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 지정·업무 관리·감독 만연하지만 노동자 권리는 부재"
60%가량 노동자가 부당함 느끼지만 42%는 해결 않고 참아
열악한 노동 환경 개선 위해 라이더노조 충북지회 조직에 힘써

 

신호대기 중인 배달노동자. 
신호대기 중인 배달노동자. 

 

A씨 <30대, 경력 3년, 동네대행사>

업무용 오토바이 임대 계약은 ‘노예계약’이었다고 이야기한다.

대행사 직원(배달노동자 등)이 다수 모인 자리에서 사장에게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 일을 그만두고 싶었지만 오토바이 임대 기간이 끝나지 않아 ‘그만둘 거면 보증금의 두 배(200만원 가량)를 내야 한다’고 통보받아 해당 업체를 계속 다녀야했다. 

B씨 <20대, 경력 8개월, 동네대행사>

대행사와 고객에게 폭언과 갑질, 출근 강요 등을 겪었지만 주변에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배달 업계에선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노동조합을 통해 노무 상담을 받다 보니 부당한 일을 겪은 것이란 걸 알게 됐다.

C씨 <50대, 경력 9개월, 동네대행사>

C씨는 배달 수입을 안전을 담보한 ‘생명 수당’이라고 표현한다.

일한 만큼 벌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 배달업을 시작했지만 손해만 생겼다. 매일 드는 고정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짧은 시간에 많은 콜(배달 건)을 처리해야 했다. 업체는 동선 감시까지 했다. 휴식이라도 가지려 하면 ‘왜, 일을 안 하고 가만히 있느냐’고 업체에서 전화가 왔다.

 

경력도 연령도 다른 이들 셋은 모두 배달 노동을 시작하고 부당한 대우를 경험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정보가 부족한 초보 라이더들이 당한다’는 업무용 오토바이 임대 불공정 계약도 겪어봤다. 임대 계약에 업무를 강제하는 조항과 근무 규칙을 끼워 넣은 말도 안되는 계약이었다. 계약서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업체와 계약서를 쓰지 않은 C씨는 보증금을 증명할 방도가 없어 돈을 포기해야 했다.

‘자율성’,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있다는 배달업체들의 홍보와는 달리 출·퇴근이 정해져 있는 경우도 많다.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 충북지회 준비위원회(이하 준비위원회)가 진행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8.1%는 일정하게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었으며, 45.3%는 출근 또는 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또한 배달을 지정받는 등 업체의 관리·감독에서 자유롭지 못할 뿐만 아니라 손님과 상점의 폭언과 부당한 요구에서도 보호받지 못했다고 호소한다.

배달노동자들은 개개인이 사업자를 갖고 대행사와 계약을 통해 노무를 제공하는 특수고용근로자지만 실상은 노동자와 유사하게 일하는 ‘책임은 있지만 권리는 없는 상태’라는 지적이다.

 

60%가량 노동자가 부당함 느껴

올해 준비위원회가 실시한 배달노동자 실태조사 결과 응답자 128명 중 71.1%가 배달업을 주업으로 일하고 있으며, 월평균 소득은 210.9만 원(세전)으로 나타났다.

또한 배달대행업체에 폭언(65.7%)과 폭행(46.1%)을 당한 경험이 있으며, 상점의 부당한 질책(68%), 업무 외 요구(50.8%)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86%가 지난 1년 동안 사고를 겪었다고 응답하는 등 열악한 노동환경을 짐작할 수 있다.

부당 대우를 겪은 42.2%가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혼자 해결하거나 참음’, 친구나 동료에 도움을 요청(25.8%)했다고 답해 배달노동자들이 노동 중 갑질과 폭언 등 부당 대우에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인다.

코로나19 필수노동이라 불렸던 배달업이 일상 회복 이후 배달 소비 감소, 고물가로 위축되면서 배달 노동자들의 시름은 더 깊어지고 있다. 

특수고용근로자인 배달노동자는 근로기준법에 따른 노동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같은 대행사에 소속되어 있더라도 배달노동자 간 대면할 일이 많지 않다 보니 사용자 측의 부당행위에 공동 대응이 어려운 상황이다.

배달노동자들이 안전하게 노동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전국적인 움직임이 이어지는 가운데, 충북 내에서도 노동조합을 통해 업계의 문제를 지적하고 노동환경 개선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최저임금도 없는데..."최대한 빨리, 많이해야 손해안봐" 

준비위원회에 따르면 서울과 달리 지역은 동네대행업체(이하 일반대행사) 소속 노동자들이 다수이며 흔히 아는 대형 대행사(배민, 쿠팡 등)들보다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다.

고객센터를 거치는 대형 대행사와 달리 상 점과 고객, 대행사 사장과 업체 관리자 등을 대면하며 책임 구조의 가장 아래에서 갑질, 폭행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AI가 배달노동자들에게 단건 배달을 배차하는 대형 대행사의 시스템과는 달리 일반 대행사의 프로그램은 노동자가 명단에 나타나는 콜(배달 주문)을 선택해 배차받는 형태로 이뤄진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건수를 처리할수록 수익이 커지는 구조다 보니 기사 간, 지역 간 편차도 크다.

