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적 농촌 청년’ 소통과 대안을 고민해나가는 박유미 씨
“도시와 농촌 전혀 달라 위기 느끼기도…결국 사람 사는 곳”
귀촌 1년차, 유토피아는 없어도 ‘도전과 지속 가능’ 꿈꾼다

 

인구 160만 도시, 충북.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충북의 청년(15세~39세) 전출 인구는 4만 1236명에 달한다. 이중 2만1210명(51%)이 수도권(서울·경기·인천)으로 향했다. 학업을 위해, 또는 일자리를 찾아 너도나도 서울로 향한다지만, 우리 주위에는 충북에 살기를 택한 청년들도 있다. 그들은 충북에서 자신의 기반을 만들고 지역의 가치를 창조해낸다.

그들에게 충북은 어떤 도시일까? 청년들이 찾아낸 충북의 가치는 무엇일까? 충북 청년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기자 말)

 

 박유미 씨가 생활하는 제천시 덕산면 청년마을 숙소에선 용화구곡을 따라 흐르는 마을 하천이 내려다 보인다. 유미 씨가 숙소 공유 공간인 정자에 앉아 미소짓고 있다.
 박유미 씨가 생활하는 제천시 덕산면 청년마을 숙소에선 용화구곡을 따라 흐르는 마을 하천이 내려다 보인다. 유미 씨가 숙소 공유 공간인 정자에 앉아 미소짓고 있다.

 

“저녁 7~8시만 되면 어두워지는 게 공포스러울 정도였어요. 도시에서는 10~11시 늦은 오후에 다녀도 무섭지 않았었는데, 해가 지면 아무것도 못 하겠더라고요. 밤거리에 가로등도 전혀 없으니까 잘 때도 불 켜고 자고 그랬어요.”

 

2021년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박유미 씨는 제천시 덕산면에서 5개월간 농촌을 체험하면서 ‘시골은 나와 맞지 않는 곳’이라 생각이 들었다. 지금껏 도시 생활을 해온 박유미 씨의 첫 농촌 생활은 두려움이 앞섰다.

프로그램을 마친 후 서울로 ‘냅다 달아났던’ 유미 씨는 이듬해 덕산면으로 돌아와 이 지역에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고 공동체의 활성화를 모색하는 기획자로 활동해오고 있다.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운영한 ‘청년마을(주)’과의 인연이 도시 생활의 한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형태에 도전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줬다.

덕산 살이 1년 차를 맞은 유미 씨, 마을에 나가 지나가는 어르신에게 먼저 인사하고 안부를 묻는 것이 자연스러운 어엿한 귀촌인의 모습이다. 이젠 ‘도시와 농촌은 크게 다를 것 없이 사람 사는 곳’이라 이야기한다. 마을 동아리에 가입해 해금을 연주하고 배드민턴을 함께 치러 가며 일과 취미가 균형 잡힌 ‘워라밸을 지키는 삶’을 살고 있다.

 

리틀포레스트 꿈꿨지만 농촌도 '사람 사는 곳'

박유미 씨가 지금껏 살아온 도시를 떠나 덕산면을 찾아온 이유는 호기심이었다.

우연히 ‘사회적 농업’을 운영하는 단체(청년마을)를 통해 농촌을 체험 해볼 수 있다는 친구의 말을 듣게 됐다. 공동체를 추구하면서 약자와 함께 농촌의 활성화를 이뤄가는 사회적 농업이라는 개념이 시선을 끌었다. 사실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자연의 정취를 느끼며 논문을 마무리하기 위해 방문한 마음도 컸다.

그렇게 유미 씨는 2021년 덕산면에서 ‘마을기획자로 살아보기’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 농촌에서 5개월간의 ‘휴식’을 기대했지만, 시골 마을에서의 5개월은 생각과는 달랐다.

“살아보기 기간이 끝나자 바로 서울로 도망갔죠. 농촌에도 일이 정말 많잖아요. 농사짓고 행사 준비하고, 정리하고,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랑 만나고, 인사하고 얘기하다 보면 도와주고 싶고. 이러다 보니까 ‘내 생활’이 보호가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유미 씨의 이야기를 들은 대다수가 이렇게 묻곤 한다. 그런 농촌에 왜 다시 돌아왔느냐고.

원래도 유미 씨는 돈보다는 가치를 좇던 사람이었다.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생각이 커 사회 활동가로서 살고자 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시민단체에 들어갔지만, 자신이 추구했던 삶이 도시에서는 한계가 있음을 느꼈다.

‘어디로든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쯤, 마침 청년마을에서 ‘함께 일할 사람을 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유미 씨는 미련 없이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덕산면으로 돌아왔다.

 

청년마을 공유지에서 논농사를 짓고 있는 청년들. (청년마을 제공) 
청년마을 공유지에서 논농사를 짓고 있는 청년들. (청년마을 제공) 

 

삶의 대안으로 생각하고 돌아온 덕산면은 이전과는 달랐다. 무서움과 불편은 뒷전이 됐다. 내 공간, 살아갈 곳이라 생각하니 필요한 물건도, 하고 싶은 일들도 많이 생겨났다.

유미 씨가 담당하는 지역서비스공동체 사업은 농림부가 지원하는 사업으로 사회적 농업 활성화를 위해 지역의 노인들에게 돌봄과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활동이다.

올해는 목공방을 운영하는 청년, 귀농을 준비 중인 청년 등 청년 마을의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정착한 청년들과 협력을 통해 이뤄졌다.

