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교 100년의 역사 속에 여성을 보다
이은정 개인전, 청주지역 화교 역사 취재하고 전시
국가 혼성으로 인한 국적문제에 대해 질문 던지기도
2014-01-02 박소영 기자
이은정 작가는 지난해 12월 17일부터 27일까지 옛 도지사 관사 숲속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대형작품과 소품 총 7점을 ‘연약한 삶의 기록’이라는 주제로 내놓았다. 청주지역 내 화교들의 삶에 초점을 맞췄다. 보통 화교는 한국에 거주하는 대만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화교는 자발적인 삶을 위해 한국을 찾아왔으며 모국의 정치적 혼란으로 한국에서 살게 된 이미 한국인화 되어버린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방인으로 한국에 거주하며 그들 문화가 혼성이 되지 않도록 살았지만 현재는 점점 옅어지는 국가, 민족의식으로 정체성이 모호하다.
4세대를 이룬 화교
“한국에서도 가정을 이루고 살기가 어려운데 나라를 넘어서 결혼하거나 다른 나라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삶은 어떨까 궁금했어요. 더 힘든 상황을 견뎌왔기 때문인지 화교들은 모두 강인한 어떤 면을 갖고 있더라고요. 화교들은 자신의 문화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어요.”
가령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는 한국에서 나와도 다시 대학은 대만으로 유학을 떠난 뒤 한국으로 돌아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화교는 이제 4세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3세대부터는 한국 사람과 교제하고, 결혼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게 됐지만 이전에는 화교끼리 결혼하는 게 전통이었다.
이은정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청주지역 화교의 역사를 조사했다. 청주 고속버스터미널 인근의 중국 식당 아관원(雅觀園)의 양정파(楊靜波)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아내와 딸, 며느리, 손녀에 대한 가계를 조사하고 캔버스에 ‘아관원의 여인들’이라는 제목으로 그렸다.
양정파 할아버지의 가계
양정파 할아버지는 1949년 중일전쟁이후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당시 나이는 27세였으나 군대는 가지 않았고 한국 전쟁에서 피난도중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그렇게 만나 부부가 됐고, 자녀를 낳아 일가를 이뤘다. 양정파 할아버지의 가족들을 통해 청주에 뿌리내린 화교의 삶을 들여다 본 것이다.
이처럼 작가는 국가 혼성의 문제를 개인의 국적문제를 통해 조명한다. 화교의 국적은 개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우리나라와 대만, 중국의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뒤바뀌게 된다. 그리고 다문화가정에서는 현재 베트남 엄마는 2개의 국적을 가질 수 있다.
화교의 국적은 한국 정부의 수교에 따라 달라졌다. 대만과 수교 이 후 한국 거주 중국인들은 대만인이 되었고, 1992년 대만과 국교 단절이후 중국과 수교 후 화교들은 또 다른 혼란기를 거치게 된다. 개인의 문제를 국가가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닌 다른 나라의 편의대로 화교는 모국이 바뀌게 된다.
흐릿하게 사라져간 기록
이씨의 그림은 흐릿하다. 과거에 많은 색을 썼기 때문에 좀 힘을 빼고 싶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언뜻언뜻 보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형상이 여성의 삶을 꼭 닮아있다.
충남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이씨는 2004년 결혼과 함께 파리로 건너가 4년간 작가로 활동했다. 이후 2008년 김장순 여사 4대 가계도, 2009년 종부 시리즈, 2012년 베트남 다문화가족을 주제로 전시했다. 이 씨는 직접 취재를 동반한 그림 그리기를 통해 ‘사실’에 접근해 나가고 있다.
이은정 작가의 남편이자 화가인 이창수 씨는 “작품 속에는 국가가 행한 개인에 대한 폭력이 숨겨져 있다. 직접적인 표현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관심을 가지면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 보일 것이다. 이은정의 작품은 감추려는 것이 아닌 많은 작품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것이 여느 작가들과는 다른 점이다”라고 설명했다.
화교 소학교 ‘예술상회’건물로 탈바꿈
관련 기록물 거의 없어 ‘씁쓸’
청주시 사직 2동에 있는 화교 소학교가 문을 닫은 건 1명 남아있던 학생이 중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면서부터다. 학교가 문을 닫자 1명을 위해 존재했던 교사도 그만두게 됐다. 화교 소학교는 청주지역의 화교들이 돈을 출자해 땅을 구입했다. 현재 화교들이 공동관리하고 있다. 현재 화교 대표는 경화반점이 맡고 있다.
2010년 10월 문을 닫고 잠시 비어 있다가, 2011년부터 이종현 예술가가 이곳을 임대하게 된다. 그 때부터 화교소학교는 ‘예술상회’간판을 단다. 예술상회는 예술가들의 레지던시 사업과 동네 축제, 마을 기업 ‘양달말’등을 만들어냈다. 화교소학교는 이제 마을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 예술의 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은정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당초 화교와 관련된 기록물들을 예술상회에서 전시하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밝힌다. 지역 내 화교들을 같이 취재했던 이창수 씨는 “화교에 대한 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1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지만 자료가 없다는 게 안타깝다. 사는 게 팍팍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또 그분들에게 집요하게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도 불편하게 만드는 것 같아 계획을 수정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