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댐 공사로 인해 충북토지 989만 6천평이 수몰
압실 초가마을 민속마을로 조성 위해 행정선도 운행
대통령 별장 청남대가 건설되면서 모두 헐려

▲ 대청 다목적댐 1980년 12월 3일 준공식을 거행한 대청다목적댐. 충남북 2개도 4군 2읍 11면에 989만 6000평의 토지가 수몰되고 충북에만 1만 9273명의 수몰민들이 생겨났다. / 1983년 8월 1980년 12월 3일 국내 최대의 인공호수로 바다를 방불케하는 대청(大淸) 다목적 댐이 완공되어 준공식이 거행됐다. 전두환 대통령과 충남북 각급 기관장, 건설회사 관계자, 주민 등 5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역사적인 행사가 진행됐다. 정부의 4대강 유역 종합개발계획에 따라 75년 3월 착공, 5년 3개월만에 완공된 대청댐은 대전의 큰대(大), 청주의 맑을 청(淸)을 합친 이름으로 맑고 큰 호수란 의미를 지녔다. ▲ 수몰된 문의 중심지대청댐 건설을 축하하는 충남북 마라톤 경기가 열렸다. 당시 세광고 선수가 문의면 중심지를 통과하고 있는 모습이다. / 1979년 11월
댐 건설에 투입된 공사비는 948억원이고 보상비를 포함 총 1422억원의 사업비가 쓰였다. 댐 공사로 인해 충북에서만도 토지 989만 6000평이 수몰되고 충남북 2개도 4군 2읍 11면 토지가 물 속에 잠겼는데 그 중 충북은 3개군 6개면 65개리가 수몰되면서 이재민 1만 9000여명이 조상때부터 대물림하며 살았던 정든 고향을 등지고 타지로 떠나는 아픔을 겪었다.

▲ 마지막 철거작업 대청댐 물막이가 시작되고 물이 차오르자 마지막 남은 마을들은 중장비를 동원해 철거를 강행했다. 수몰민은 떠나고 얌체 도시영세민들이 불법으로 거주해 철거작업이 지연됐다. / 1980년 6월 ▲ 대청댐 건설 착공 충북청원군현도면과 충남 대전시 신탄진 사이의 금강을 막가 대청댐을 건설하는 공사가 1975년 3월에 착공하여 80년 12월에 완공됐다. 오가리강으로 부르던 이곳에 고기잡는 살보가 있었고 갈수기때는 사람들이 건너다녔었다. / 1975년 6월
저수용량 총 14억 9000만톤을 자랑하는 대청댐 건설에는 철근 9300여톤이 쓰였고 막대한 시멘트와 각종 자재를 투입, 높이 72m 길이 495m 면적 129만 6000㎥의 콘크리트 사력(砂礫)댐의 형태로 만들어졌다. 또한 하류에 용수 조절을 위한 역조정지(逆調整地)와 3개의 부(副)댐 및 청주 대전으로 용수를 공급하는 도수로(導水路)등이 부가적으로 건설됐다.

대청댐의 발전 시설은 9만kwh로 연간 2억 5000만kwh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고 연간 13억톤의 생활 용수 및 농업 ,공업용수를 공급할 수 있는 다목적 댐으로서의 역할을 현재까지 충실히 해내고 있다. 청주 도수로를 통해 일부가 무심천에 방류되어 맑은 물이 하천에 공급되고 일부는 하류에서 농업 용수로 사용되고 있다.

대청댐 건설 당시 침수되지 않았던 청원군 문의면 신대리 섯밭 부락과 문덕리 압실 초가마을을 민속마을로 조성하기 위해 행정선이 운행되고 선착장까지 설치됐지만 대통령 별장인 청남대가 건설되면서 안타깝게도 모두 헐리고 말았다.

옛날 현이 있던 문의면 소재지는 상류로 옮겨지고 마한시대부터 촌락을 이루었던 초가마을 압실부락은 북방식과 남방식이 어울러진 중부지역의 독특하고 다양한 초가구조가 나타나 건축학적으로 귀중한 사료로 인정받고 있었는데 청남대의 건설과 함께 아쉽게도 사라지고 말았던 것이다.

소양감댐과 안동댐에 뒤이어 건설된 대청댐은 금강의 중심이 되는 청원군 현도면 하석리와 대전시 대덕구 신탄진동을 막아 갈수기 때는 물을 가둬 용수를 공급하고 홍수 때는 피해를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

▲ 배타고 강건너 학교가는 학생들 청원군 문의면 가희리, 후곡리 등 강촌마을 학생들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강건너 대전쪽으로 다녔다. 새벽부터 가곡리 배터에서 배를 기다렸다. / 1977년 5월 대청댐의 수원이 되는 금강은 전라북도 장수, 진안, 무주 등지와 충북 옥천, 영동 등지의 하천들이 모여 큰 강을 이루는데 10여년전 전주 지역의 용수 공급을 위해 금강 상류에 용담댐을 건설해 대청댐 용수 공급에 큰 지장을 받고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행정복합도시와 청주 인근(오창,오송,옥산 등)에 세워지는 공단과 도시에 각종 용수 공급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대청댐 건설 이후의 가장 큰 변화는 청주 대전 등 많은 도시에 양질의 생활용수공급이 원활해 진 것이다. 초기에는 안개일수가 많아 교통사고와 농작물 생육에 안 좋은 영향을 미쳤고 가두리 양식과 각종 관광개발로 수질이 많이 오염됐지만 현재는 많은 부분들이 개선되어 전국 4대강 수질 중에 대청호의 수질이 가장 양호하다고 평가 받고 있다. ▲ 행정선 타고 장나들이 대청댐이 완공되고 물이 차올라 호수를 이루자 청원군은 행정선을 운행, 수몰되지 않은 지역 주민들이 문의와 청주를 오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청남대가 생기면서 이 뱃길은 끊겼다. / 1983년 6월
1960년대까지 청주에서 대전으로 운행되는 버스는 문의면을 거쳐 현재 대청댐 하류의 나루에서 버스까지 태우는 배를 타고 신탄진을 거쳐 대전으로 운행됐을 만큼 금강은 청주와 대전의 중요한 통로였다. 세월이 지나 대청호 주변은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해지고 가족 나들이처로 바뀌어 대청댐은 각종 생활 용수를 공급해주는 고마운 곳은 물론이고 친근한 유원지로 여전히 사랑 받고 있다. / 前 언론인·프리랜서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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