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이 아이’의 새로운 부모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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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이 아이’의 새로운 부모가 될 수 있습니다 
  • 김다솜 기자
  • 승인 2020.10.12 16: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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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찾습니다 ①] 아이들에게 새로운 부모를

충북에서만 425명의 아이들이 위탁가정에

*위탁아동 개인 신상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모든 이름은 ‘가명’으로 표기됩니다.  

  • 사례 1. 어머니는 지적장애인이던 아버지와 이혼하고 집을 떠났다. A는 끼니를 거를 때가 많아졌다. 또래보다 키도 작고, 말도 느려졌다. 학교에서 친구 물건을 말없이 가져오기도 하고,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내뱉었다. 그러다 아버지처럼 지적장애 판정을 받게 됐다. 
  • 사례 2. 북에서 남으로 오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엄마와 아이는 그 힘든 길을 택했다. 새터민 가정은 풍족하지 않았다. 밥벌이가 문제였다. 엄마는 영농사업을 배우랴, 돈을 벌어오랴 밤낮없이 일했다. 집에 남겨진 아이는 혼자만의 시간이 늘어만 갔다. 

‘이 아이’들에게 새로운 부모가 생겼다. 바로 ‘위탁부모’다. 가정에서 돌봄을 받지 못한 아이들에게는 부모와의 이별이 때로는 더 나은 선택이 되기도 했다. A가 만난 위탁부모는 사고로 아이를 잃은 부부였다. 

A가 말썽을 피워도 위탁부모는 사랑으로 대했다. 그러던 어느 날 휴대전화 연락처에 저장된 이름이 바뀐 걸 알게 됐다. A가 직접 작은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의 번호를 ‘아들’이라 고쳐 저장한 것이었다. 

서로가 서로의 상실감을 채워주면서 그들은 ‘가족’이 됐다. 변화가 찾아왔다. A는 장애인 체육 부문 각종 대회에서 1등을 휩쓸었다. 한국 신기록까지 세우면서 실업팀에서 스카우트 제의까지 들어왔다. 

위탁가정에 가게 된 B에게는 위탁부모와 형까지 생겼다. 위탁부모는 케이크와 맛있는 음식을 한 상 가득 차려 놓고 B를 맞이했다. 새로운 가족의 탄생이었다. 이들은 1년 동안 함께 시간을 보냈고, 정착에 성공한 새터민 엄마와 B가 다시 만날 수 있도록 도왔다. 위탁부모는 B에게 ‘두 번째 부모’가 되어 여전히 연락을 이어가고 있다. 

예비위탁부모교육 과정을 수료해야 가정위탁을 할 수 있다. 충북가정위탁지원센터에서 가정위탁 예비 부모가 되기 위한 교육을 하는 모습이다 ⓒ 충북가정위탁지원센터
예비위탁부모교육 과정을 수료해야 가정위탁을 할 수 있다. 충북가정위탁지원센터에서 가정위탁 예비 부모가 되기 위한 교육을 하는 모습이다 ⓒ 충북가정위탁지원센터

충북 아동 425명이 위탁가정으로 

가정이 없거나, 자신의 가정에서 친부모로부터 보살핌을 받기 어려운 경우 일정 기간 ‘새로운 부모’와 지내는 아이들을 ‘위탁아동’이라 부른다. 충북에서만 425명의 아이들이 335개 가정에서 보살핌을 받고 있다. 부모의 이혼으로 친·인척 손에 맡겨지거나, 아동학대 등으로 열악한 양육 환경에 놓이는 등 각자의 사연도 다양하다. 

충북 청주시에 사는 이현선·조광석(가명) 부부는 세 차례 가정위탁 경험이 있는 ‘베테랑’이다. 특별한 계기는 없다. 아이를 좋아했고, 소외됐거나 힘든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경험이 귀하다 여겼을 뿐이다. 이미 부부에게는 아들 2명이 있었다. 첫째 아들은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지냈다. 부부의 곁에는 경미한 장애를 가진 둘째 아들만 남아 있었다. 

15년 전의 일이다. 지인으로부터 오갈 곳 없는 아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고민 끝에 집으로 아기를 데리고 오기로 결정했다. 처음 만나던 날, 아기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서럽게 울어댔다. 

