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충주시 고교생 집단성폭행 사건은 2020년 4월부터 10월까지 7개월동안 지속됐다. 경찰 수사는 2020년 10월에 시작됐다. 하지만 이 사건은 꼭꼭 숨겨졌다. 충주 지역에선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돌아다녔지만 공론화 되지 않았다. 소문에 대해서 ‘쉬쉬’ 하는 분위기가 지역을 감쌌다.
성폭행 방식은 참혹했다. 오죽하면 재판부는 이들의 성폭행방식에 대해 “가학적이고 변태적인” 이라고 표현했다.
경찰과 검찰의 대응도 의문투성이다. 이 사건을 최초로 수사했던 충주경찰서가 검찰에 사건을 송치하는데에만 1년이 걸렸다.
사건을 넘겨받은 충주지검은 또 다시 1년 동안 사건을 캐비넷에 묵혔다. 본보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2020년 충주고교생집단성폭행 사건의 이면을 연속으로 보도한다.(편집자주)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나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선 성폭력 피해자 보호에 대한 국가와 지방지차단체, 교육청의 책무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법에 따르면 국가는 가해자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고, 제대로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또 피해자가 적절한 법률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환경도 마련해주어야 한다.
충주고교생 집단 성폭력 사건 피해자에게 법에 의해 규정된 보호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했을까?
“전학을 간 뒤로는 우리 교육청의 관할이 아니어서 그 뒤에 진행된 사항은 알지 못합니다”
피해자는 가해자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을 가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충북교육청 관계자에 따르면 피해자는 경찰에 신고해야 된다는 교사의 말에 “경찰에 신고하면 자살 할 거에요”란 말까지 했다.
피해자가 선생님께 요청한 것은 경찰신고가 아니라 조퇴였다. 그에게 당시 가장 필요한 것은 가해자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사건이 사건화가 되어 1차 경찰 조사를 받은 후 부터는 피고인들의 강압적인 성관계가 범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고 적시했다.
가해자에 대한 두려움, 강압적인 성관계가 범죄가 될수 있다는 것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정도였던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에게 필요한 서비스가 무엇이었는지 짐작되는 대목이다.
현재까지 취재를 종합하면 피해자가 이 사건을 외부에 최초로 알린 것은 학교다. 2020년 10월 8일 피해자는 학교교사에게 피해사실을 알렸다. 학교는 다시 충주교육지원청과 충주경찰서에 관련내용을 전파했다.
2020년 10월 말, 피하재와 가해자에 대한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이하 학폭위)가 개최됐다.
충북교육청에 따르면 피해자와 피해자의 부모는 이날 개최된 학폭위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 사건을 최초로 보도한 <청주일보> 취재기자는 “당시 열렸던 학폭위에 가해자와 피해자를 한 공간에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 말이 맞다면 가해자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피해자가 참석하지 않은 이유를 얼추 가늠해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충북교육청 관계자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부른 것은 맞지만 시간대를 분리했기 때문에 피해자와 가해자가 접촉할 가능성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충북교육청은 피해자에게 심리상담 등 추가적인 보호방안을 마련했지만 실행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그 이유는 ‘관할구역’이다.
충북교육청 관계자는 “학폭위가 끝난 지 열흘 만에 피해학생이 타 지역으로 전학을 갔다”며 “충북교육청 관할이 아니기 때문에 피해자에 대한 조치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충북교육청 관계자의 말 대로라면, 전학을 간 피해자에 대한 보호 책임은 그 지역의 관할 교육청이 된다.
그렇다면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법적 조력의 필요성에 대한 정보는 해당 교육청에 전달 됐을까?
이에 대해 충북교육청 관계자는 “피해자에 대한 정보는 개인정보에 해당된다”며 “○○교육청에 전달해서도 안되고, 전달할 의무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육청도 피해자가 말하지 않는 이상 아무것도 알 수가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충북교육청 관계자는 “더 이상 충북교육청 관할이 아니기 때문에, 전학을 간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며 “경찰로부터 수사상황이나 이런 것들을 통보받은 것도 일체 없다”고 밝혔다.
충북교육청의 성폭력 피해 학생에 대한 후속 조치는 ‘관할구역’이란 단어 하나로 그렇게 끝이 났다.
