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 예술가가 산다
북부시장,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 스타트
커뮤니티 공간 ‘허니살롱’오픈, 상인들의 문화 책임져
시장의 물건도 예술가의 상품도 잘 팔리지 않는 시대다. 대형마트로 인해 설자리를 잃은 시장에 예술가들이 들어가 문화를 심고 있다. 2010년 가경터미널 시장이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사업(이하 문전성시)에 선정돼 국·도비 지원을 받게 되면서 본격적인 사업이 시작했다. 이후 2013년 올해까지 4년 동안 가경시장을 지켰던 예술가들이 이번엔 북부시장에 둥지를 틀었다.
북부시장은 올 한 해 동안 국비와 도비 1억원씩을 지원받아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을 펼치게 됐다. 기획단이라고 할 수 있는 PM단을 이끌고 있는 이광진 단장을 지난 2일 만났다. 북부시장 상인회관 옆 건물인 빈 당구장에 자리를 잡고 지난 몇 달간 리모델링을 했다. 12월 3일 오후 7시 커뮤니티 공간 ‘허니살롱’ 오픈식을 가졌다. 허니살롱은 수도꼭지를 연결한 전등과, 건축자재인 아시바를 활용한 바퀴가 있는 테이블 등 범상치 않은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충북도, 청주시 예산 지원받아
이광진 단장은 “허니살롱은 커피를 배우고 공부하는 공간이자 전시장, 배움의 장소로 사용하려고 해요. 공연도 이뤄질 수 있도록 직접 제작한 가구에 바퀴를 달아 이동성을 높였죠”라고 말했다. 허니살롱에서는 작은 콘서트도 계획하고 있다.
시장 프로젝트의 주인은 상인이다. 북부시장 상인회(회장 박동휘)는 2009년과 2010년 문전성시 프로그램에 도전했지만 떨어진 경험이 있다. 그런 만큼 시장에 문화가 있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는 것이다.
이 단장은 “가경동 시장은 상인들이 너무 바빠요. 그런데 북부시장은 확실히 여유가 있어요. 단골 장사들이 많고요. 1층에 상가, 2층에 아파트인 우암상가도 존재하고 있고, 구석구석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시장 스토리텔링
1960년 전후 형성된 시장에는 지금 약 150개의 점포가 있다. 이미 북부시장 예술가팀은 동네 아이들과 시장 탐험대를 조직해 매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시장 탐험을 하고 있다. 아이들 스스로 토론해 마을의 이야기를 찾고 지도로 완성하는 작업이다.
상인들을 대상으로는 우암동악극단을 만들어 노래와 민요를 가르치고 있다. 풍물교육을 비롯한 POP 배우기, 가게 스토리텔링, 파라솔 프로젝트 등을 계획 중이다. 파라솔 프로젝트는 파라솔에 그림을 그리고 완성되면 내년 봄에 아트마켓을 열겠다는 것이다. 상인들의 개성을 담은 캐리커쳐 전시회 등도 잡혀있다.
“시장 프로젝트의 주인공은 상인들이에요. 예술가는 이들과 함께 문화상품을 만드는 데 의미가 있어요. 그리고 중요한 건 예술가들이 떠나지 않고 이곳에 남는 거죠.”
예술가들이 심은 문화가 사라지지 않고 지속가능해야 한다는 것이 시장 프로젝트의 관건이다. 소위 프로젝트가 끝나면 자본과 예술가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마련이다. 또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건물주는 건물세를 올리는 등 부작용을 생겨 예술가들이 어쩔 수 없이 떠나기도 했다.
이 단장은 “시장 상인들과 함께 연대하는 게 제일 중요해요. 젊은 상인들을 끌어오는 전략을 생각하고 있어요. 얼마 전 인터넷 동호회 ‘맘스마켓’과 시장 안에서 야시장을 열었어요. 야시장을 열면서 공연도 했죠. ‘토요일토요일은 즐거워’라는 프로그램이었어요. 15회 정도 ‘생쇼’라고 해서 주민노래자랑과 예술가들의 공연도 펼쳐졌죠. 먼저는 소통하고 난 뒤 상인들과 프로그램을 같이 하자고 해야죠”라고 말했다.
예술가와 예술이 남아야 한다
상인들의 문화생활이 중요하다는 것. 그래서 북부시장에 들어간 예술가들은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통해 상인들의 숨은 끼를 찾아주려고 한다. 결론은 문화가 있는 시장에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머문다는 것이다. 커뮤니티 공간인 허니살롱이 문을 닫지 않으려면 예술가들 또한 시장에 남을 만한 이유를 찾아야 한다.
이 단장은 “1년 프로젝트는 너무 짧아요. 적어도 2년 이상 진행했을 때 변화를 느낄 수 있어요. 원도심 활성화, 마을만들기, 순환경제 만들기 등 다양한 사업들이 예술가와 문화를 매개로 일을 풀어가려고 해요. 키워드는 지속가능성이 확보돼야 한다는 것이죠”라고 설명했다.
전주 남부시장은 ‘청년몰’이라고 해서 젊은 상인들을 유치해 관광명소가 됐고, 광주 대인시장은 빈 점포에 예술가들이 들어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결과적으로 시장 활성화를 꾀했다. 청주에서는 가경터미널시장에서 4년여의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가경터미널 시장에는 황명수 작가가 이곳에 남아 목공예 공방을 운영하고 있고, 공연단체 마중물이 시장 내에서 연습공간을 유지하고 있다. 상인들로 구성된 풍물, 난타, 밴드 동아리도 활동 중이다. 커뮤니티 카페였던 다정다방은 상인회에서 운영하기로 했다.
전국적으로 시장 프로젝트 유행 왜?
시장 활성화 효과 검증받았기 때문
지원 후 제3자에 의한 점검 필요해
시장 프로젝트가 전국적으로 유행이다. 2010년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사업(이하 문전성시)가 올해로 막을 내렸지만 이후 지자체 차원에서 추진하는 곳들이 여럿이다. 도내에서는 청주 북부시장과 제천 내포시장에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중소기업청에서는 문화관광형 시장사업을 진행한다. 올해는 제천 역전한마음 시장과 약초시장, 괴산시장과 청천시장, 영동시장 등이 사업대상자로 선정됐다. 중소기업청에서는 향후 2~3년간 예산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이름은 다르지만 내용은 비슷하다. 시장에 예술가를 투입시켜 문화로 활성화를 꾀하겠다는 것이다. 이광진 북부시장 PM단장이자 시장문화예술공동체 있소 대표는 “시장이 문화를 통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거죠. 시장 상인들의 마인드를 바꾸는 데는 외부 자원의 개입도 필요해요. 시장의 가치는 깨끗하고, 편해야 한다는 것에서 시장에서 이런 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잖아요. 시장의 가치를 확장시키는 거죠”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시장 프로젝트가 또한 공공미술프로젝트 형식을 띄면서 시장의 겉모양만 바꿀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사업 이후 제 3자에 의한 평가도 중요해지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