이현선·조광석(가명) 부부가 살고 있는 집으로 갔다. 위탁아동이 머무는 방에는 알파벳부터 위인전까지 아이들의 교육과 성장을 위한 준비물이 가득 했다 ⓒ 김다솜 기자
이현선·조광석(가명) 부부가 살고 있는 집으로 갔다. 위탁아동이 머무는 방에는 알파벳부터 위인전까지 아이들의 교육과 성장을 위한 준비물이 가득 했다 ⓒ 김다솜 기자

 

“어른들이 기가 막히게 우는 것처럼…. 처음에는 이렇게 작은 애가 어떻게 저렇게 울지 그랬어요. 사정을 들어 보니까 미혼모가 낳은 아이인데 엄마가 안 좋은 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할머니 손에 맡겨졌다가 우리한테 오게 됐어요.”

부부는 아기에게 이름을 붙여줬다. 서영이(가명)는 뭐든 빨랐다. 맞은편에 앉은 위탁 아빠가 볼 수 있게 거꾸로 글씨를 쓰기까지 했다. 아들 키우는 재미와는 확실히 달랐다. 서럽게 울면서 집안에 들어왔던 서영이는 어느 순간부터 웃음을 터트렸다. 

떠나간 아이, 남겨진 부모 

부부에게 4년은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서영이를 맡겼던 할머니가 재혼하면서 다시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말했다. 가정위탁제도는 아이를 보내기 전부터 원가정과 위탁부모가 교육을 받는다. 이들은 아이와의 만남부터 이별까지 모든 과정을 배워야 한다. 

서영이를 키울 당시만 해도 위탁가정제도는 국내에서 안착이 되기 전이었다. 제대로 된 절차를 밟지 않고 부모 없는 아이들이 다른 사람 손에 맡겨졌다가, 다시 원가정으로 돌아가는 일이 빈번했다. 부부도 서영이를 그렇게 떠나보냈다. 

위탁 아빠는 매일을 울었다. 서영이가 다닌다는 유치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사진첩을 뒤졌다. 아이들 사이에 서영이를 찾아가며 그리움을 달랬다. 연락할 방법은 없었고, 서영이를 만나러 갈 수도 없었다. 혹시나 아이가 상처받을까 봐 먼 발치에서 지켜만 봤다. 

집에 머무는 위탁아동들이 쓰는 의자가 방 한 가운데 놓여 있었다 ⓒ 김다솜 기자
집에 머무는 위탁아동들이 쓰는 의자가 방 한 가운데 놓여 있었다 ⓒ 김다솜 기자

지금은 지역에 위치한 가정위탁지원센터를 통해 절차를 밟아야만 한다. 서영이 사례처럼 준비되지 않은 채로 헤어지는 일은 드물다. 가끔 가정위탁지원센터로 전화가 걸려온다. 몇 년 전에 여기서 아이를 위탁하게 됐는데 돌아간 지금은 어떻게 지내느냐고 묻는 전화다. 

원가정과 위탁아동, 위탁가정와 위탁아동 사이에서 ‘교류’는 가정위탁지원센터를 거친다. 가정위탁지원센터는 연 2회 친가정성장지원서비스를 마련해 원가정과 위탁아동이 만나 나들이를 떠날 수 있게 한다. 

위탁가정이 종료된 후에도 정기적인 프로그램은 없으나 위탁부모와 아동이 서로 만나고 싶어 하면 자리를 주선해준다. 위탁 전이나 후에도 개인 주소나 연락처를 공개하지 않는다. 원가정에서 위탁가정으로 아이가 갔을 때도 마찬가지다. 모두를 보호하기 위한 방편이다. 

부부는 자라는 모습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위탁 아동과의 이별은 매순간 아프다. 남편 조 씨는 아직도 떠나보낸 아이들을 그리워한다. 조 씨는 “어떻게 지내는지, 얼마나 컸는지 궁금하긴 하다”라며 “같이 사진 않지만 지금도 다 ‘내 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가정위탁서약을 통해 서로 양육기간 동안 아이를 보호할 수 있도록 서약을 합니다. 위탁가정에서 고생해서 아이를 키웠는데 갑자기 부모가 친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데려가면 강제할 수 없어요. 가정위탁서약을 통해 서로 신뢰하고, 정기적인 상담을 통해 얼마나 자립했는지 확인합니다.” 

