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지역 수제자 활동반경 넓혀…작업실 ‘연꽃 빌리지’ 명소
진천읍 문봉리에서 연꽃 빌리지를 운영하는 철암(鐵庵) 노영동 화백(69세)이 진천에 정착한 것은 지난 2012년이다. 그동안 고향인 충남 서산과 스페인, 중국 등에서 살아왔고 오래동안 서울에서 살아온 그는 10여년 전 진천에 내려와 제2의 고향으로 뿌리 내리고 있다.
노 화백은 6600㎡ 규모의 연(蓮) 밭을 만들고 과거 화전이었던 곳에 뽕나무를 심고 가꾸어 연꽃으로 둘러싸인 이곳에 집을 짓고 간판은 없지만 ‘연꽃 빌리지 미술관 사람들’이라고 명명했다.

둥근 연꽃 빌리지 내부는 갤러리 형태를 띠고 있다. 화장실과 침실만 구분한 하나의 공간으로 작은 살림만 있을 뿐이고 손님을 배려한 몇 개의 의자와 벽에 걸려 있는 그림들, 공예, 서각, 솟대 등이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갤러리를 연상케 한다.
노 화백은 “하루 평균 30여명의 손님들이 다녀가지만 작품활동에 크게 지장을 받지 않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해 작업을 하다가도 쉽게 어울리고 있다”고 말했다.
노 화백은 연(蓮)에도 애정을 쏟고 있다. 개인 작업실인 ‘연꽃빌리지 미술관 사람들’에서 창작활동과 연차시음, 한국화, 서각, 공예 등을 수제자들에게 무료로 가르친다.
진천의 후학들을 위해 전공자든 비전공자든 가리지 않고 예술에 꿈을 두고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후학들에게 한국화와 서각, 공예 등 가르쳐 줄 수 있는 건 아낌없이 전해주고 싶다는 것이 노 화백의 심정이다. 진천지역에서는 이미 많은 제자들이 그를 통해 화단에 발을 들이고 있다. 제9회 대한민국 평화예술대전에서 많은 입상자들이 진천군에서 나왔고 그들이 노화백의 수제자들로 활동하고 있다.
또 직접 재배한 한국 연을 한국정원에 최초로 분양하며 주 프랑크푸르트 한국대사관 한원중 총영사로부터 감사장을 받기도 했다.
다도에도 조예가 깊은 그는 2012년 6월 프랑크푸르트 한인회에서 주최한 ‘전통문화 나눔 축제’에서 한국화 개인전과 함께 연잎차 시음 행사 등을 열며 호응을 얻었다. 이와 함께 이미 학생과 일반인들이 다도 체험을 했었고 그의 작품을 보고 연잎차도 마시며 효소를 담그기 위해 한 달에 35명 정도가 진천읍 문봉리 우무레골을 찾고 있다.
진천에서는 연과 관련된 체험행사를 비롯해 깃발·솟대·연꽃축제 등 각종 문화행사가 매년 개최되고 있어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거듭나고 있다.
노 화백이 진천향교에 한국화와 서각을 전시할 때 제자인 안유자 작가와 장희백 작가의 인연이 큰 몫을 했다. 풍수지리가 고(故) 지창용 선생과 진천에서 빛을 보기로 약속한 노 화백은 “한국 명인촌을 진천에 조성해 앞으로의 여생을 예술문화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컵라면 하나 먹지 못해 굶기를 밥 먹듯 벗 삼던 시절이 엊그제 같다. 너무 힘들었던 지난 시절을 뒤로 하고 이렇게 좋은 분들과 함께하고 그들에게 기댈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철암 노 화백은 근대 한국화단의 6대 작가로 손꼽히는 심산 노수현 화백의 손자로 집안에 내려오는 화풍을 이어 소년기부터 산수화를 그려온 동양화가다.
지난 2013년에 5월에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가 주관한 대한민국 명인 설발대회에서 한국화가로서는 처음으로 비구상 부문 명인으로 선정됐다.
최근에는 작품 ‘세월호 2탄’에 세상을 떠난 아까운 영혼을 위로하며 절절한 아픔을 표현했다. 그림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노 화백의 애절함과 주변에 아낌없이 베푸는 배려심이 진천에 정착한 노 화가의 웃음속에 피어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