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故 김응현 단원고 교사 형 김응상 보은자영고 교사

“잊을 수가 없죠. 지금도 눈감으면 떠오르는데 2014년 4월 16일 사고 전날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지난해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제자들과 함께 목숨을 잃은 청주 신흥고 출신 고 김응현 단원고 교사의 형인 김응상 교사(56·보은 자영고)는 울분을 삼키며 1년을 보냈다.
 
김 교사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막내 자식을 잃은 모친 때문에 울고 싶어도 마음 놓고 울 수도 없었다. 그런 그도 11살 어린 막내 동생이 너무 그리워 지난 겨울 술을 실컷 마신 뒤 안방 문을 걸어 잠그고 목놓아 울었다. 사고 이후 딱 한 번 울었다는 김 교사는 인터뷰 내내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쳐냈다.
 
제자들에게 `아빠 선생님'으로 불렸던 고 김응현 교사는 지난해 4월 수학여행을 떠나기 이틀 전 형수와 통화를 했다. “수학여행에서 돌아오면 형수님께 보약 한재 해드릴게요”라는 말을 남긴 고 김응현 교사는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보은 삼승면 출신인 고 김응현 교사는 홀로 계신 모친을 보기 위해 고향을 자주 찾았다. 김응상 교사가 동생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사고가 나기 3일 전인 2014년 4월 13일이었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 어머니 얼굴을 보겠다고 찾았던 시골집에는 아직도 고 김응현 교사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김응상 교사는 “5남매 중 장남인 나와 11살 차이가 나다보니 내가 대학 1학년 때 8살인 막내동생을 무릎에 앉혀 놓고 TV를 함께 봤다”며 “내가 도시로 나가 공부할 때 고향에서 부모와 지내던 응현이는 착하고 정이 많은 아이였다”고 회상했다.

청주 신흥고를 거쳐 충북대 과학교육과를 졸업한 고 김응현 교사는 사립학교인 수원 매향정보고에서 근무하다 지난해 3월 1일자로 공립고인 안산 단원고로 옮겨 2학년 8반 담임을 맡았다.
 
세월호 사고가 난 뒤 한 달 동안 김응상 교사와 그 가족들은 동생의 시신을 찾지 못해 애를 태웠다. 고 김응현 교사의 시신은 지난해 스승의 날 하루 전인 5월 14일 발견됐다. 고 김응현 교사가 가족 품으로 돌아온 날은 중 2였던 막내 아들 생일 전날이었다.
 
2014년 5월 15일 스승의 날 고 김응현 교사의 빈소가 차려진 안산 제일장례식장에는 고인을 따르고 존경했던 제자들로 넘쳐났다.
 
김응상 교사는 “상주와 절도 하지 말라고 당부할 정도로 수많은 제자가 찾아와 동생의 마지막 길을 지켜주는 모습을 보고 막내가 학교생활을 참 잘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며 “돌아갈 수 없지만 지금도 사고 나기 전날로 시간을 멈추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학 시절 지도교수의 유학 권유에도 큰 형과 같은 교직을 택한 고 김응현 교사. 그를 떠나 보낸 뒤 남은 가족들은 정신·육체적 고통에 시달려 1년간 보은 시골집을 찾지 않았다.
 
김응상 교사를 더욱 아프게 한 것은 자식을 잃은 어머니가 내색하지 않고 참는 모습을 볼 때다. 가슴에 묻은 자식 때문에 잠 못 이루는 어머니를 생각해 김응상 교사는 이제 동생을 놓아줄 생각이다.
 
김 교사는 “세월호 사고는 가족의 아픔이 아니라 국민적 아픔이다. 살아난 학생들도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며 “유족의 한 사람으로 대통령이 약속한 대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를 지켜주길 바랄 뿐이다”고 말했다.
 
김응상 교사는 지난 12일 동생이 잠들어 있는 서울 추모공원에 다녀왔다. 살아생전 살갑게 대해 주지 못해 늘 미안했다는 그는 동생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단다. “미안하다. 그리고 너무너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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