장지혜 충북가정위탁지원센터 대리는 “위탁가정의 목적은 원가정으로 돌아가기까지 아이가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랄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며 “아이가 위탁이 끝나고 나서도 잘 지내고 있는지 가정위탁지원센터에서 친가정 상담을 가진다”고 말했다. 

장애·학대 피해 아동까지 돌본다 

서영이가 떠나기 전 윤재(가명)를 데려왔다. 윤재는 아동학대로 위탁가정에 오게 됐다. 다섯 살이면 충분히 대소변은 가릴 나이인데 기저귀를 차고 집에 왔다. 학교에 입학도 시켜야 하는데 모든 게 더뎠다. 발달 검사를 받았더니 다른 아이들보다 많이 지연됐다는 결과가 나왔다. 결국 윤재는 초등학교 특수반에 입학하게 됐다. 

아내 이 씨는 윤재를 키우기 위해 ‘전문위탁부모교육’을 받았다. 가정위탁지원센터에서 지원해 주는 교육 사업 중 하나다. 장애 아동이나 학대 피해가 있는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이 교육을 받으면 ‘전문위탁부모’가 될 수 있다. 

가정위탁지원센터는 위탁가정을 발굴하고 연계시키는 일 외에도 △예비위탁부모교육 △위탁부모보수교육 △전문위탁부모교육 △친가정교육 등 교육사업도 벌인다. 양육 공부를 해야만 위탁부모도, 위탁아동도 보다 안정적인 가정을 꾸릴 수 있다. 

지금 부부와 함께 지내고 있는 세호·세한이(가명) 형제는 딱지치기를 좋아한다. 아이들의 손때가 묻은 딱지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 김다솜 기자
지금 부부와 함께 지내고 있는 세호·세한이(가명) 형제는 딱지치기를 좋아한다. 아이들의 손때가 묻은 딱지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 김다솜 기자

위탁가정이 지향해야 할 사례 

부부는 윤재도 4년을 키웠다. 지금은 세 번째로 만난 세호·세한이(가명) 형제를 7년째 키우고 있다. 형제는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한창 뛰어놀 때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동네 제일 가는 말썽꾸러기들이다. 살가운 아이들을 보면서 입양까지 생각했지만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다행히 가정위탁지원센터에서 경제적인 지원을 해준다. 

△아동 1인당 월 15만 원 양육보조금 △아동 1인당 연 150만 원 위탁부모 소득공제 △해당 아동에 한해 국민기초생활수급 책정 및 지원 △디딤씨앗통장 가입 △아동 상해보험지원·부모 1인 후유장애보험지원 △LH전세자금지원 등을 지원받는다. 안정적인 가정에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경제력’도 중요한 요소기 때문이다. 아이들마다 지원금액에 편차가 있긴 하지만 한 달 80만 원가량 지원된다. 

충북가정위탁지원센터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지원을 받아 위탁 아동을 위한 학용품을 마련하기도 한다 ⓒ 충북가정위탁지원센터
충북가정위탁지원센터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지원을 받아 위탁 아동을 위한 학용품을 마련하기도 한다 ⓒ 충북가정위탁지원센터

무려 15년 동안 피 한 방울 안 섞인 네 명의 아이를 길러낸 부부는 벌써 환갑이 다 됐다. 이 정도면 힘에 부칠 만도 한데 부부는 가정위탁제도가 아이들을 위한 것만은 아니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우리끼리 그러잖아요. 애들 없으면 어떻게 살았느냐고.”

“그러게. 애들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우리끼리 살았으면 보람도 없고, 적적했을 거고….”

‘대단하다’는 말을 건넸다. 자주 듣는 소리란다. 부부는 그저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주는 일이었다고 웃어넘겼다. 이들 부부도 위탁아동과 ‘가족’이 되기까지 여러 난관을 헤쳐 왔다. 난관을 지나온 지금에서야 가족이 되어 줬을 뿐이라고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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