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이 시험에 들게 하는 교육

권혁상 편집국장

2013-07-17     권혁상 기자
청주 S고등학교가 지난해 1학기말 시험을 치르면서 학생 20명의 답안지를 분실해 재시험을 본 것으로 드러났다. 시험 감독교사의 부주의가 빚은 있을 수 있는 촌극이다. 하지만 교사의 문제 출제 오류로 모두 정답으로 처리하거나 복수 정답으로 처리한 사례도 발견됐다.

물론 교사도 사람인 이상 잠시 착각에 의해 잘못된 문제를 출제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수 학생을 평가하는 시험문제는 출제교사 이외에 다른 교사들의 검증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상식적인 절차가 생략됐다면 교사 개인이 아닌 학교시험 시스템의 문제로 볼 수밖에 없다.

이런 당연한 시스템이 작동하지 못할 때 출제 오류라는 사고가 반복해서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문제를 잘못 만든 교사 책임만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고 본다. 상호검증이라는 시스템이 작동하지 못한 이유를 찾아 개선해야만 재발을 막을 수 있다. 필자가 아는 모교사는 이번 사태에 대해 “그냥 문제집에서 추려서 냈으면 그런 일이 없었을 텐데, 직접 출제하려다 보니 실수한 것 같다. 학교시험이 많다보니 직접 출제하는 교사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험문제는 마땅히 해당 교사가 만들어내야 한다. 하지만 시험이 잦아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문제 출제는 온전한 창작작업이고 응용문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하지만 우리 교육현장이 교사들의 창작작업과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일까?

아마도 많은 교사들은 자체 학교시험보다 다른 학교와 성적이 비교 되는 학업성취도 평가(일제고사)에 혼신을 쏟을 것이다. 학생들의 점수가 곧 교사들의 교육능력 점수가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교과부는 수능시험 성적까지 학교별로 공개해 전국 고교를 줄세우기 하고 있다. 교육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수능 성적 공개를 강행한 것은 학교와 학생을 살인적인 경쟁 구조 속으로 밀어넣겠다는 동기밖에 없다.

기초학력 미달 학생을 지원한다는 학업성취도 평가 시험도 이명박 정부가 지역별ㆍ학교별로 성적을 공개하면서 취지가 변색됐다. 지역간ㆍ학교간 점수경쟁이라는 기형적인 형태로 변질돼 문제풀이식 파행수업, 부정행위 조장과 성적 조작과 같은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심지어 청주 모중학교에서는 시험감독 교사가 답안을 불러주고 우등생의 시험지를 들어 운동부 학생에게 보여준 혐의로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반 학생 33명 가운데 19명은 ‘교사가 답안을 불러주는 것을 듣지 못했다’고 진술했기에 집단 부정행위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진실과 거짓속에 33명의 아이들은 평생 씻지못할 마음의 상처를 안게 됐다. 순수한 학력평가가 아닌 줄세우기식 점수평가를 위한 시험제도가 빚어낸 슬픈 우화다.

결코 학교시험을 없애자는 얘기가 아니다. 잦은 시험, 전국적인 줄세우기 일제고사는 개선해야 학생, 교사, 학부모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일제고사가 아닌 표집(標集)방식으로도 학업성취도는 충분히 측정할 수 있다. 학생을 옥상으로 떠밀고 교사들을 학원강사로 내모는 시험제도를 수술대에 올려야 할 때가 됐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