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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이 가루가 될 때까지 잊지 말자. 그 이름 친일

2007년 민영휘 후손 소유 상당산성 내 44만여㎡ 토지 국가귀속 지분 1/3은 청주시 소유…2005년 민 씨 후손에 돈 주고 매입 민영휘의 첩 ‘해주마마’ 안유풍 묘, 이전 안 해 민영휘 아들 민천식 부부 묘지도 상당산성 내 존재 석물도 왜색…석등은 전형적인 일본 양식

친일파 민영휘의 첩 안유풍 묘, 국가·청주시 땅에 ‘삐까번쩍’ 건재

2019. 12. 11 by 김남균 기자
안유풍의 묘가 자리한 충북 청주시 산성동 산 28-1번지는 면적만 44만1390㎡에 달한다. 해당 토지는 민영휘 후손들이 소유하고 있었지만 현재는 청주시가 지분의 1/3, 국가가 2/3를 소육하고 있다.
안유풍의 묘가 자리한 충북 청주시 산성동 산 28-1번지는 면적만 44만1390㎡에 달한다. 해당 토지는 민영휘 후손들이 소유하고 있었지만 현재는 청주시가 지분의 1/3, 국가가 2/3를 소육하고 있다.
청주시 산성동 상당산성에 자리한 친일파 민영휘의 첩 안유풍의 묘소 전경
청주시 산성동 상당산성에 자리한 친일파 민영휘의 첩 안유풍의 묘소 전경
청주시 산성동 상당산성에 자리한 친일파 민영휘의 첩 안유풍의 묘소 전경
청주시 산성동 상당산성에 자리한 친일파 민영휘의 첩 안유풍의 묘소 전경

국가와 청주시가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는 청주시 산성동 상당산성 내 토지에 친일파 민영휘(1852~1935)의 둘째부인 안유풍의 묘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안유풍의 묘가 자리한 충북 청주시 산성동 산 28-1번지는 면적만 44만1390㎡에 달한다. 해당 토지는 민영휘 후손들이 소유하고 있었지만 현재는 청주시가 지분의 1/3, 국가가 2/3를 소유하고 있다.

청주시는 2005년 민영휘의 후손들로부터 지분의 1/3을 4억여원을 주고 매입했다. 2007년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에 의거 나머지 2/3가 국가에 귀속됐다.

민영휘는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악명 높은 친일파다. 2007년 대통령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선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포함됐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도 포함됐다.

민영휘의 본관은 여흥이고 명성황후의 친척 조카다. 관직에 있을 때 수탈한 재산을 바탕으로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 최고의 갑부가 되었다.

1907년 친일보부상 단체인 동아개진교육회 찬성장으로 선출됐다. 그해 10월에는 한국을 시찰하러 온 일본 황태자를 환영하기 위해 조직한 신사회(神士會) 환영위원장을 맡아 행사를 주도했다. 그 공로로 1909년 일본정부가 주는 ‘일본황태자 도한 기념장’을 받았다.

1909년 12월 일진회가 발표한 ‘합방청원서’와 경쟁하기 위해 이완용이 중심이 돼 결성한 ‘국민연설회’ 총대위원으로 참여했다.

조선의 국권피탈에 앞장선 공로로 1910년 일본 황실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았다. 1912년에는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았다. 1928년 7월 일본 정부가 주는 금배(金杯), 11월에는 은배(銀杯)와 쇼와대례기념장을 받았다.

 

민영휘의 ‘휘’를 따서 휘문…안유풍의 ‘풍’을 따서 풍문
안유풍은 누구…민영휘의 둘째 첩, 자손들이 사후 ‘풍문여고’ 설립

안유풍은 민영휘의 첩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 최대 갑부였던 민영휘의 여성 편력은 화려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영휘의 정실분인 ‘대방(大房)마마’로 불렸던 신씨(申氏)였다. 신 씨와는 사이에선 아들이 없었다.

민영휘의 첩인 안유풍은 ‘해주마마’로 불렸다. 민영휘에겐 이 외에도 평양마마, 연당마마 등 여러명의 첩을 두었다.

민영휘와 안유풍 사이엔 대식‧천식‧규식의 세 아들이 있었다. 셋째 아들 민규식은 후에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까지 올랐다. 아버지와 아들 모두 거물 친일파가 된 것이다.

민영휘는 어느정도 부자였을까?

1935년 12월 말, 민영휘가 84세 되던해 사망하자 당시 잡지 삼천리는 <1천 2백만원이라는 민영휘 재산은 어디로 가나>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민영휘는 자신의 이름을 따서 현재의 휘문학원을 설립한 인물. 그의 첩이었던 안유풍은 현 풍문여고를 설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론 1936년 안유풍이 죽자 그의 아들이 ‘어머니의 유훈’이라며 설립자금을 내고 초등학교를 설립했다. 이후 풍문여학교를 설립하면서 안유풍의 ‘풍자’를 따 풍문학원이라 이름을 지었다. 

 

청주 최고의 단풍나무로 꾸며진 안유풍의 묘
안유풍의 묘소로 가는 길. 묘소 길목과 주변에는 조성 당시 식재된 것으로 보이는 단풍나무가 위용을 뽐내고 있다.
안유풍의 묘소로 가는 길. 묘소 길목과 주변에는 조성 당시 식재된 것으로 보이는 단풍나무가 위용을 뽐내고 있다.
안유풍의 묘에 설치된 석등. 백제유물전시관 한영희 학예사는 이곳에 설치된 석등은 전형적인 일본 양식이라고 설명했다.
안유풍의 묘에 설치된 석등. 백제유물전시관 한영희 학예사는 이곳에 설치된 석등은 전형적인 일본 양식이라고 설명했다.
안유풍의 묘에 설치된 석물
안유풍의 묘에 설치된 석물

 

안유풍의 묘가 자리한 땅의 지번은 충북 청주시 흥덕구 산28-1번지.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1971년 민영휘의 후손인 민덕기, 민병유, 민병수의 명의로 소유권이 이전됐다.

소유자 민덕기는 민영휘와 안유풍 사이에 태어난 첫째 아들 민대식의 아들이고. 민병수는 민대식의 아들이다.

그러던중 청주시는 해당 토지가 존재하는 상당공원 일대에 대한 공원화 작업의 일환으로 매입에 나선다.

2004년 12월 청주시는 법원으로부터 강제경매입찰을 통해 해당 토지의 지분 1/3을 낙찰받고 2005년 소유권을 이전했다.

친일파 후손의 땅이므로 강제로 국가에 귀속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었지만 청주시는 민 씨 일가의 후손들에게 국민의 피같은 세금 4억여원을 지급했다.

나머지 지분 2/3는 2007년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에 의거 국가에 귀속됐다. 이 과정에서 민영휘의 후손들은 각종 소송을 통해 국가 귀속에 저항했다.

민영휘의 첩 안유풍의 묘소는 크기부터 남다르다. 봉분 높이가 2m가량으로 높고 크다. 원숭이 모양의 석물 2점, 상석, 석등이 묘를 중심으로 배치돼 있다.

묘지 주변과 묘지로 가는 길목에는 단풍나무로 배치돼 있다. 이 나무는 청주지역 최고의 단풍나무로 평가받는다.

이곳에 설치된 석물은 일본풍이거나 일본풍과 조선전통양식이 혼합돼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영희 백제유물전시관 학예사는 “이곳에 있는 석등은 전형적인 일본 양식”이라고 밝혔다. 또 “원숭이 모양의 석물은 조선 전통 양식도 아니고 그렇다고 온전한 일본식도 아니다. 적당히 혼합돼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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