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식 신임 청주노동인권센터 사무국장

“나에게 대학생 친구가 하나만 있었더라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근로기준법전과 함께 불꽃으로 산화한 고 전태일 열사는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이후 박정희 군사 독재하에서 암울한 사회현실과 맞서기 위해 대학생들은 농촌으로 공장으로 들어갔다. 이런 흐름은 80년대를 거치며 성과를 거둬 민주대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으로 피어난다. 그러나 성과도 잠시, 양 김의 분열로 인한 패배, 동구사회주의권의 몰락을 겪은 대학생들은 공장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오현식, 그는 노동운동의 불모지로 평가받았던 청주지역의 1세대 현장 노동운동가다. 지금은 구분법도 어색한 ‘학출(학생출신)’과 ‘노출(노동자출신)’을 따지자면 노출1세대 인 셈이다. 그는 1996년 노조민주화 투쟁을 하던 중 엘지화학에서 해고됐다.

그가 엘지화학에 입사 할 때 회사 명칭은 (주)럭키. 19년 동안 복직을 포기하고 노동조합의 연합단체에서 활동했다. 그가 몸담고 함께 했던 민주노총 화학섬유연맹과 화학섬유노조는 정식품, 엘지화학, 롯데네슬레 등 청주를 대표하는 노동조합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제 그가 일선 노동조합 활동을 접고 청주노동인권센터 사무국장으로 새 삶을 출발한다. 굳이 새 삶이라고 하기에는 어색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귀농을 계획했다.

하지만 그의 귀농 계획은 뒤로 미뤄지게 됐다. 더 낮은 곳으로 향하려는 조광복 노무사가 음성지역으로 이전을 계획하며 청주의 빈 자리를 오현식 국장에게 부탁했다. 이 제안을 수락한 그는 20년 전 ‘선진’ 노동자에서 이제는 ‘노동인권’ 맏형으로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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