지난해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연령대별 사업체수는 20~30대에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20대가 대표로 있는 업체는 전년에 비해 9.7%(7400여 곳)가 감소하였고, 30대는 무려 18.1%(9만 7000여 곳)가 감소했다.

청년창업이 부진한 상황에서 조심스럽게 접근해 볼 정책이 다름 아닌 ‘가업 잇기’가 아닐까 한다. 처음부터 경험도 부족한 상태에서 막대한 자금을 들여 창업하기보다는 부모님과 함께 일을 하며 경험과 노하우를 쌓은 뒤 창업이나 사업 확대를 모색하는 것도 청년실업 해결책의 하나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청주 북부시장에서 36년 동안 족발을 팔아 온 삼미족발 집에는 요즘 32살 짜리 손자가 식당일에 가세했다. 지난 79년 연규순(2003년 작고) 할머니가 족발집을 시작한 뒤 84년에 아들 김완식(68), 며느리 황연옥(60) 부부가 합류한 데 이어 지난해 말에는 손자 김진성(32)씨도 동참해 ‘3대 가업식당’이 되었다. 김 씨는 대학을 졸업한 뒤 2년 정도 직장생활을 했지만 여의치 않아 그만두고 다시 2년 동안 인근 식당에서 일을 하며 영업 노하우를 배워 얼마 전 돌아왔다. 김 씨는 “어릴 때부터 할머니와 부모님이 하시던 일을 봐 와서 하나도 낯설지 않다”라며 “다른 식당에서 배운 경험과 노하우를 접목해 더욱 유명한 식당으로 만들고 싶다”라고 말했다.

북부시장에서 30년 넘게 축산물을 취급하고 있는 북일 축산물집 손자 길민준(35)씨 부부도 8개월 전 시장 안에 북일 곰탕정육점을 개업했다. 지난 97년 작고하신 할아버지를 이어 아들 길선복(55)씨 부부가 축산물 가게를 운영하다 이번에 손자까지 같은 업종에 종사하고 있으니 역시 ‘3대 가업’인 셈이다. 손자 길 씨는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공무원 준비를 했으나 결혼하면서 식당을 운영하기로 했다. “아버지의 축산물 가게를 찾으시는 손님들이 저의 식당까지 찾아주시는 덕에 많은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22년째 이곳에서 백만불 야채가게를 운영하는 심귀숙(51)씨의 아들 반영재(27)씨도 어머니를 도와 야채배달을 하고 있다. 반 씨는 대학에서 요리를 전공하기도 했으나 6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군 제대 후 벌써 5년째 어머니를 도와드리고 있다. 반 씨는 인근 청주대학교 근처에 있는 식당에 주로 야채를 배달하고 있다. 반 씨는 “특별히 취업할 생각을 느끼지 않는다. 결혼 후에도 아내와 함께 야채가게를 운영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청년창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예산이 1조 5000억 원을 웃도는 상황에서 가업을 잇는 이들에게 지원되는 창업지원 정책이나 지원금은 따로 없다. 벤처기업이니 뭐니 해서 부가가치가 높은 업종에 ‘아니면 말고 식’의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대를 이어 자영업을 하려는 청년들을 위한 정책적 배려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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