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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이 가루가 될 때까지 잊지 말자. 그 이름 친일

청주 문의문화재단지에 ‘산장의 여인’ 노래비 세워져 지난해 11월 대한가수협회충북지회‧안동권씨문중 건립 참여 가수 권혜경 추모비 세우며 반야월 작사 ‘산장의 여인’ 가사 새겨 넣어 청주시 관계자 “권혜경 추모비로 알고 허가” 2012년 창원시에서도 ‘산장의 여인’ 노래비 설립두고 갈등하기도

없애도 시원찮은데…또 다시 세워진 반야월 노래비

2020. 01. 04 by 김남균 기자
2019년 11월 충북 청주시 문의문화재단지에 세워진 '산장의여인' 노래비.
2019년 11월 충북 청주시 문의문화재단지에 세워진 '산장의여인' 노래비.

 

 

일제강점기 시절 “올려라 일장기. 빛나는 국기... 앞장잡이다.”라는 가사로 구성된 ‘일억 총진군’ 등 노골적인 친일 찬양가요를 불렀던 작사가 반야월(1917~2012, 본명 박정오)의 노래비가 또 다시 세워졌다.

이번에 세워진 노래비는 ‘산장의 여인’. 이로서 충북지역에는 제천시 박달재에 세워진 ‘울고 넘는 박달재’ 노래비등 반야월의 노래비는 두 개가 됐다.

지난 해 11월 대한가수협회충북지회가 청주시 문의문화재단지에 가수 권혜경(1931~2008, 본명 권오명)의 추모비를 세우면서 친일 음악인 반야월이 작사한 ‘산장의 여인’ 노래비를 건립한 것으로 확인됐다.

가수 권혜경은 1956년 KBS 전속 가수로 시작해 이듬해 산장의 여인을 발표하며 '호반의 벤치', '동심초', '물새우는 해변' 등을 발표한 인물.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전성기를 보내던 권혜경 씨는 1960년대 심장판막증, 결핵 등 병마와 싸우며 활동하다 이후 전국 교도소와 소년원을 돌며 재소자를 위한 400여 차례 봉사활동을 펼쳤다.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진 권 씨는 1994년 옛 청원군(현 청주시) 남이면에 이주해 투병생활을 하다 2008년 별세했다.

그녀가 별세하자 대한가수협회 충북지회는 권 씨에 대한 다양한 추모활동을 벌이며 노래비 건립을 추진해왔다.

그러던 중 지난 해 11월 대한가수협회 충북지회는 안동권씨 추밀공파 도사공계의 후원을 받고 청주시의 허가를 받아 문의문화재단지에 권혜경의 추모비를 건립했다.

 

권혜경 추모비인가? 반야월 노래비인가?

 

가수 권혜경 추모사업으로 시작됐지만 건립된 비는 사실상 반야월이 작사한 ‘산장의 여인’ 노래비다.

비에는 권혜경씨의 사진과 반야월이 작사한 ‘산장의 여인’ 가사가 새겨졌다. 비석 뒷면에는 권태호(법무법인 청주로) 변호사, 박문희(더불어민주당) 도의원등 노래비건립에 관여한 인물들의 이름도 새겨 넣었다.

비석 어디에도 권혜경씨의 업적이나 행적 등에 대해선 언급이 없다. 단지 권혜경이라는 이름 석자만 있을 뿐이다.

가수 권혜경 보단 친일파 반야월이 작사한 ‘산장의 여인’ 노래가사가 더 도드라진 느낌을 준다.

‘산장의 여인’노래비와 권혜경 추모사업이 문제가 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12년 9월 경남 마산시(현 창원시)와 국립마산병원은 ‘산장의 여인’ 노래비 건립과 공원조성을 추진했다.

당신 언론보도에 따르면 창원시는 "'산장의 여인' 노래가 한 여인의 슬픈 사연과 아픔을 지닌 서정적인 스토리텔링을 모태로 하고 있어 시의 새로운 문화·관광브랜드로 개발하기 위해 국립마산병원이 관리하는 마산합포구 가포 소재 터에 노래비를 조성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산장의 여인'은 한국전쟁 직후 반야월이 마산방송 문예부장으로 마산결핵병원 위문공연을 할 당시 결핵병원 산장병동에 요양 중이던 한 여인의 슬픈 사연을 듣고 지었다고 전해졌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당시 마산 지역 시민단체와 정치권에선 친일 작사가 미화작업이라며 사업중단을 거세게 요구했다.