해바리기센터 “이 사건과 관련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다”
취재결과 피해자는 충북충주시에 소재한 ‘충북아동해바라기센터’ (이하 해바라기센터)와 상담을 진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언제부터, 몇 회에 걸쳐 상담이 진행됐고, 보호조치가 어떤 것들이 이루어 졌는지는 확인 할 수가 없었다.
해바라기센터는 개인정보보호 등 관련 법령에 따라 피해자와 관련된 일체의 내용에 대해 일절 공개 할수 없다는 입장이다.
해바라기센터 측은 사무실을 방문한 취재진에게 문조차 열어주지 않기도 했다.
다만 충주지역 유관기관 관계자는 “해바라기센터 관계자로부터 피해자와 상담을 한 시기는 ‘이 건이 사건화 되기 전까지 상담을 진행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해바라기센터는 피해학생이 전학을 가면서 관할 지역 기관에 이관을 했고, 그 이후 상황은 알지 못한다라고 했다”고 밝혔다.
1심과 2심 재판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은 국선 변호인
충주고교생집단 성폭행 사건으로 기소된 9명의 1심 재판은 2023년 4월 심리를 시작해 2024년 2월 1일이 돼서야 끝났다. 2심은 2024년 7월 18일에 마쳤다.
피고인들은 성폭력 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로펌을 선임해 대응했다. 피해자에게 국가는 국선변호인을 제공했다.
오선희(법무법인 혜명) 변호사는 성폭력 사건 재판에서 피해자를 변호하는 변호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피해자의 변호인이 재판에 참석한 것과 참석하지 않은 것은 큰 차이가 있다”며 “피해인의 변호사가 참석했을 경우 당장 가해자의 변호인측이 황당한 내용을 담은 변론을 하지 못하는 효과를 본다”고 말했다.
강원도 춘천지역에서 사회적약자를 대상으로 한 사건에서 공익변론 활동을 하고 있는 조영은 변호사는 “피해자가 증언을 할 경우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게 된다”며 “또 피해자의 입장에서 가해자의 행위가 왜 폭력인지에 대해 재판부를 상대로 의견을 개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가해자에 대한 피해자의 엄중 처벌해 달라는 의사가 중요한데, 피해자의 변호인을 통해 이를 재판부에 전달하게 된다”고 밝혔다.
성폭력 사건 전문가들이 피해자의 변호인의 역할을 강조하는 상황.
대법원 사건검색을 통해 확인한 재판기록에 따르면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를 대리한 국선 변호인은 10여회 넘게 진행된 1심과 2심 재판에 단 한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가해자 측 변호인이 여러 의견서를 제출하는 동안 피해자의 국선변호인은 어떤 의견서도 재판부에 제출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피해자의 국선변호를 맡았던 A변호사는 “피해자가 도움이 필요 없다”며 “변론을 거절했다”고 설명했다.
A변호사는 “심지어 연락도 받지 않았다”며 “이런 상태에서 변론을 할 수가 없었고, 재판에 참석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고 밝혔다.
이어 “2심 재판에서 국선변호인으로 지정된 것은, 1심 국선변호인으로 지정됐기 때문에 자동으로 연장된 것”이라며 “변론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선변호인 관련 수당도 청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적절한 조력만 있었더라면, 1‧2심 재판 결과는 달라졌을 것”
지난 7월 2심 재판 선고를 앞두고 가해자에 대해 엄중 처벌해 달라며 850명의 서명을 받은 탄원서를 제출한 최명희 충주성폭력상담소장은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가 국가와 지역사회로부터 적절한 조력을 받았는지는 의문”이라고 밝혔다.
최명희 소장은 “피해자는 가해자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컸다”며 “법률적인 지식도 부족했고, 이런 상황에서 혼자 수사기관의 수사와 재판에 제대로 대응하기는 애시당초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간 상황을 종합하면 피해자는 매우 소극적이였던 것으로 보인다”며 “이때 국가와 지역사회는 피해자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서서 대처방안을 안내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했다”고 밝혔다.
최명희 소장은 “도움을 거절했다는 말로, 전학을 가 관할기관이 아니라는 말로 빠져나갈 것은 아니다”라며 “그럴수록 더 연락하고 접근했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피해자에게 제대로된 조력이 제공됐으면 재판 결과는 확연히 달랐을 것”이라며 “피해자에게 국가와 지역사회가 존재했는지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