직접 가꾼 작물과 마을에서 기른 농산물로 만든 반찬을 가가호호 방문해 배달하고, 집안 살림에 수리가 필요한 가구를 방문하는 사업을 진행했다. 청년들은 한 달에 두 번 승합차에 다 같이 몸을 싣고 마을로 향했다.

이러한 활동이 단순한 배송서비스가 아닌 어르신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면서 청년들은 농촌 마을을 직접 들여다보고 겪으며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해볼 수 있는 좋은 접점이기도 하다.

“매일 찾아오는 애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안전과 심리적 안정감을 얻는다고 합니다. 청년들도 지나가면서 인사만 하던 마을 어른에서 이제는 마을에 아는 어른, 아는 집이 생기는 거죠.”

 

농촌 정착 프로그램을 마친 청년 18명이 청년마을 공용 숙소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 사진은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년들이 반찬배달에 나서기 공용 식당에서 반찬을 들고 있는 모습. (청년마을 제공)
농촌 정착 프로그램을 마친 청년 18명이 청년마을 공용 숙소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 사진은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년들이 반찬배달에 나서기 공용 식당에서 반찬을 들고 있는 모습. (청년마을 제공)

 

청년들은 반찬 배달을 위해 찾아간 집에서 ‘내 하모니카 연주도 듣고 가’라며 악기연주를 들려주거나 ‘이제 막 전 부쳐 먹으려 했는데 하나 들고 가’라며 손님들에게 뭐라도 챙겨주려는 시골의 정서를 경험했다.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진 청년들이 한가정을 방문해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인상적이다. 목수인 청년은 집의 방충망, 문과 처마를 들여다보고, 전직 간호사였던 청년은 어르신의 약 바구니를 들여다보곤 건강과 관련한 안부를 물었다.

청년들은 각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농촌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서로 이야기하며 사업을 보완하고 아이디어를 냈다.

하모니카를 연주하던 어르신을 청년 마을 축제 공연 무대에 초청해 함께 했다. 내년도엔 픽업 서비스를 통해 거동이 어려운 어르신을 초청해 축제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기획을 준비 중이다.

또한 청년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청년들의 역량을 활용해 내년도 마을 노인 수요 조사를 진행해 실제로 필요한 서비스가 무엇인지 심층적인 조사를 이어나갈 계획이다.

유미 씨는 청년들과 아이디어를 나누며 어떤 서비스가 지역의 수요자들에게 우선 되어야 할지 매 순간 고민하고 귀 기울이고 있었다. 청년들의 관심 어린 시선이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게 계속 프로그램화하고자 한다. 농촌에서 청년이 지원 사업을 주체적으로 시행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겠다는 마음이다.

 

'나의 일 아닌 우리 일' 함께하면 이렇게 쉽습니다.

옆집 숟가락 개수도 안다는 농촌의 정서를 개인화된 도시 생활에 익숙한 청년들이 적응해가기에 어렵지는 않았을까? 이에 유미 씨는 혼자가 아닌 함께 했기에 가능하다고 답했다. 농촌과 청년 간의 중간다리 역할을 해준 청년 마을이 있기에 대안이 더 구체화되고 실현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내 일, 네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로 생각하는 것, 손을 뻗는 것조차 어려움이 되더라고요. 그 경계를 흩뜨리고 영역을 넘는 연습이 필요해요. 같이 일하면 너무 편하거든요.”

도움을 청하고 함께 해야 하는 농촌 환경에서 부탁조차도 낯선 청년들도 많았다. 함께 생활하면서 가깝고 친숙하기 때문에 오히려 오해가 생기고 갈등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유미 씨는 함께하는 생활 공동체 속에서 시너지를 얻기 위한 대안을 찾고자 한다.

갈등 해결을 위한 워크숍을 운영하고, 지난 한 주를 터놓고 이야기하는 회고 모임을 갖는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원활한 농촌에서의 삶을 위해 서로를 존중하고 소통하는 방법, 공동체 속에서 발생할 문제들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방법에 대해 청년마을 식구들과 이야기 나누며 더 나은 대안을 찾아가고 있다.

 

 

박유미 씨는 농촌 생활을 어떻게 소개하고 싶을까? 유미 씨는 “도시와 다른 삶의 형태를 느낄 수는 있는데 ‘도시보다 확실하게 좋아요’라고 말씀드릴 수는 없을 것 같다”며 귀촌을 생각하는 청년들에게 농촌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유미 씨는 농촌이 자기 삶의 최종 정착지라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덕산 살이 1년 동안 ‘농촌에서의 나’를 실험하는 과정에 있다고 말했다.

“저는 도시에서 자랐고 도시의 습성을 갖고 이곳에 왔기 때문에. 환경이 달라졌을 때 제가 여태까지 ‘이게 맞다’라고 정의한 가치관이 흔들리는 경험을 해보면서 대처능력을 기르고 있습니다.”

유미 씨는 실무 일을 하면서 자신의 일에 지속 가능성을 느꼈다고 한다. 처음 해보는 농촌 생활에 문제가 생기고 어려움이 있더라도 소통하고 방법을 찾아 해결한다면 되는 것이다.

‘유토피아는 없기 때문에’ 열심히 활동을 만들다가도 한계를 느끼는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 손을 뻗을 청년 마을과 동료들이 있어. 혼자가 아닌 함께이기에 괜찮을 것이란 마음이다.

“많은 사람이 농촌에서 청년들이 일할 거리가 없다고 생각하죠. 지역에 필요한 서비스는 너무도 많고 소문만 나면 찾아주는 사람도 많습니다. 새롭게 만들어 갈 수 있는 일들도 많습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