 

동네 일반대행사의 경우 주문중개플랫폼과 상점을 거쳐 배달중개앱에 주문 건이 노출된다. 이를 배달노동자가 선택하거나 동네배달대행사에서 주문을 지정하는 형태로 이뤄진다고 길한샘 위원장은 설명했다. (그래픽=이종은 기자) 
동네 일반대행사의 경우 주문중개플랫폼과 상점을 거쳐 배달중개앱에 주문 건이 노출된다. 이를 배달노동자가 선택하거나 동네배달대행사에서 주문을 지정하는 형태로 이뤄진다고 길한샘 위원장은 설명했다. (그래픽=이종은 기자) 

 

코로나19 이후 급감한 배달 건수로 인해 기사 간 경쟁도 심해지다 보니 수익 유지를 위해 위험부담이 커진 것도 문제라 지적된다. 3년차 배달노동자인 B씨는 “코로나19 당시에는 6~7시간을 일했을 때 30만 원가량의 수입이 있었지만, 현재는 12시간가량을 일해도 20만 원을 벌기 힘들다”라고 설명했다.

업무에 익숙한 B씨조차 60%가량 수입이 감소한 셈이다. 효율적으로 배달하기 위해선 짧은 순간에 주문 확보와 동선 계산이 이뤄져야 하기때문에 운행 중에 휴대폰을 자주 보게 되고 이에 따라 사고 위험도 높아진다.

배달 수요가 줄면서 배 달 노동자 몫인 배달료는 감소하고  관리비 등 고정비용은 오른 것도 한몫한다.  C씨는 "배달 건이 적어 하루 7~8만원을 벌 때도 있 는데, 그때는 고  정비용을 빼면 실제 수익은 7천원 남짓이었다"고 설명했다. 안전을 담보해야만 손해를 보지 않는 기형적인 형태라는 지적이다.

 

“대행사 사장 잘 만나야 안전 보장받아”

준비위원회 길한생 위원장은 “배달노동자들은 운수 노동자이자 서비스노동자”라며 “감정노동으로 인한 피로도도 상당하다”고 이야기한다.

일반 대행사는 문제가 발생하면 고객과 상점을 직접 대응하게 되는데, 계약관계로 엮인 대행사 입장에선 상점과 고객의 주장이 우선되는 경우가 많다.

길 위원장은 “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선 ‘대행사 사장을 잘 만나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며 “갑질을 당해도 ‘그냥 넘어가라’는 식이거나 모든 보상과 책임을 배달노동자에게 떠넘기는 경우가 많다. 문제를 중재하고 책임을 파악하는 대행사도 있긴하지만 기준이 없다 보니 천차만별”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현재로선 업무 강도가 최대한 빠른 배달을 원하는 고객과 상점의 선호에 맞춰져 있다”며 “너무 빨라도 민원이 들어오거나 2분만 늦어도 문제가 되는 등 기준이 없다. 대행사가 제시하는 기준에 따라 변하는 수익도 마찬가지로 근무와 관련된 어떠한 기준도 없는 것이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길 위원장은 최소한의 보호 조치로 배달노동자의 목소리가 담긴 표준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보상과 책임의 명확한 내용과 안전한 노동환경을 보장받기 위한 기본 배달료, 배달 시간 등 기준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준비위원회 길한샘 위원장이 배달라이더에게 얼음물과 홍보물을 전달하고 있다.
준비위원회 길한샘 위원장이 배달라이더에게 얼음물과 홍보물을 전달하고 있다.

 

안전한 노동 환경을 위한 창구

산업안전보건법의 감정노동자에 대한 보호법률에 따라 사업자가 보호 조치를 취해야 하지만,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 배달노동자는 오롯이 대행사의 선택에 따르는 것이다.

배달노동자들이 노동자성을 인정받기 위해선 △전속성(한 사업장에 주된 노무 제공) △업체의 관리·감독을 받는지 △취업 규칙 여부 등이 확인되어야 한다. 이를 입증하기엔 어려움이 많아 지지부진한 싸움이 되느니 그냥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길한샘 위원장은 열악한 지역의 배달노동자들의 근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라이더유니온지부 충북지회를 조직하고자 한다. 조직이 어려운 소규모 일반대행사 배달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통해 호소할 곳이라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길 위원장은 배달노동자들이 공통적으로 위축되어있고 호소할 곳이 없었다는 점을 짚었다.

그는 “지속되는 민원과 갑질을 겪지만 도움을 청해도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위축된 사례들을 많이 접했다”며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 지인들 통해 얻는 부정확한 정보가 생성되고 노동자 자신조차 체념하게 되면서 부당한 근무환경을 당연시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노동조합이 지역 배달노동자들의 보호 수단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현재의 목표다. 배달노동자들이 겪은 문제가 사회에 전달되고 문제해결을 위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한다.

길 위원장은 “조합원들이 어디에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어줄 곳이 생겼다는 사실에 만족감을 느낀다”며 “부당 대우를 겪어도 도움을 청할 곳이 없어 혼자 감내했던 배달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은 하나의 창구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준비위원회는 지난 5월부터 연일 폭염과 폭우로 운행에 어려움을 겪는 배달노동자들을 위해 얼음물 나눔 캠페인을 운영했다. 실태조사 및 심층 면접을 더불어 산재보험 부당수급 대응 교육, 노무 상담 등을 운영해왔다.

노무 상담을 통해 조합원이 된 C씨는 “자신이 겪은 문제를 어디에라도 이야기하고 개선을 요구할 수 있다는 사실로도 의미가 크다”고 전했다.

이들은 라이더유니온 충북지회 조직을 통해 노동 여건을 개선하고 안전한 노동환경을 만들기 위한 단체 교섭 등 지자체에 요구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지난 9월 12일 준비위원회가 사창동 일원에서 배달라이더 실태조사를 위해 냉커피 무료 나눔 캠페인을 진행하는 모습.
지난 9월 12일 준비위원회가 사창동 일원에서 배달라이더 실태조사를 위해 냉커피 무료 나눔 캠페인을 진행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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