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노숙인은 집·거리생활 반복하는 경향 많아”
시설입소 강제할 수 없어…자립정책 필요성 제기
"지자체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노숙인 도울 수 있어"

<최강한파, 청주거리에는 사람이 산다②>

 

연일 최강한파를 기록하는 요즘, 노숙을 하는 사람이 설마 있을까 싶겠지만 놀랍게도 있다. 서울역 얘기가 아니다. 바로 청주 얘기다. 관계자들에게 따르면 올 겨울, 청주에서 노숙을 하는 이들은 5~6명에 달한다. 그들은 왜 한파를 온몸으로 견디고 있는 걸까, 바라는 것은 무엇이고, 청주시의 노숙인 대책과 문제점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A씨가 힘겹게 중앙공원에서 서문시장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다.
A씨가 힘겹게 중앙공원에서 서문시장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다.

 

사실 A씨에 대한 이야기는 7년 전에 들었다. 청주시 서문시장 내 여자화장실에서 숙식을 해결한다는 그의 이야기는 2014년 모 방송국의 전파를 탔었다. 당시 ‘특이한’ A씨 이야기는 지역에서 화제가 됐었다. 방송 후 A씨는 다른 지역에 사는 가족에게 인계됐고 말소(사망처리)된 주민등록을 재등록했으며 기초생활수급비를 받게 됐다는 후문도 있었다.

그러나 가족에게 인계됐다는 A씨. 어찌된 일인지 그는 7년이 지난 현재도 여전히 청주 서문시장에 머물러 있다. 아직도 매일 중앙공원과 서문시장을 오가며 끼니와 잠자리를 걱정한다.

지난 13일 청주시 상당구 중앙공원 공용화장실 앞에서 A씨를 만날 수 있었다. 7년 전 TV에서 봤던 모습보다는 살이 많이 빠져 있었고 노쇠해있었다. 곁에는 잠자리로 사용할 스티로폼과 이불, 옷가지가 담겨진 비닐봉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더러워 사용할 수가 없다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되뇌이기도 했다.

 

“지금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난 그런 거 몰라.”

“식사는 하셨어요?”

“응. 지금 배불러.”

“어르신이 예전에 TV에 나왔었는데 보셨어요?”

“그래? 난 모르는데……. 내가 왜 테레비에 나왔지?”

“지난주에 엄청 추웠는데 어디서 주무셨어요?”

“거기(서문시장 화장실). 추워서 얼어 죽는 줄 알았어.”

“가족이 있는 집에는 왜 안가세요?”

“집을 뺏겼어.”

 

몇 마디 대화를 나눈 A씨는 비닐봉지를 들고 힘겹게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중앙공원에서 서문시장으로 가는 동안 A씨는 너무 힘들다며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가는 길에 버려진 스티로폼을 주워 비닐봉투에 담기도 했다. 마침내 서문시장 여자화장실에 도착한 A씨.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난 여기가 좋아. 이제 좀 쉬어야지.”

A씨는 이내 화장실 바닥에 스티로폼을 깔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중앙공원 인근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이들은 A씨에 대해 할 말이 많다. 14년 째 중앙공원 앞에서 음료와 차를 판매하고 있는 B씨는 “A는 매일 여기에 와요. 지나가는 사람이 불쌍하다고 1000원, 2000원 주면 그 돈으로 공깃밥 사서 먹고 잠은 화장실에 자고. 자신을 할배라고 부르라고 하고. 언제까지 그럴 수도 없고. 시나 구에서 밥이라도 제대로 먹을 수 있게 방법을 찾아줬으면 정말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예전에 맺은 인연으로 수십 년째 A씨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는 대영식당의 C씨는 “ 1000원도 받고, 2000원도 받고, 안주면 안 받고…… 뭐, 그래요. A는 가족이 있는 집에 들여보내도 나오고 시설에 들여보내도 또 나오고. 거기서는 살 수가 없나 봐요. 이미 수십 년 동안 거리에서 사는 것이 익숙해져서 그런가 봐요. 앞으로도 시설이나 가족이 있는 집에서는 살 수 없을 거 같아요”라고 말했다.

