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상 편집국장

지난 22일 청주지법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정 군수에게 벌금 200만원의 당선무효형을 선고했다. 여기에 더해 보은군이 업무상 관리하는 군민정보를 사용한 혐의(개인정보보호법 위반)로 벌금 300만원을 추가 선고했다. 군민정보를 불법 사용한 용도는 자신의 출판기념회 초청장 발송을 위한 것이었다. 수년전만해도 “그런 것도 죄가 되냐”고 고개를 갸우뚱할 일이다.
하지만 인터넷 네트워크 기반의 디지털 시대에 개인 정보보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루가 멀다하고 보도되는 보이스피싱은 그 대표적인 피해사례다. 따라서 사법기관도 개인정보보호법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하물며 지방자치단체장이 사적인 목적으로 개인정보를 무단 사용했다면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
문제는 보은군의 군민정보 무단 수집이 정 군수 선고공판 이후 또다시 불거졌다. 지난 12일 군수 비서실에서 읍·면 주민복지 담당에게 명단 메일을 보내 생존여부를 파악해 달라고 요청한 것. 대부분의 담당직원들은 군민 정보조회를 통해 생존여부를 확인하고 비서실에 통보했다. 하지만 일부 직원은 개인정보보호법에 저촉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비서실 요청을 거부하기도 했다는 것.
개인정보보호법은 당사자의 동의 없는 개인정보 수집 및 활용 또는 제3자에게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따라서 군수 비서실에서 명확한 공공목적도 없이 군민 정보를 수집 제공하는 것은 불법이다. 이에대해 군수 비서실에서는 “남부 3군 인구 늘리기 대책회의에 참석하는 군수에게 실제 인구 현황 자료를 제공하기 위해 급히 생존 여부 등을 파악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해당 부서를 통하지 않고 비서실에서 직접 지시한 것은 이례적이다. 또한 생존 여부 등을 파악해 달라고 보낸 명단이 특별한 기준 없이 작성됐다는 점도 발견됐다. 이에따라 해당 명단과 정 군수의 출판기념회 초청장 발송과 모종의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왜냐하면 생존여부를 회신받은 자료가 정작 남부 3군 인구 늘리기 대책회의에 활용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민선 자치단체장의 사적 이익을 위해 공무원들이 불법적인 개인정보 수집·활용에 동원된 셈이다. 불법여부를 알았든 몰랐든 지시를 내린 자치단체장의 책임은 막중하다. 자신으로 인해 자칫 징계와 공직퇴출 위기까지 겪게 된 부하직원을 생각해보라. 정 군수는 본인에 대한 변론보다 억울한(?) 부하직원들의 면책에 적극 나서야 한다.
또한 국회의원 선거구 지키기를 명분으로한 인구 늘리기에 공무원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도 삼가야 한다. 보은군의 경우 116명의 군청 공무원 주민등록을 이전시킨다는 계획이다. 지리적으로 청주와 가깝다보니 출퇴근 공무원이 많을 수밖에 없다. 거주이전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한 인간의 행복 추구권과 맞닿아 있다. 공직의 위계를 내세워 강제하다보면 결국 위장전입을 부추기는 결과가 될 것이다. 누가 뭐래도, 공공기관과 공직자는 법과 상식을 가장 두려워해야 한다. 예전의 ‘눈가리고 아웅’ 식은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정 군수가 반면교사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