이에 대해 당시 마산시 관계자는 "반야월이 작사한 노래를 기리는 비가 다른 지역에도 많이 있다"면서 "반야월 개인을 기리는 비가 아니고, 노래에 얽힌 이야기가 있어 비를 세우자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청주 문의문화재단지 주차장 부지에 세워진 '산장의 여인 노래비'  뒷면
청주 문의문화재단지 주차장 부지에 세워진 '산장의 여인 노래비' 뒷면

 

“‘산장의 여인’ 노래를 반야월이 만들 줄 몰랐다”

 

노래비 건립에 관계했던 관계자들은 반야월의 친일행적 논란에 대해 “잘 몰랐다”는 입장.

안동권씨 후손으로 노래비 건립에 참여했던 권태호(법무법인 청주로) 변호사는 “가수 반야월이 친일행적에 참여했다는 것에 대해서 알지 못했고 생각하지도 못했다”며 “(반야월이) 친일인사라는 것을 알았다면 논의 해봤을 것”이라고 밝혔다.

권 변호사는 “권혜경씨가 (반야월이) 친일인사라는 것을 알고 노래를 부른 것인지도 모르고 국민정상 괴리는 있다는 것도 모르는 것 아니냐”며 “(산장의 여인 노래가) 권혜경씨의 삶과 맞아떨어져 있는 부분이고 또 가장 많이 불렀던 노래여서 선택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노래비 건립 허가를 내준 당사자인 청주시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권혜경씨 추모사업에 초점을 맞춰서 요청이 들어와 허가를 내준 것”이라며 “청주시는 비용을 부담하지 않고 오로지 민간이 알아서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반야월의 친일행적에 대해 잘 모르고 진행했다면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민족문제연구소충북지부 김성진 사무국장은 “친일인사의 행적에 대해 이미 2000년대 중반 정부차원에서 정리를 한 문제”라며 “몰라고 그랬다고 했는데 사실을 알게 된 만큼 지금 바로잡으면 될 문제”라고 말했다.

김 국장은 “지금 자라나는 학생들은 기성세대와 사회에 대해 불공정의 문제를 많이 제기하고 있다”며 “역사라는 학문적 영역뿐만이 아니라 (친일인사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대응방안이) 사회인식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청주시와 이와 관련된 시민단체들이 (친일인사에 대한 평가를) 바로 잡아야 할때”라고 밝혔다.

반야월이 작사한 '산장의 여인' 노래비가 세워진 청주시 문의문화재단지 전경
반야월이 작사한 '산장의 여인' 노래비가 세워진 청주시 문의문화재단지 전경

 

 

가수 반야월은 누구?

 

반야월은 작곡가 박시춘과 가수 이난영과 함께 한국가요계의 ‘3대 보물’로 평가받는 인물. 하지만 반야월이 만들고 불렀던 가요 중 일부는 노골적인 친일을 담고 있다.

1942년 반야월은 ‘일억총진군’외에도 일제의 군국가요인 ‘결전태평양’을 작사했다. 뿐만 아니라 진남방이란 예명으로 ‘조국의 아들-지원병의 노래’와 ‘일억 총진군’을 직접 불렀다. 1943년에는 ‘고원의 십오야’를 노래했다.

다음은 반야월이 작사한 친일가요 중 하나인 ‘일억총진군’의 가사다.

 

일억총진군(一億 總進軍)

작사 : 반야월 / 노래 진남방 (반야월의 예명)

나아가자 결전이다 일어나거라 / 간닌부쿠로(堪忍袋)의 줄은 터졌다

민족의 진군이다 총력전이다 / 피 뛰는 일억일심(一億一心) 함성을 쳐라

(※간닌부쿠로 : 인내를 담은 주머니 / 더 이상 참을수 없는 상태를 나타내는 일본식 표현)

싸움터 먼저 나간 황군(皇軍) 장병아 / 총후(銃後)는 튼튼하다 걱정 마시오

한 사람 한 집안이 모다 결사대 / 아카이타스키(赤い)에 피가 끓는다

(※아카이타스키 : 소집영장을 받고 입대하는 사람이 두르는 붉은 어깨띠)

올려라 히노마루(日の丸) 빛나는 국기 / 우리는 신의 나라 자손이란다

임금께 일사보국(一死報國) 바치는 목숨 / 무엇이 두려우랴 거리끼겠소

(※히노마루 : 일장기)

대동아(大東亞) 재건이다 앞장잡이다 / 역사는 아름답고 평화는 온다

민족의 대진군아 발을 맞추자 / 승리다 대일본은 만세 만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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