 

강제할 수 없는 시설 입소

청주시나 각 구청 노숙인 업무 담당공무원들이 토로하는 가장 큰 고충은 노숙인을 돕기 위해 시설입소를 권하지만 정작 당사자가 원치 않을 경우에는 별다른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청주시 한 관계자는 “춥고, 더운 계절 노숙인들의 안전이 염려돼 시설에 모시고 싶어도 완강히 거부해요. 인권침해 요소가 있기 때문에 강제로 입소시킬 수도 없고……. 그럴 땐 정말 난감하죠”라고 말했다.

지난달 청주시 내덕동 편의점 앞 D씨 사망사고 때도 이런 문제는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당시 경찰과 119구급대원들은 D씨에게 시설이나 구청 당직실에 들어가길 권했지만 D씨는 이를 강력히 거부했다. 경찰은 핫팩과 음료를 제공하는 것 이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국가법령정보센터 홈페이지 캡처.

 

현행법상 노숙자의 시설 입소와 퇴소는 전적으로 노숙자 당사자 의지에 따라 결정할 수밖에 없다.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노숙인복지법)’ 제 21조에 따르면 정당한 사유 없이 노숙인 등의 입소·퇴소 및 전원조치를 지연하거나 노숙인 등을 강압적으로 시설에 입소·퇴소시키는 행위를 할 수 없다.

실제 충북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12월까지 담당공무원들이 노숙인 35명을 만나 상담하고 시설 입소를 권했지만 시설에 입소한 사람은 단 3명뿐이었다. 추운 날씨지만 단 10%만이 시설에 입소했다는 얘기다. 노숙인 재활시설인 성덕원의 한 관계자는 “비장애 노숙인들은 대체로 시설에 입소하기를 거부합니다. 추운 겨울이나 더운 여름에는 너무 힘드니까 며칠 시설에 들어왔다가 날씨가 좋아지면 다시 나가기를 반복해요. 그런 사람들이 꽤 되요”라고 말했다.

 

시설을 왜 거부할까?

강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지난 6일 중앙공원에서 만났던 노숙인 E씨도 시설 입소를 완강히 거부했었다. 그는 추워도 밖에 있는 것이 마음이 편하고 좋다고 했다. 숙식이 해결되는 시설을 거부하고 오히려 추운 바깥이 더 좋다고 하는 이유는 뭘까?

보건복지부(주관연구기관 : 서울대 산학협력단)가 2019년 12월 발표한 ‘노숙인 요양, 재활시설 생활인 탈 시설 및 지역사회통합돌봄 욕구조사’에 따르면 노숙인들이 시설을 거부하는 이유는 우선 시설에서의 생활이 자유가 없고 통제받기 때문이다. 특히 취미활동을 많이 할 수 없고, 외부활동도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또한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하고 한방에 적게는 4~5명, 많게는 8~9명이 함께 생활해야 하는 열악한 환경도 시설을 거부하는 이유다. 

일단, 청주지역의 노숙인 시설을 살펴봤다. 청주지역에는 노숙인을 위한 시설로 성덕원과 한마음실직자지원센터가 있다.

성덕원은 현양복지재단이 운영하는 노숙인 재활시설로 104명 정원, 현재 80여명이 입소해 있다. 관리 직원은 15명이다. 입소는 만 18세 이상이면 가능하고 청주시나 해당 구청을 통해 서류를 작성한 후 할 수 있다. 입·퇴소는 당사자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하고  외출 시에는 일지를 작성해 허락을 받아야 한다. 외박도 미리 신청하면 가능하다.

