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학 충북교육발전소 공동대표

홍성학 충북교육발전소 공동대표.
홍성학 충북교육발전소 공동대표.

우리나라의 교육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다양한 표현 중에서 ‘기승전대학’과 ‘입시 블랙홀’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결론은 대학이라는 ‘기승전대학’과 교육의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는 ‘입시 블랙홀’은 우리나라 교육이 대학입시로 귀결된다는 의미, 그리고 서열화 된 대학과 입시위주 교육이 우리나라 교육생태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대단하고 절대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최근에는 ‘입시 블랙홀’ 중에서도 ‘의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의대 블랙홀’이라는 표현이 등장하였다. 이미 대학서열의 최상위에 의대가 있다는 의미를 담은 ‘의치한약수(의대·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란 말이 사용되고 있는데, ‘의대 블랙홀’이라는 더 강한 표현이 등장한 것이다. 실제 2023학년 입시에서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의 정시모집 합격자 중 약 30%가 등록을 포기했는데, 대부분 자연계열이고 의학계열에 복수 지원해 합격한 경우였다. 이공계와 자연계열 재학 중에 자퇴를 하고 의대로 다시 진학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자연계열 재학생 중 중도탈락한 학생은 2019년 893명에서 2021년에는 59.1% 증가한 1,421명이었고, 반수나 재수를 통해 의대로 진학하였다고 한다.

‘의대 블랙홀’ 현상은 과학고와 영재학교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먼저 과학고와 영재학교를 선택한 학생들 상당수가 과학고와 영재학교를 의대를 비롯한 서열화된 대학의 진학 통로로 활용하고 있음을 들 수 있다. 강득구 국회의원실에서 발표한 ‘2022학년도 주요대학 정시 합격자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 의대 등록자 중 30%가 영재학교·과학고 출신이었다. 그리고 2022년 대입에서 전국 영재학교·과학고 출신 1,781명 중 의약계열 지원자가 416명으로 약 4명 중 1명에 달했다.

둘째로 영재학교의 본래 취지에 맞지 않게 진학하는 학생에 대한 제재 조치 마련 이후 의대 진학을 위해 영재학교 중도이탈자가 늘어나고 있는 ‘의대 블랙홀’ 현상이다. 2018학년도부터 일부 영재학교에서 본래 취지에 맞지 않게 진학하는 학생들에 대해 장학금 환수 등 제재를 하는 조치를 만들었다. 그리고 올해 3월 19일 교육부는 영재학교 출신 학생들이 의약학 계열로 진학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제재 방침을 발표했다. 이러한 제재 조치 흐름 속에서 의대 진학을 위해 영재학교 중도이탈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5월 4일 종로학원이 분석하여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과학고 중도이탈은 2015~2018년 173명에서 2019~2022년 250명으로 44.5% 증가하였고, 영재학교 중도이탈은 23명에서 69명으로 3배 증가하였다. 과학고와 영재학교 1학년 신입생 이탈도 2015~2018년 138명에서 2019~2022년 192명으로 39.1%(54명) 증가했다.

충청북도와 충북교육청은 2026년 3월 개교를 목표로 ‘AI 바이오 영재학교’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데, ‘의대 블랙홀’ 현상의 영향을 받을 것이 예상된다.

‘의대 블랙홀’ 현상은 학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서울 강남구 ‘의대반’ 운영 학원에 초등학생이 늘어나고, ‘초등학생 의대 준비반‘ 이 등장했다. 과학고와 영재학교 진학을 목표로 했던 초등학교 선행 학습이 ’의대‘로 바뀐 것이다. 서울뿐만 아니라 경기, 부산, 경북 등 여러 곳에서 ’초등 의대반‘을 운영하고 있다. 학원들은 ‘초등 의대반’ 학생을 뽑기 위해 입학시험을 보는데, 그 경쟁률이 10대1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서열화 된 대학과 이를 바탕으로 한 입시위주 교육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한 대학다운 대학과 초·중등교육의 정상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 먼저 수도권에서부터 서열화 된 대학은 ‘더 부실대학, 부실대학, 덜 부실대학’으로 서열화되어 있고, 국제경영개발원(IMD)의 2022년 대학교육 경쟁력 평가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63개국 중 46위로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서열화가 대학의 질적 성장보다는 양적 팽창(높은 등록금 의존도와 입학정원 늘리기 등)에 치우쳐 이루어지면서 대학의 교육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공고한 대학서열에 따른 입시위주 교육이 다양한 교육혁신 정책을 쓸모없게 만들고 있다. 고교학점제, 자유학년제와 자유학기제, 영재교육 등 초·중등 교육혁신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한다고 하지만, 대학서열에 따른 입시위주 교육에 종속되어 변질되고 왜곡되어 버리는 한계가 있다. 사교육을 줄이고 공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취지로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약칭: 공교육정상화법)」이 2014년에 시행되었지만 선행교육을 위한 사교육비는 여전히 증가하고 사교육 학원은 성행하고 있다.

더욱이 수도권에서부터 서열화 된 대학과 입시위주 교육은 지역균형발전을 저해하고, 높은 교육비 부담은 저출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제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교육청은 교육과 사회의 최우선 과제로 그동안 방치하였던 서열화와 입시위주 교육 타파를 선택하고 해결하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 충청북도와 충북교육청은 수도권에서부터 서열화 된 대학과 대학 입시위주 경쟁교육에 맞춰 성과를 보이려는 방식에서 탈피하고 먼저 지역 대학의 질과 품격, 즉 생명력을 향상시키도록 해야 한다. ‘기승전대학’과 ‘입시 블랙홀’이라는 상징적 표현이 사라진 건전한 교육생태계와 삶 중심 교육을 만들기 위한 교육의 대전환 노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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