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뉴스Q

기사검색

본문영역

토박이 열전

DVD도 사라지는데 비디오 빌려주는 김한수 씨
5만장 소유…단골 20명, 한번에 5~10장씩 빌려

“2005년, ‘착신아리2’가 최신편이야”

2016. 07. 21 by 충청리뷰

토박이 열전(10)
이재표 청주마실 대표

숲속에서 길을 잃은 헨젤과 그레텔은 빵과 설탕창문으로 지은 과자집을 발견한다. 배고픈 남매는 과자집을 먹기 시작하지만 사실 그 집은 마녀의 집이었다. 그림형제의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얘기다. 허풍을 조금 보태자면, 청주에는 비디오로 지은 집이 있다. 남주동시장 옛 피전골목으로 들어서는 초입쯤이다. 허름한 한옥에 딸린 점방인데, 전면은 쇼윈도 대신에 빛바랜 비디오들이 빽빽이 꽂힌 진열장이다.

가게 앞에는 ‘최신프로, 공(空)테이프, 크리너’ 등을 팔거나 빌려준다는 입간판이 서있다. 묘하게도 글씨를 붙였던 부분만 삭아서 일부러 ‘투조(透彫)’를 한 것 같다. 13시부터 영업한다는 쪽지 한 장이 붙어있는데 오후 2시가 넘었는데도 가게 문이 닫혀있다. 유리문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천장과 바닥만 빼고는 낡은 비디오테이프들로 빼곡하다. 유리문에 적힌 주인장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건다.

“가게 앞에 계시는 겁니까? 내가 지금 근처에서 소주 한 잔 하고 있어요. 금방 갈 테니 조금만 기다리시오.”

비디오를 빌리러 온 게 아니라는 말을 던지기도 전에 전화가 끊겼고 오래지 않아 주인장 김한수 씨가 당도했다. 1945년생, 해방둥이고 강원도 영월이 고향이라고 했다. 청주로 온 것은 1983년이란다. 청주에서 장사를 준비하던 형들을 찾아왔다가 눌러앉은 세월이 33년이다. 김한수 씨의 입을 통해 뜻밖에도 성안길의 노점 역사를 들을 수 있었다.

“묵호랑 북평이 합쳐져서 지금의 동해시가 됐잖아요. 거기에 삼척산업이 있었어요. 그게 동부그룹이 된 거죠. 내가 거기를 다녔는데, 그때 노동운동을 하다가 잘렸거든요. 일곱 남매 중에 형님 두 분이 있고 네가 셋째였는데 형님들이 청주에 와서 완구도매점을 한다고, 도와 달라고 해서 1983년에 청주로 오게 된 거죠. 그런데 형님들이 결국엔 완구도매를 시작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본정통(本町通, 성안길)에서 리어카를 끌고 완구장사, 인형장사를 하게 된 거예요. 그때는 변두리 상가보다 벌이가 좋았어요.”

정치인으로 변한 군인들이 ‘정의’를 부르짖던 민주정의당 시절이었다. 노점은 정의가 아니었다. 단속에 적발되는 족족 즉결심판에 넘겨져 그때 돈으로 거금인 3만원을 벌금으로 내야했다. 단속을 피해 쫓고 쫓기는 일상의 연속이었다. 물건을 팔면서도 늘 주변을 살피고, 단속반이 뜨면 리어카를 몰고 도망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노동운동을 했던 깡다구가 있어서인지 김 씨는 당시 중앙로 1번가 상우회장이었다. 회원 노점만 128개에 달했다고 한다. 쥐도 궁지에 물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회원들의 도장을 일일이 받아서 진정서를 썼고, 충북도와 경찰, 청주시 등에 민원을 넣었다고 한다. 그리고 정종택 국회의원을 찾아갔다.

“가서 ‘무조건 단속만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따졌지요. 정종택 의원이 시청 과장한테 전화를 하는데 처음에는 안 된다고 하는 것 같더라고요. 정종택 의원이 ‘안 되긴 뭐가 안 되냐, 불란서 파리처럼 명물을 한 번 만들어 보라’고 그래서 우체국 담벼락 따라서 55개 간이점포가 들어온 거예요. 공구노점 일부는 먼저 조성돼있던 서문다리 풍물시장으로 가고, 포장마차 일부는 한국은행 담벼락 밑으로도 흩어지고…. 우체국과 전화국(현 KT) 담벼락 쪽으로 노점상을 유도한 게 1992년이에요. 그때는 내가 신문에도 나고 그랬어요.”

담벼락에 붙어서 10여년 장사를 잘했다. 그러나 2002년, 공기업 한국통신이 KT로 민영화되면서 노점은 철거의 운명을 맞는다. KT청주지사는 노점이 나간 자리에 2006년, 정식 점포 13개를 만들어 분양했다. 김한수 씨를 비롯한 이곳의 노점상들은 100만원 안팎의 이주비를 받고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지인이 운영하던 금호비디오를 인수했는데 그게 지금의 가게다. 한때는 장사가 잘됐다는데, 아무리 따져 봐도 고작 2,3년 안팎일 터이다.

비디오테이프는 무려 5만 장에 이른다. 문제는 영화사들이 10여 년 전부터 비디오테이프를 제작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가게를 꼼꼼히 톺아보아도 최신작은 2006년 6월에 출시된 공포영화 ‘착신아리2’다. 이른바 대작들은 상하(上下) 두 편으로 출시되기도 했다. 그래봤자 케이블TV가 재탕, 삼탕한 것들이다.

요즘 영화를 관람하는 방식은 복합상영관에 가느냐 다운을 받느냐, 둘 중에 하나다. DVD도 한물갔다. 다운을 받는다면 또 선택할 것이 있다. ‘TV냐, 스마트폰이냐’ ‘정품이냐, 불법다운로드냐’의 기로에 설뿐이다. 테이프를 공짜로 준다고 해도 비디오 플레이어가 있는 집이 몇 집이나 될까?

“300만원에 30만원씩 주던 가게인데, 주인이 ‘한 달에 10만원은 낼 수 있냐’고 묻더라고요. 장사는 진즉에 끝났고, 이제는 옛날부터 아는 사람들 놀러오는 사랑방이 된 거죠. 안식구가 23년째 중풍으로 누워있어서 오후 1시에나 나와서 6시 반이면 들어가요. 매일 오는 친구들이 20~30명은 될 테니까. 그 사람들이랑 같이 바둑 두고, 나가서 술도 마시고…. 그 중에서 비디오 빌려가는 사람들이 20명은 되는데 매일 빌리는 게 아니라 한 번에 다섯 장씩, 열 장씩 빌리거든요. 가끔은 수집가들이 와요. 이 사람들은 뭘 찾아가도 찾아가는 사람들이고…. 빌려주는 거는 1000원, 파는 거는 5000원, 그렇게 해서 하루에 만원도 벌고, 2만원도 벌고 그러는 거죠.”

멈춰 설 것은 이미 멈춰 섰다. 비디오테이프의 생산도 오래 전에 끝났고, 제대로 돌아가는 비디오플레이어가 세상에 흔치 않다. 이곳 시장을 찾는 장꾼들의 발길도 오래 전에 끊겼고 가게들도 낡아서 문을 닫거나 창고 등으로 용도가 바뀌었다. 변하지 않은 것은 단 하나, 늘 그 자리에 모이는 친구들이다. 그들은 천천히 모이고 쉽게 헤어지지 않는다. 밖으로 떠돌던 이들도 돌아와 한때는 사람이 느는가도 싶었다. 그런데 일흔 살 먹은 이가 커피 심부름을 간다. 앞으로는 말이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가 클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