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기법은 수백 가지다.

그중 주류 심리학의 정통을 이어오는 것은 프로이트를 아버지로 모시고 그로부터 갈라져 나온 조금 다른 차이들을 바탕으로 개발된 기법들이다.

심리상담은 미국에서 대박 흥행에 성공한 분야다.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며, 유대인 지식인들은 나치 정권을 피해 신대륙으로 대거 이동하면서, 신지식이 미국 사회를 구성해 가면서다.

전쟁은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바꾸어놓았다.

전쟁 후유증은 많은 정신병리를 낳았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대표적이다.

전쟁은 유럽대륙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나치 독재의 광풍은 유럽 전역을 휩쓸었다.

민족 말살은 곧 인종 청소로 이어지며, 우세한 유전자만을 존재해야 한다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몇 년 전 아우슈비츠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안내를 맡은 폴란드 가이드는 이렇게 말했다.

아우슈비츠는 유대인들을 수용하기 위해 만들지 않았으며(그것은 명분에 지나지 않았다고).

나치 정권에 반대하는 지식인들(주로 사회주의자들)과 장애인, 그리고 동성애자를 격리 수용하기 위한 장치였다고.

정상이라는 범주(자민족 우월주의, 백인 남성 중심)의 극대화가 만든 시대의 참극이었다.

상담 기법이 다시 맹위를 떨치며 발전하게 되는 계기 역시 베트남전쟁이다.

2차 세계대전 승리를 맛본 미국은 전쟁이 자국에 얼마나 큰 이익이 되는가를 몸소 체험하게 됐다.

그러나 베트남전은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많은 젊은이가 반전을 외쳤다.

본질적 존재에 관한 물음과 정의로움을 추구하며 인종, 성별, 그리고 평등 평화 운동을 다각도로 전개했다.

 

여성운동 또한 60년대를 기점으로 활달하게 진행되었다.

나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받으며, 칼 융의 집단 무의식을, 그리고 아니마 아니무스를 외우며 상담학을 시작했다.

사랑과 공격성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일과 관계)의 기준 된 남성 중심의 대가들이 이끈 상담학을 줄줄 외우며 주류 심리학(주로 남성 심리학자가 우두머리)에서 자격을 따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대학원에서 각종 상담기법 코스웍에 참가하며 큰 비용을 지불했다.

제법 이론이 자리 잡히고 상담 케이스가 많아지면서, 가닥이 보이기 시작하자, 상담 일은 재미있기까지 했다.

자부심과 만족감이 넘쳤다. 상담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되고 싶었다.

그러다가 예기치 않은 곳에서 복병을 만났다.

가정폭력 피해자와 성폭력 피해 경험자들이 나의 복병이었다. 그녀들을 만나면서 내가 배운 상담학의 틀이 효용 없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익힌 상담철학과 기법으로는 그녀들을 공감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왜? 왜?’라는 질문이 내 안에서 터져 나왔다. 그녀들을 만날 때마다 답답했다. 벽에 부딪힌 느낌이었다.

상담회기 마다 공회전하고 있다는 느낌은 나의 직업적 효능감을 좀먹게 했다.

그러는 중, 나는 여성주의 상담을 알게 되었다.

전혀 다른 틀로 내담자를 연결하는 여성주의 상담은 나에게 숨통을 틔워주었다.

그렇게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맥락, 곧 성폭력을 피해를 보고도 그것을 말하지 못하며, 자기 잘못으로 귀인 하는 피해자들의 고통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하나같이 한 사람의 일생을 피워내기도 전에 무엇을 시도해 보기도 전에 싹을 잘라버리는 사회 문화적 환경, 폭력은 다름 아닌 우리 안의 가부장제 문화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됐다.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았다.

 

특히 아주 어릴 때 성학대 피해를 본 사람의 경우는 더 그러했다.

내담자들은 대부분 익숙한 공간에서, 아주 가까운 사람, 혹은 아는 사람들에게서, 가해자들은 하나 같이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잘못하면 벌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도 그 잘못을 말하는 것도 못 하게 하며(침묵 강요) 설혹 말한다고 해도 제대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수많은 여성이 숨어서 전화기에 대해 남편의 폭력을 말하기 시작했다. 가정폭력을 피해 집을 나왔다.

집은 더는 안전하지 않으며, 아동 학대를 훈육으로 생각하는 부모는 더는 아동의 보호자일 수 없다.

오신정란 청주여성의전화 대표
오신정란 청주여성의전화 대표

 

나는 여성주의 상담을 배우면서 주류심리학, 곧 상담기법보다 훨씬 어려웠다.

나 역시 가부장제에 철저히 이바지하며 살아왔으며, 남성의 시각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실천하며 살아왔으니 당연하지 않겠는가.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은 고통을 호소하는 피해자의 목소리에서 시작된다. 자신을 갈아엎는다는 것은 머리와 심장만으로는 어렵다. 행위 함으로서, 자신이 속한 세상이 누구를 위해 복무하는지를 살피는 데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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