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에게 물리고 철판에 찍히고…청주시 수도검침원 노동현실 '충격'
위수탁계약자는 파리목숨…쉴수도 없고 산재보험 적용 꿈도 못꿔

▲ 9일 청주시의 수도요금검침 업무를 수행하는 검침원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위탁계약은 불법파견”이라며 “청주시가 직접고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 수도계량기는 철판으로 덮여 있고 그 위에 자전거가 거치돼 있다. 검침원들은 이 물건을 치운뒤에야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 피멍든 수도 검침원의 팔. 검침원들은 업무 과정에서 크고 작은 부상을 입는다.

수도검침원들이 말하는 노동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그들은 개에 물리고 사다리를 타다 넘어졌다. 30Kg 철판에 손등이 찍혀 분쇄 골절을 입고 깁스를 했다. 때론 도둑으로 몰려 경찰서에 불려가고 일부 주민들의 욕설에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2003년 수도검침원 일을 시작한 김선화(58, 가명)씨. 그의 오른손 엄지 손가락은 한쪽으로 휘어 있다. 김 씨는 2011년 강서1동의 한 주택을 검침 할 때 수도계량기를 덮고 있는 철판을 치우다 놓쳐 오른손을 다쳤다고 말했다. 김 씨는 분쇄골절 8주 진단을 받고 깁스를 했다.

일반 직장인들이라면 산재보험이 적용돼 일을 못하더라도 급여를 받을 수 있지만 김 씨에게는 남의 일이었다.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산재보험은 언감 생신이었다.

김 씨는 자신이 생계를 책임진 워킹맘이라고 했다. 월급이 아니라 검침한 숫자만큼 수수료를 받는 김 씨는 한 손을 깁스한 상태에서 일을 했다. 검침한 결과를 기록지에 옮겨야 하는 김 씨는 왼손으로 했다. 무거운 덮개가 있는 곳에는 아들과 여동생의 도움을 받아 일을 했다. 김 씨는 휘어진 손을 보여주며 눈물을 흘렸다.

김 씨의 말을 들은 서화숙 씨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서 씨와 김 씨는 2003년부터 일을 시작한 입사 동기다. 서 씨는 “다쳤을 때 사무실에 이야기하면 쉴 수가 있다. 하지만 생계로 하는 입장에서는 급여가 나오지 않아 쉴 수가 없다. 설령 쉰다 해도 3개월 이상 쉬게 되면 일자리가 없어진다. 계약해지 한 장이면 끝나는 파리 목숨”이라고 말했다.

욕설 다반사…도둑 오인 신고도

서 씨는 일하는 동안 가장 힘든 것중 하나로 민원인들의 욕설과 막말을 꼽았다. 2013년 어느날 그는 사창동의 모 상가를 검침한 결과 전 달 보다 10배 정도 사용량이 급증한 것을 발견했다. 사무실에 들어와 상가 주인에게 전화를 해 “사용량이 급증해 이상하니 누수가 되는 곳이 있는 것 같으니 점검을 하라”고 안내했다.
 
그러자 상점 주인은 귀찮다는 듯이 전화를 끊었다고 했다. 요금 고지서가 발송되고 난  3일 정도 후에 상점주인이 항의 전화를 했다. 상점 주인은 요금이 많이 나왔다며 온갖 욕설을 했다. 서 씨에 따르면 상점주인은 온갖 욕설을 다 한 뒤에 공무원을 바꿔달라고 하더니 담당 공무원에게는 조용히 항의했다.

수도검침원들의 말을 종합하면 요금고지서가 발송되고 나면 하루에 적게는 3~4통, 많게는 15통까지 항의 전화를 받는다.

민원인들의 항의 전화 이야기가 나오자 수도검침원으로 일하면서 노조 분회장을 맡고 있는 김달수 씨가 말을 이었다. 김 분회장은 처음에는 민원안내 스티커에 청주시 상수도본부의 전화번호가 있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2007년 어느 때인가 담당 공무원이 스티커에 기재된 연락처를 전부 지우라고 지시하고 검침원의 이동전화번호를 기재하라고 요구했다.

김 씨는 이 지시로 스티커에 기재된 연락처를 바꾼 뒤에는 항의 민원전화에 응대하는 몫은 고스란히 검침원에게 넘어왔다고 말했다.

