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경영하는 것이 제일 중요해요, 내가 곧 브랜드니까요”
유학파 경영학 교수에서 플라멩꼬 강사가 된 한혜선 씨
플라멩꼬는 스페인 춤이다. 뼛속까지 플라멩꼬를 즐기는 스페인 사람들은 일상에서 거리에서 이 춤을 춘다. 아직까지는 플라멩꼬가 낯설다. 한혜선(41)씨는 현대백화점 충청점에서 플라멩꼬를 일주일에 2번 가르치고 있다. 사실 그는 현대백화점 충청점에서 강의 제의가 왔을 때 일언지하 거절했다. 춤 대신에 처음 3개월간 그는 일본어를 가르쳤다.
남편과 함께 2000년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경영학 학부와 석사과정을 밟은 그에게 플라멩꼬는 개인적인 취미로만 아껴두고 싶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단법인 한국플라멩꼬협회에서 역으로 청주에 있는 한혜선씨를 강사로 추천했고, 이번에는 인연이다 싶어 거절하지 못했다고 한다.
플라멩꼬 의상은 꽤 화려하다. 머리에 꽃 모양의 화려한 헤어핀을 꼽고 만난 그는 춤을 즉석에서 보여줬다. 캐스터네츠, 부채, 망토 등이 춤의 도구가 된다.
한 씨는 춤과의 인연이 사실 꽤 오래전이다. “어릴 때부터 무용을 했어요. 현대무용, 발레, 한국무용을 공부하다가 집안 사정으로 인해 중학교 3학년 때 그만두게 됐죠. 무용선생님이 꿈이었는데 포기하고, 그냥저냥 공부해서 배화여전 비서학과에 들어가게 됐어요.”
그는 여행사에서 잠시 일하다가 결혼이후 남편의 박사과정 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1년간 어학연수를 한 뒤 한 씨는 일본 리츠메이캉(임명관대) 대학교에서 경영학 학사와 석사과정을 6년 동안 밟게 된다. “서비스 일을 하다보니 기업의 경영마인드에 관심을 갖게 됐죠. 그러다가 자산의 본질은 회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경영학 중에서 회계학을 전공하게 됐어요.”
긴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올라와서는 우송대에서 회계를 가르치는 교수가 됐다. 하지만 학교 생활에 답답함을 느꼈고, 주말마다 플라멩꼬 무대에서 공연하는 게 활력소가 됐다. 플라멩꼬를 처음 접한 건 일본에서였다. “친구의 언니가 플라멩꼬를 15년 정도 추고 있었어요. 플라멩꼬 전문 카페도 엄청 많고요. 가난한 유학생인지라 비싼 수강료를 내고 플라멩꼬를 배울 수는 없었어요. 공부하기도 바빴고요. 한국에 돌아가면 꼭 플라멩꼬를 배우겠다고 생각했죠.”
한국에 와보니 서울에 유일하게 플라멩꼬를 가르치는 학원이 있었다. 한국플라멩꼬 협회는 2009년 창립된다. 그곳에서 플라멩꼬를 본격적으로 배우면서 잊고 있었던 춤에 대한 열망을 깨웠다. 그러면서도 갈등은 더 커졌다.
“일본에서 지도교수가 박사과정을 밟으라고 계속 권유했죠. 같이 고민하던 친구들 가운데는 박사과정을 밟고 정교수가 되기도 했어요. 춤은 개인적인 취미로만 갖고 가고 싶은데 두 마리 토끼를 잡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대학 4년간은 아르바이트 하면서 공부를 했고, 석사과정은 일본로타리 장학금을 받고 다녔어요. 일하면서 정말 독하게 공부했기 때문에 포기하기가 쉽지 않았죠.”
그는 플라멩꼬를 통해 억눌린 감정을 토해내고, 비로소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플라멩꼬는 가벼운 춤이 아니에요. 스페인 남부지방인 안달루시아에서 탄생한 춤은 집시들에게 전파되면서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죠. 우리나라 판소리와 비슷한 부분이 있어요. 판소리 할 때 추임새를 넣잖아요. 플라멩꼬도 마찬가지에요. 그런 걸 ‘할레오’라고 해요.”
플라멩꼬를 통해 자기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고, 그 힘이 발산된다고 한다. 단순히 플라멩꼬를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그는 오페라 무대에 서기도 했다. 플라멩꼬로 오페라 카르멘을 연기하는 것이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맡기고 싶어요. 그동안 공부냐 춤이냐를 놓고 너무 많이 갈등했거든요. 노력한 것은 사라지지 않고 제 안에 남아있다고 봐요. 박사는 예술경영 쪽으로 해볼까 생각만 하고 있어요.”
일본어 통번역가로도 활동 중인 한혜선 씨. 인생은 정해진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 예측불가능함은 늘 모험을 낳는다. 한 씨는 판소리와 플라멩꼬를 함께 무대화하는 작업도 구상중이다. 그는 “나를 경영하는 것이 제일 중요해요, 내가 곧 브랜드니까요”라며 학자다운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