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고니소리’ 작곡발표회 여는 향토작곡가 김강곤 씨

                                                   사진/육성준 기자

김강곤은 20여 년 간 지역에서 음악가로 살았다. 89학번 운동권 학생이었던 김강곤은 노래패에서 활동했지만 그의 음악의 시작은 충북대 자연대 밴드동아리 ‘블랙홀’이었다. 강의실보다 동아리실에서 일렉트릭 기타를 쳤던 그는 점차 음악의 매력에 빠졌다. “학교는 꽤 오래 다녔지만 졸업은 하지 못했어요. 하드록, 헤비메탈을 주로 했어요.” 김 씨는 특유의 큰 눈을 껌뻑 거리고 말하지만 그의 헤비메탈은 영 상상이 잘되지 않는다. 머리도 길렀느냐고 물으니 옅은 웃음을 보여준다.

운동권 학생, 음악은 위로였다

그의 고향은 여수다. 대학에서는 노래패 ‘여명’에서 활동했고, 이후 사회노래패 ‘노래세상’에서 있다가 고향으로 갔다. 1~2년 있다가 96년 다시 청주에 왔다.

청주에 올라와 당시 두레마을(지금의 예술공장 두레)을 찾아간다. 첫 작업은 환경에 관한 무용극 ‘내 물아 흘러흘러’였다. 그 후로 무용극, 마당극, 연극음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스펙트럼이 넓혀졌다. 97년에는 권택중씨와 함께 실내악단 ‘신모듬’을 만들어서 대중음악이나 민중가요를 국악풍으로 바꾸는 작업을 했다. 그는 이 시기에 대해 “음악적으로 나만의 색깔을 만들어냈죠. 국악에 대한 형식을 갖고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죠”라고 말한다.

시간이 흘러 그의 작업은 이제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찾는 이들이 많다. 이번에 김 씨는 ‘고니소리’작곡발표회를 3월 6일 오후 7시 30분 청주예술의전당 소공연장에서 올린다. 그동안 했던 음악들을 모아 25곡이 수록된 CD도 발매할 예정이다. 이번 무대에는 지역의 예술가뿐만 아니라 전국의 예술가들이 함께 할 예정이다. 또한 베트남 친구인 푸엔씨가 베트남 시곡을 직접 부른다. 김씨가 베트남 시에 곡을 붙였다. 김 씨의 아들인 김지후(성화중 1학년)군은 아빠가 작곡한 곡을 직접 부른다. 이번 공연의 입장료는 ‘감동후불제’다.

그는 10년 전 ‘마당의 소리’ 작곡발표회를 연 바 있다. 이 후 10년 만에 2번째 음악회를 개최하는 것. “10년 전 발표회를 연 후 5년 후에 하겠다고 다짐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 꼭 10년 만에 다시 발표회를 여네요.”

20년 음악 활동, 200편의 곡

그의 등장은 지역 음악계에 큰 변화였다. 이전까지는 무대에 따른 창작곡이 없었다. 기존 음악을 편집하는 수준이었지만 김 씨는 무대에 따른 곡을 만들어냈다. 그의 손을 거쳐 간 음악만 해도 약 1000여 편. 이 가운데 실제 악보로 정리된 게 200여 편이다.

그는 “작곡가는 창작욕구가 강하기 때문에 어떤 무대의 배경이 되는 것만을 만들어내는 게 심심할 수 있어요. 언제부터인가 공연의 주제에 맞게끔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도 창작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이제는 음악을 갖고 이야기를 만들 수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자신감이 붙은 그는 이제 욕심을 낸다. 지역을 기반으로 한 노래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지용의 시 ‘향수’에 곡을 붙여 작품을 쓸 수도 있고요. 지역의 소재를 갖고 유명한 곡을 만들고 싶어요. 직접 쓸 수도 있겠죠. 그리고 후배들에게 지역에서도 음악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그런 나이가 된 것 같아요.”

김 씨는 한 번도 직장을 잡아본 적이 없다. 평생 프리랜서로 살았다. “음악을 만드는 일, 연주를 하는 일, 음악을 가르치는 일 세 가지 일을 해요. 처음에는 생활이 안 되고 작업도 안 쌓이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여건도 달라지더라고요. 요즘에는 가르치는 일들이 생겨서 시간을 쪼개서 써야 할 때가 많아요. 그래서 직장인들과 크게 다를 바 없지 않나 생각해요.” 그는 노인복지관에서 어르신을 대상으로 우쿨렐레 강의를 하고, 가경동 시장밴드에선 악기를 가르치고 있다.

김 씨는 음악 외에도 여행에 관심이 많다. 2001년 남미를 다녀온 것은 그에게 문화적 충격이었다. “안데스 음악이 갖고 있는 낙천성에 놀랐어요. 음악이 갖고 있는 혁명적인 에너지가 자극이 됐죠.”

이후 충북민예총과 베트남 푸옌성과의 교류사업으로 2005년 처음으로 베트남을 찾은 이후 그는 지금까지 총 11번 베트남을 갔다 왔다고 한다. 그는 틈틈이 베트남어를 배우면서 베트남 전역을 여행했다. 지역마다 친구를 사귀어두었다고 한다.

그는 음악을 통해 그 지역의 역사를 기록하고 싶어한다. 제주도 4.3의 노래를 기록하고 있는 최상돈씨를 따라 유적지를 돌면서 음악여행을 한 적도 있고, 빨치산의 노래를 채록해 2008년에 ‘파트티잔’의 노래를 음반과 악보로 낸 적도 있다.

“우리지역의 보도연맹 사건도 음악으로 기록하고 싶어요. 보도연맹 관련 연극 ‘귀동아 방귀동아’ 음악작업도 했고, 해마다 위령제가 열릴 때 참여하고 있어요.” 그는 이번 작곡발표회를 통해 지난 10년의 세월을 덜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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