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4일 구름도 시원한 바람도 없었던 날.

 미적지근한 개울물에 산그늘이 내리니 발걸음 보다 마음들이 더 급하다. 아이들은 자기 어머니에게 언제 갈 것이냐 채근을 하고 어른들 핸드폰은 더욱 자주 소리를 질러댔다. 일정은 촉박하고 보아야 할 곳은 많은데 오늘도 나 때문에 출발부터 늦어졌다. 하천정비 라는 사람들의 간섭 때문에 물도 우리들 마음처럼 조급히 흘렀다.

 먼 옛적이 아닌 우리들 어려서만 하여도 개울은 물만 흐르는 곳은 아니었다. 냇가에는 물길보다 넓은 모래밭, 자갈밭, 갈대밭이 있었다. 그곳은 우리의 일터고 놀이터이며 보물창고이고 본부였다.

 물가 모래를 파서 샘을 만들고 고무신짝에 잡아온 가재며 물고기들을 넣고 꽃을 따고 풀을 꺾어다 물위에 띄워 햇볕을 가려주었었다.  꽃과 풀잎사이로 파란하늘과 하얀 뭉게구름이 나려 앉으면 맑은 물과 함께 우리마음도 차고 넘치었었다. 개미귀신들이 함정을 파고 사는 모래 벌 개미귀신마을은 때론 우리들의 씨름판이었고 두꺼비 집을 짓고 길을 닦고 다리를 놓고 성을 쌓으며 수 십배 수 백배로 커지길 바라던 우리들의 왕국이었다.

 자갈밭에 낄룩이(꼬마물떼새)가 조약돌 같은 알을 낳으면 보물찾기하듯 찾아내어 가장 친한 동무에게만 살짝 알려 주고 언제 새끼가 나올까 몰래몰래 살펴보았었다.여름이면 자갈밭과 풀밭이 만나는 즈음에 나무와 갈대를 꺾어다 우리들의 아지트를 지었다. 때로는 며칠 걸리기도 하였는데 어렵게 지어놓고 들어갔을 때의 그 기분은..

 드넓은 풀밭은 갈잎이 필 무렵 소 풀을 잡히면 가을까지 다래끼나 작은 바소쿠리 얹은 장난감 같은 기개를 걸머진 우리들의 풀베기 작업장이었고 소와 염소, 사람이 함께 뛰어 노는 방목장이었었다. 그 곳에는 우리들의 허기와 따분함을 달래줄 딸기넝쿨도 있고 개똥참외와 새집도 있었다. 최고의 영양 간식인 개구리 뒷다리 구이용인 개구리들도 많이 있었다.

▲ 제방을 높이 쌓고 직강화를 하게 되면 수달뿐 아니라 다른 동식물이 서식할 수 있는 공간을 빼앗게 된다. 그리고 홍수때 물이 저류할 수 있는 공간을 없앰으로써 하류의 홍수피해를 극대화 시키기도 한다. 우측에 보이는 포크레인은 바위가 물의 흐름을 막는다고 파쇄하는 모습. 더러는 자라가 알을 낳으려 모래밭과 논이나 밭까지 올라오기도 하였었다. 자라는 칠십 년대 까지만 해도 큰 돌이나 바위위에서 놀다 사람의 자취가 나면 물속으로 뛰어들고 조용해지면 여기저기 수면위로 머리를 내밀곤 하였었다. 반두(족대)에도 소두방(솥뚜껑) 만 한 놈들이 잡히곤 하였는데 고기 잡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그물을 찧는 골칫거리정도로 흔하였었고, 일부 폐결핵 환자들이 약으로 먹는다고들 알고 있을 정도였었다. 그 당시 백말을 타고 다니던 쌀안장터 부자 집 할아버지 네는 용왕을 믿어 아들을 보았다 던 가 여하튼 자라 잡은 것을 알면 돈을 주고 사서라도 물로 돌려보내 주곤 하였었다. 그렇게 흔하던 자라들이 아직 어딘가 살고 있을 것 같아 있음직 한 곳을 살펴보았지만 흔적도 없었다. 넓은 모래밭, 자갈밭, 갈대밭을 모두 밀어 제방을 쌓았으니 어디 사라져 간 것이 자라뿐 이겠는가?자기 아내를 우리 마누라라 하는, 우리를 중시하는 우리네 마음도 돌망태에 담아 방차로 쌓았는가? 아니 “우리정신”을 보존하기 위해 정부가 해마다 다시 쌓아야 하는 제방 공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노란색이다, 파란색이다. 진보다, 보수다. 수도권 사수다, 이전이다. 갈기갈기 흩어지는 민심을 잡기위해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전에는 간첩을 많이도 잡았었다. 나라에 큰일이 있으면 때 맞춰 용케도 큰 간첩을 잡곤 하였던 것 같다. 그때 다 잡아서 없는지 이제 그렇게 위기를 극복할 방법으로 써먹을 수가 없는 것 같다고들 한다. 그렇다고 이제 다시 월드컵을 해마다 치룰 수도 없지 않은가? 그러니 해마다 제방을 쌓는 것은 국민들의 마음을 한데 모아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애국심을 고취시킬 수 있는 기가 막힌 방법인 것 같다. 우리들은 그간 보지 않았는가? 어린이집 꼬마들로부터 경로당 유류대를 절약하여 들고 나선 노인들까지 온 국민이 당을 초월하고 이념을 뛰어넘어 도시와 농촌이 손잡고 몰려와 수재민을 돕기 위해 모금함 앞에서 몇 시간 씩 줄지어 기다리던 행렬을. ▲ 야외에서 간단하게 수질측정을 할 수 있는 키트가 있어 이를 이용해 달래강의 수질을 측정하고 있다.
오늘은 먼 저번 시간에 쫓겨 차로 이동한 지역을 다시 조사하기 위하여 산외면 장갑천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탐사를 시작하였었다. 첫 조사지점의 수온이 오전10시경에 이미 27도가 넘었었다. 물길을 직선으로 하고 바닥을 평탄화 하여 그늘을 드려주던 수서 식물도 물을 식혀줄 수생식물도 모두 밀어 버린 것이 수온이 높은 원인중의 하나 일 것이다. 중간 중간 조사한 지역도 수온이 30도를 육박하였으며 마지막 조사지점인 중티 보는 수온이 32도 였었다.