철판 덮개 무게만 30Kg

수도 검침원들은 공포의 대상으로 철판덮개와 개를 꼽았다. 새로 지어진 아파트 같은 경우는 해당 사항이 없지만 상가 건물이나 일반 주택 같은 경우 수도 계량기 위치가 제각각이다.
 
건물 천정부분에 있는 곳도 있고 담벼락 밑에 있는 곳도 있고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공간에도 있다. 검침원들은 규격 덮개는 플라스틱이지만 파손을 방지하기 위해 많은 가정들이 철판을 덮개로 사용한다고 밝혔다.

여성 검침원들은  철판 무게가 보통 20~30Kg 정도 나가는데 여성들이 들기에 힘에 부친다고 말했다. 또 이 과정에서 여러 부상을 입는다고 했다.

서화숙 씨는 “개에 물려보지 않으면 검침원이 아니다”며 “두 세 번은 다 물린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서 씨는 업무 특성상 건물 내부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도둑으로 오인하고 경찰에 신고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서 씨는 자신의 동료 한명이 “사다리를 타고 검침을 하다 넘어져 머리가 깨지는 부상을 입고 심하게 출혈을 하고 있는데 경찰이 왔다. 동료는 자신을 도와주러 온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도둑으로 신고해 경찰이 출동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수도 검침원들은 월 2000개에서 3000개 주택의 수도 검침을 한다고 밝혔다. 이론상으로 하루에 100~150가구를 하면 되지만 사람이 없어 검침을 못하는 경우가 많아 200~300 가구를 방문하게 된다고 했다.

이들은 보통 일주일에 5~6 정도 일한다. 아침 7시면 나가서 6시 정도 까지 한다. 한 검침원은 “몸약한 사람은 일요일도 한다.하루 200~3백개 해서 토요일과 일요일에 쉬면 좋지만 몸살 나면 안된다”고 말했다.

이 검침원은 “직장인들은 일요일엔 웬만하면 쉰다. 그래서 나도 일요일 만큼은 쉰다. 남 보기 안좋아서 쉰다”고 말했다. 현재 청주시에는 41명의 수도 검침원이 일하고 있으며 이들은 일반단독주택 1채 720원, 아파트 450원씩 수수료를 받고 있다.

수도검침 용역은 위장 도급
공공노조, “불법파견인 만큼 직접 고용해야” 주장

청주시상수도사업본부와 검침원들 사이에 체결된 ‘상수도요금 검침 용역 계약’이 사실상 불법인 위장도급이라는 주장이 나와 파장이 일고 있다. 만약 이 주장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청주시는 검침원들을 직접고용해야 한다. 또 청주시 공무원들과 동일한 기준에 따라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만큼 거액의 배상책임도 발생한다.

지난 9일 공공서비스노동조합충북본부(본부장 김미경, 이하 노조)는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주장했다. 노조는 “현재 청주시는 수도검침원들을 대상으로 출근부 관리, 업무지시, 징계, 업무교육을 진행하는 등 실질적인 지휘?명령?감독을 진행하고 있다”며 “이는 불법파견에 해당하며 민간위탁계약은 위장도급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그 결과 검침원들은 노동자이면서도 개인 사업자로 분류돼 4대 보험, 퇴직금, 연차휴가도 부여되지 않는 불이익을 받았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도 청주시 위탁계약이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권영국, 류하경 변호사는 법률검토의견서에서 “청주시가 직접 업무를 배정하고 결과를 보고받는 점, 청주시의 징계요구에 따라 징계가 이루어지는 점, 기술과 업무 교육을 청주시가 하는 점에 비추어 볼 때 검침원들은 사업주로서 독립성을 갖고 있지 않아 위탁계약은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다”며 “위탁계약은 도급을 위장한 근로계약이라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권 변호사는 “위장도급에 해당하는 만큼 검침원들은 청주시에 대하여 근로자의 지위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청주시는  소속 공무원들이 받았던 임금 차액만큼 임금을 지급할 의무도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청주시상수도사업본부 관계자는 “민간위탁계약서에 의해 적법하게 이뤄진 것인 만큼 문제될 것이 없다. 법률 자문을 받은 결과도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한편 청주시는 기능직 공무원들이 수행하던 수도요금 검침업무를 2001년부터 민간위탁계약을 맺고 용역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12년까지는 일부 공무원들이 업무를 수행했지만 2013년에는 전체를 용역으로 전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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