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또 한 번 ‘족집게 표심’

직선제 부활 13대부터, 6번 연속 당선자 적중
70%이상이면 야권 유리 예측, 완전히 빗나가

2012-12-20     이재표 기자

충북의 표심이 다시 한 번 대선승부의 과녁을 관통했다.

12월19일 실시된 18대 대통령선거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19일 1시 개표율 95% 상황에서 1501만4615표를 얻어   51.7%의 득표율로, 1392만7415표(47.9%)를 얻는데 그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누르고 새 대통령에 당선됐다.

▲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당선으로 건국 이래 첫 여성대통령이 탄생했다. 충북은 직선제가 부활한 13대 이후 실시된 6차례 대선에서 모두 당선자를 지지하는 족집게 표심을 보였다. 이번 대선에서는 지역구도와 함께 세대별 표심이 힘을 발휘했다. 사진은 이번 대선 청주유세 현장.


박 당선자는 충북에서도 같은 시간 개표가 마무리된 상황에서 51만8442표(56.2%)를 득표해, 39만8907표(43.3%)에 머무른 문 후보를 압도적 표차로 이겼다. 충북은 이로써 1987년 6.10민주화운동의 성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이후 치른 6차례 대선에서 모두 당선자를 맞히는 ‘족집게 표심’을 재현했다.

충북은 유권자 비율이 3%에 불과해 사실상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충북의 선택이 곧 ‘캐스팅보트’라는 과찬(?)을 듣게 된 것은 15,16대 대선에서 충북이 지지한 후보가 예상을 뒤엎고 당선됐기 때문이다. 사실 노태우 대통령을 뽑은 13대 대선이나 김영삼 대통령을 뽑은 14대 대선, 그리고 역대 최대 표 차로 이명박 대통령을 당선시킨 17대 대선은 결과가 뻔한 선거였다.

이에 반해 김대중, 노무현 등 민주당 계열(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 대통령을 탄생시킨 2차례 대선은 표 차가 각각 39만여표(1.6%p), 57만여표(2.3%p)에 불과했다. 충북은 보수적 성향이 강하다는 통념을 깨고 박빙의 승부로 전개된 2차례 선거에서 모두 당선자를 맞힌 것이다. 물론 이같은 반전에는 DJP(김대중·김종필·박태준)연합 등 정치구도의 변화가 원인으로 작용했다.

캐스팅보트의 원래 의미는 여야가 동수인 상황에서 의장이 행사하는 한 표를 일컫는 것이다. 따라서 충북의 선택을 승부를 판가름하는 캐스팅보트로까지 격상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도 적지 않다. 그러나 충북의 표심이 전국의 표심을 읽는 ‘바로미터’라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는다. 이는 지역구도로 갈린 영·호남이나 보수정서가 강한 강원권과 달리 충북의 민심이 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충청의 딸’ 정서 입증

그러나 이번 대선의 전국적인 판도와 상관없이 적어도 충북의 표심이 박근혜 당선자에게 쏠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충북의 유권자들이 박 당선자의 외가가 옥천이라는 점 때문에 어느 정치인에 비해서도 높은 친밀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 당선자 역시 충청권을 방문할 때마다 자신을 ‘충청의 딸’이라고 자칭하며 지역연고를 강조했다. 박 당선자가 공식선거운동 첫날인 11월27일 대전역에서 첫 유세를 가진데 이어 연이틀 충청권 표밭을 누빈 것도 대구·경북과 함께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중원에서부터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됐다.

박 당선자는 각종 현안과 관련해서도 충청권에 공을 들였다. 2005년 당 대표 시절 호남고속철 분기역으로 오송역을 당론수준에서 확정했고, 세종시 수정안을 밀어붙인 이명박 대통령과 달리 원안에 힘을 실어 충청권 민심을 잡은 것이 그 예다.

새누리당 충북도당은 박 당선자의 당선이 확실시 된 19일 밤 11시쯤 성명을 내고 “도민 여러분들의 큰 성원에 엎드려 감사드린다”면서 “이번 대선에서 새누리당과 박 후보에게 보내주신 관심과 애정을 반드시 보답하겠다”고 밝혔다.

도당은 또 “앞으로 충북의 새로운 도약과 힘찬 전진을 위해 여야를 떠나 앞장서겠다”며 “대통령 당선인과 함께 충북의 현안을 해결하고 도민 여러분들의 가려운 곳을 제대로 긁어주는 시원한 정책으로 보답할 것”이라고 약속하기도 했다.

토론회 적어 자질·정책 검증 부족

이번 대선은 역대 어느 선거에 비해서도 흥행요소가 풍부한 선거였다. 2007년 17대 대선 이전부터 유력한 대선후보였던 박 후보가 철벽처럼 유지해왔던 대세론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졌기 때문이다. 그 시발점은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후보 자리를 양보한 안철수 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등장이다. 안 전 원장이 무소속 후보로 선거판에 뛰어들면서 박 후보의 대세론은 그야말로 전설이 됐다.