 물고기나 수서곤충도 종이 다양하지 않았다. 전에는 상류까지 흔하던 올갱이가 오대 다리에서 겨우 몇 마리 볼 수 있었다. 개울 바닥을 해마다 밀어내니 물고기인들 올갱이인들 어찌 새끼를 치고 살 수 있겠는가? 공사를 할 수 없어 그나마 한 쪽이라도 자연 경관이 살아 있는 지역은 보를 막아 물을 가두어 놓았다. 그리고 경치 좋은 곳마다 들어앉은 무슨 유스호스텔이다, 수련원이다, 기도원이다, 하는 곳에서 제각각 사람들을 불러 모아 무리지어 레프팅인가를 하느라 보를 막은 곳 마다 울긋불긋 시끌벅적 시장바닥 같았다. 그러니 설령 수달이나 자라가 있었어도 살아남으려면 피난을 갔을 것이다. 오늘은 하루 종일 십여 킬로 개울을 따라 오며 흔히 볼 수 있는 백로, 청둥오리도 볼 수가 없었다.

 물 온도가 30도가 넘어서니 물에 들어가는 것이 짜증스럽기도 하였지만 어디 가서 더 놀다 갈 것이냐? 언제 가느냐? 하는 처음 따라온 초등학생들의 보챔이 조사에 도움이 안 된다 싶어 은근히 마음 쓰였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아이들이 아무 곳이고 펴놓고 쉴 수 있는 개울이 모두가 어우러져 함께 살 수 있는 개울이고 강이리라.
 
 사라진 것의 자취를 찾아 헤매는 조사가 아닌 돌아 온 것을 확인하는 조사가 되면 꼬마물떼새 알을 찾는 것 만큼이나 신명이 날 터인데..

 지금이라도 자갈밭은 자갈들에게 갈대밭은 풀들에게 돌려주면 큰비가 오면 물은 모래밭을 쓰다듬고 자갈을 씻어주고 갈대밭에서 갈대와 개구리와 한 나절이고 하루고 놀다 조용히 갈 것이다.

 바짝 쌓아 논 둑을 넘어 논밭을 쓸어 덮지 않을 테고 둑을 허물어 모래와 자갈을 실어다 하류에 옮겨 놓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요즘은 좋은 땅도 묵히면(휴경) 보상을 해주는데 제대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산골짝부터 정부가 수용하여 자연에게 돌려주면 해마다 겪는 수해를 많이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산골짝 밭에 수해를 당해 보았는데 단 몇 번의 수해복구 비로 땅을 사고도 남을 것 같았다.

모래밭을 개미귀신들에게 다시 돌려줄 날을 기다리며..
2004.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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