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욱(괴산북중 교감, 충북교육발전소 운영위원)

최진욱(괴산북중 교감, 충북교육발전소 운영위원)
최진욱(괴산북중 교감, 충북교육발전소 운영위원)

3월, 학교는 바쁘다. 새로운 아이들과 새 선생님들이 만나 서로를 알아가기 바쁘다. 교육청에선 각종 사업을 진행해야 하니, 담당자들 불러 연수하기도 바쁘다. 담당 선생님들은 자기 사업계획서 수업-평가 계획서를 마련하기도 벅차다. 혹 새로 부임한 교사들은 학교 시스템을 알아가기에도 너무 힘든 시기다. 어떤 드라마에서 모 신규교사가 학교 시스템에 적용하는 데에 1년이 걸리는 것을 보며, 뭐 그렇게까지 하며 가볍게 넘겼지만, 실제 낯선 곳에 적응하려 애쓰는 교사의 모습은 애달프다.

지난 교육감 선거에서 학력에 대한 이슈가 컸고, 교육부와 교육청에서는 이 바쁜 시기에 학력 진단과 보정, 궁극에는 학력 신장을 위한 시스템과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려 한다. 작년 한 해 준비한 결과물로 2024년에 본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수업과 평가 계획의 촘촘화는 물론, 학업성취도 평가와 진단평가를 3월 중에 완료해야 한다. 그것도 전수로 일제식으로. 특히 충북에서는 ‘다채움’ 시스템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으로 학력보장을 하겠다며 학교를 다그치고 있다.

디지털을 기반으로 하는 학업성취도 평가 추진은 무리수가 너무 커 보인다. 초3의 경우 지필로도 가능하다고 하니, 시험지를 나눠주고 일괄해서 진행하면 되겠는데, 중1은 상황이 다르다. 모든 학생이 컴퓨터로 봐야 한다. 20~30명이 전교생이고 컴퓨터가 20~30대가 있으면 또 모르겠으나, 평균 100명 전후의 학생들이 있는 학교에서 30대 정도밖에 없는 컴퓨터실에서 동시에 시험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노트북이 있는 본교에서는 동시 접속의 문제도 아직 고민이다.

물론, 문제의 유형이 다르기에 일제고사가 아니다, 시험의 결과가 입시나 내신성적에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며 안심을 시킨다. 듣기식 문제도 있어 이어폰을 착용하게 되니, 커닝은 엄두를 낼 수 없단다. 태블릿으로도 가능하다고 한다. 자신의 학력을 측정하려는 것이니 사전교육을 하고 편하게 보게 하고, 다른 친구들과 공유를 하지 못하게 하면 된다고 한다.

유형이 전혀 다르다면야, 시스템적인 우려는 해소가 가능하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유형이 어떤 규모로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없다. 커닝의 위험성을 배제할 정도로 유형이 다양하다면, 그 문제의 신뢰성에 의심이 갈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 규모의 전문가가 어느 정도의 기간 동안 공을 들여 출제한 것인지 도무지 의심을 지울 수 없다. 타입이 다른 정도라고 한다면 유출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학교마다 보는 날짜가 다르며, 학급마다 보는 시간이 다르기도 하다. 드문 예이겠지만, 쌍둥이 남자 중1 아이가 먼저 이웃 학교에서 본 시험 문제가 저녁에 쌍둥이 여자 중1 아이에게 전달되고, 그 문제는 순식간에 또 다른 학교로 알려지게 될 것이다. 특히, 난이도가 높은 문항일수록 전파 속도는 빠를 것이다. 저녁이면 학원에서 만나 이 학교 저 학교의 문제 공유는 상식이다. 이제 갓 중학생이 된 아이들에게 일제식 시험은 좋게 표현하면 기대가 되고, 나쁘게 표현하면 긴장이다. 벌써부터 아이들끼리는 이 학교 저 학교가 언제 본댄다 어떻게 본댄다며 수군거린다. 그냥 집에서 보지 왜 학교에서 보느냐는 소리도 있다.

결국 일제고사이기에 더 큰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유형이 전혀 다르다면 비교도 할 수 없기에 의미없는 시험이라는 말은 차치하더라도, 지역별, 학교별, 학급별 아니 개인별 데이터는 돌게 된다. 귀신같이 정보를 낚아챈 언론은 편차를 강조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표집 형태로 본 과거에도 그랬다. 언론들이 어떻게 수집을 했는지 그 결과로 지역별 학교별 차이를 차별로 공격해 물어뜯는 건 일상이었다. 어느 지역 학생의 학력이 저하됐느니, 올랐느니 그래서 그 책임을 교육청에, 학교에, 교사들에게 물을 것이다.

디지털을 기반으로 하는 여타 사업들도 이해하기 어렵다. 학생의 학력 진단을 왜 굳이 디지털로만 해야 하느냐 말이다. 그것도 일률적으로 특정 시스템에 동시 접속하게 하고, 이 바쁜 시기에 무조건 지시대로 하게 하느냐 말이다. 근본적으로 교육기관의 교사 불신에서 오는 사업이다. 교육부 사업 성취를 위한 학생 평가, 교사 평가임에 다름없다.

교사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진단지를 만들고 평가하여 수업 속에서 자율적으로 자연스럽게 보정해 나가면 된다. 그것이 진정한 교육이며 다수의 교사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우리가 갖추어야 하는 것은 교사들의 그러한 전문성과 노력 의지를 길러주는 것에 있어야 한다. 그러기에 교사 정원은 늘리고, 업무는 줄이고, 학폭이나 교권 침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혹여 일어나더라도 그 처리는 전문가들이 하도록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 이야기도 길어질 수 있는데, 외부인보다는 전문교사들이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원이 더 필요하고, 그 전문성을 신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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