문제는 무소속 후보로 조직도, 정치경험도 전혀 없는 안 전 원장이 박 후보와 맞장승부를 벌일 수 있냐는 것이었다. 민주당은 다자구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후보를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9월16일 경선을 통해 문재인 후보를 확정했다. 결국 정권교체를 위해 안철수 무소속 후보와 야권 후보단일화의 길이 모색됐고, 야권은 “양자구도로 가면 해볼 만하고 다자구도에서는 절대 불리하다”는데 뜻을 모았다. “이기기도 어렵지만 지기도 쉽지 않다”는 분석이 집권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했던 것.

그러나 안철수 전 후보와 ‘통 큰 단일화’는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11월6일 후보 단일화라는 큰 틀에는 합의했으나 단일화를 위한 설문조사 항목을 두고 대립했던 것. 결국 양측은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11월23일 안 전 후보가 “후보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하면서 문 후보의 입지가 크게 흔들렸다. 비록 안 후보가 뒤늦게 지원 유세에 나서기는 했지만, 투표 독려를 권유하는 정도였고 문 후보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는 이뤄지지 않았다.

선관위가 주최한 3차례 공식토론회 외에는 방송토론회가 열리지 않은 것도 이번 대선의 변수였다. 박 당선자가 “일정이 바쁘다”는 이유로 토론에 응하지 않음에 따라 유례없이 공식토론회만 개최된 것이다. 그만큼 박 당선자는 토론에서 수세였다. 민주당은 16일 3차 토론을 기점으로 지지율이 수세에서 우세로 뒤바뀌는 이른바 ‘골든크로스’가 일어났다고 장담할 정도였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골든크로스가 일어나기에는 시기적으로 너무 촉박했다.

토론회 과정에서 부각된 또 하나의 변수는 결국 후보를 사퇴한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였다. 이 전 후보는 토론회에서 공공연히 “박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다”고 할 정도로 박근혜 저격수를 자임했고, 실제로도 박 당선자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지나치게 공격적인 태도로 보수층의 반감을 사기도 했지만 그의 표현대로 박 당선자의 ‘민낯’을 보여주는 데는 성공했다.

이 전 후보와 통합진보당은 4.11총선 당시만 해도 이번 대선을 겨냥한 야권연대의 든든한 한 축이었다. 그러나 총선 직후 당내 경선부정과 관련한 내분에 휩싸인 데다, 보수진영의 종북공세에 부닥쳐 존립기반을 크게 상실한 상태였다. 문 후보조차도 “4.11 총선 당시에는 통합진보당과 연대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이 전 후보와 통합진보당을 밀어내는 양상이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이 전 후보가 막판 후보사퇴를 결정하고 암묵적으로 문 후보 지지를 선언했지만 통합진보당이 눈물로 보탠 1% 안팎의 지지도 대세를 뒤엎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여야 투표율 변곡점 예측 모두 틀려

이게 끝이 아니다. 선거 최후, 선거 최대의 변수는 투표율이었다. 여야는 각각 승리를 판가름할 변곡점을 투표율 73%와 71.5%로 봤다. 여권은 “투표율이 73%를 넘지 않으면 자신들이 승리”하고, 야당은 이에 반해 “71.5%만 넘어도 야권이 이긴다”고 내다봤다는 것이다. 그러나 투표율 잠정집계가 75.8%에 달해 여야가 예측한 변곡점보다 훨씬 높았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여권으로서도 뜻밖의 낙승을 거둔 셈이다.

당초 투표율 70%대 초반을 변곡점으로 본 것은 16,17대 대선결과를 분석한데 따른 것이다. 16대에서 57만여표 차의 신승을 거둔 노무현 대통령은 1201만표를 얻었다. 이에 반해 이에 반해 역대 대선 최대인 530만여표를 이긴 이명박 대통령은 1149만표를 얻는데 그쳤다. 16대 대선의 투표율이 70.8%, 17대 대선의 투표율이 63.0%라는 것을 고려할 때 결국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의 패배는 당내 분열로 지지자들이 투표를 거부했거나 불리한 판세를 고려해 투표를 포기한데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 투표율이 올라간다면 이는 곧 민주당의 추격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투표율이 지난 16대 대선 정도만 되면 야권의 승리를 점칠 수 있다는 게 선거전문가들의 예측이었다.

전문가들의 일관된 예측이 보기 좋게 빗나간 것에 대해서는 보다 차분한 분석이 필요해 보인다. 현재로서는 이번 대선 결과가 20~40대와 50대 이후의 표심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세대별 투표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급속하게 진행된 초고령화사회에 따른 연령별 분포를 투표율 변곡점에 반영하지 않은데 따른 결과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20대 이하 유권자는 10년 전인 2002년 811만명에서 올해는 738만명(전체 유권자의 18.1%)으로 73만명이 감소했다. 이에 반해 50대 이상 유권자는 10년 전에 비해 무려 550만명 정도 증가했다. 50대가 777만명(19.2%), 60대 이상이 841만명(20.8%)로 전체 유권자의 40%를 차지한 것이다.

결국 지난 대선의 투표율, 득표율만 고려해 변곡점을 잡은 여야의 예측은 모두 빗나갈 수 없었다는 얘기다. 이긴 여당도, 야당도 뜻밖의 결과지만 여는 웃고, 야는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