성덕원에 따르면 현재 입소자 80여 명 중 80%는 지적장애인이다. 이들은 가족이 없거나 단절된 상태로 한 공간(방)에 3~4명이 함께 생활한다. 한 관계자는 “이곳에 계신 분들은 상당히 오랫동안 계신 분들이 많다. 그냥 이곳이 집이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 외부에 나가는 일은 별로 없다”며 “의식주는 해결해 주지만 본인부담이 생기는 서비스 제공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지적 수준이 낮기 때문에 자립이 어려우신 분들이 대다수다”라고 말했다. 이어 “비장애인을 위한 별도의 시설은 없다. 비장애인이 장애인과 함께 생활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결국 성덕원은 노숙인재활시설이지만 장애인 중심이고 자립을 위한 별도의 프로그램이나 지원은 부족하다는 얘기다.

또 다른 시설, 한마음실직자지원센터는 성덕원과 달리 남성 노숙인 자활시설이다. 정원은 15명이고 현재(1월 15일 기준) 12명의 남성들이 입소해 있다. 이곳에 머무를 수 있는 기간은 규정상 정해진 것은 없지만 최대 1년으로 보고 있다. 입소자 자격은 근로능력이 있고 건강에 문제가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입소자는 보통 6개월가량 머무르며 구직활동과 자립준비를 할 수 있다. 한마음실직자지원센터는 입소자에게 국토교통부 주거지원사업을 안내한다.

한 관계자는 “이곳은 근로능력이 있는 사람이 숙식을 제공받으면서 자립준비를 하는 곳입니다. 대부분 일용직이나 공공근로 등의 일을 하고 60~70%는 국토부 주거지원을 받아 집을 구해 나가시고, 30%가량은 무단이탈, 10%는 재입소하고 있습니다"라고 전했다.

성덕원에 비해 자립할 수 있는 비율이 높긴 하지만 입소자의 3분의 1은 한두 달 머무르다 그냥 떠난다는 얘기다.

 

시설입소가 답일까?

‘노숙인 요양, 재활시설 생활인 탈 시설 및 지역사회통합돌봄 욕구조사’ 결과는 그동안 시설에 집중됐던 노숙인 정책이 변화돼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즉 시설입소 중심에서 벗어나 지자체 및 지역사회가 나서서 노숙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얘기다.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진행한 이번 연구는 전국 21개소(요양시설 9개소, 재활시설 13개소) 시설, 430명을 표본으로 직접 대면조사로 진행됐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연구팀은 시설에 입소했다가 중도에 퇴소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설문결과, 시설 퇴소 후 생활한 장소는 시설보다 환경이 오히려 열악한 곳이 상당수였다. 쪽방, 고시원, 여인숙이 33.8%에 달했고, 또다시 거리노숙을 했다고 답한 응답자는 29.4%였다.<표 1> 그리고 이들이 시설에 다시 입소한 이유는 ‘주거를 마련하거나 유지하기 어려워서’가 절반이상(57.4%)을 차지했다.<표 2>

 

 

 

결국 노숙인들은 당장 있을 곳이 없기 때문에 시설을 이용하고 있었고 거리노숙과 시설생활이 반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시설 퇴소 후 생활하고 싶은 곳은 시설이 아닌 일반주거라고 꼽은 응답자(89.2%)가 절대적으로 많았다.<표 3> 

 

 

단순 시설 입소보다는 입소와 퇴소를 반복하는 그 고리를 끊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충북(특히 청주)지역 상황과도 일치한다. 충북도의 한 관계자는 “충북지역 노숙인들의 성향을 조사해본 결과, 시설과 거리노숙을 반복하는 경향이 많았다”며 “시설입소보다는 이들이 궁극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충북만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가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송아영 교수의 지적은 주목할 만하다. 송 교수는 “중소도시나 농어촌 지역에서는 노숙인 문제를 대도시만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본인들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실제 노숙인 정책들을 지자체별로 평가해 보면 굉장히 소극적인 지자체가 많다”며 “중소도시나 농어촌 지역에서도 지자체가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노숙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송 교수는 이어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오랫동안 노숙인 문제를 시설에만 의존했다. 이제는 시설생활 이후의 문제와 자립의 문제를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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