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검찰사태, 10년을 회고한다
청주지검, 비판기사 게재한 <충청리뷰> 전방위 보복 수사
서영제 검사장 범도민대책위에 사과, 책임진 검사는 없어
2002년 10월 청주의 가을은 그 어느 해보다 뜨거웠다. 충청리뷰 비판보도에 대한 청주지검의 보복수사에 항의하는 열기가 한달간 지역을 들끓게 했다. 신문사 대표 구속으로 시작된 검찰의 보복수사는 대학총장 구속으로 번져갔다. 하지만 법원 판결을 통해 신문사 대표는 일부 무죄, 대학총장은 전부 무죄로 풀려났다. 10년전 청주를 떠들썩하게 했던 검찰의 ‘지역언론 토착비리 의혹’은 결국 ‘무소불위’ 대한민국 검찰의 실상을 드러내는 촌극으로 끝이 났다. 검찰개혁에 대한 여전한 희망으로 10년전 그때 그 사건을 정리해 본다.<편집자 주>
2002년 10월초 충청리뷰 편집국에 긴박한 소식들이 날아들었다. 당시 윤석위 대표의 개인회사와 주주 관련회사에 대한 청주지검의 내사가 포착된 것이다. 청주시와 충북건설협회에 해당 회사와 관련된 공사수주 및 계약 내역 자료 일체를 제출할 것을 검찰이 요구했다. 편집국은 한달 전인 9월 청주지검 수사관행에 대한 비판기사 보도직후 부부장급 이상 검사들이 대책회의를 한 것으로 확인했다. 결국 비판보도에 대한 보복수사로 단정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청주지검을 자극한(?) 기사의 제목은 ‘지방검찰 알아모시기’란 제목의 해설기사였다. 지역의 일부 인사들이 검찰 줄서기를 하고 있으며 ‘형사 정보원’ 역할까지 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청주가 유독 줄서기 관행이 유별나며 거명되는 인사들을 비실명으로 보도했다. 지역 검찰 입장에서는 언론에서 처음 접해본 비판내용이었다.
검찰은 서류조사에 머물지 않고 곧바로 대대적인 ‘먼지털이식’ 수사를 전개했다. 도내 12개 시·군 공보담당 공무원을 청주지검으로 소환해 충청리뷰 광고게재 경위를 추궁했다. 주말에 불려간 공무원들은 ‘광고경위 자술서’를 쓰라는 검찰의 요구에 울분을 삭여야 했다.
이어 윤석위 대표에 대한 전격적인 인신구속 작업을 벌였다. 일요일 등산을 마치고 밤늦게 귀가하던 윤 대표는 아파트앞에 잠복중이던 검찰직원에 긴급체포돼 곧바로 청주교도소에 수감됐다. 서원대 공사와 관련된 사건으로 이미 1년여전에 내사종결한 사건을 다시 꺼내 재수사한 것이었다. 윤 대표의 건설회사가 철거업체로부터 받은 3000만원에 대한 것인데, 회사측은 철거후 뒷정리 공사대금이란 주장이고 철거업체는 공사소개 사례비라고 주장하는 상황이었다.
이어 광고를 게재한 기업체 관계자들이 검찰에 줄소환됐고 심지어 수원교도소에 수감중이던 지역 건설업체 대표를 수원지검으로 불러내 광고게재 경위를 조사하기도 했다. 당시 편집국 전화상으로 확인된 업체가 20곳이 넘었고 막판에는 십만원 단위의 광고를 낸 음식점 업주까지 소환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이미 약속된 신문광고까지 취소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검찰의 전방위적인 수사에 대해 충청리뷰는 언론탄압으로 규정, 대시민 기자회견을 갖고 사무실에서 철야농성에 돌입했다. 또한 지역시민단체는 범도민대책위원회를 꾸려 청주지검앞 1인 시위를 비롯해 청주시내 가두집회를 시작했다. 충청리뷰는 창간 8년만에 광고가 전무한 ‘백지광고’ 사태를 맞게 됐다.
검찰의 서슬이 시퍼런 상황에서 배짱좋게 실명광고를 게재할 회사는 없었다. 10월 중순부터 백지광고가 실리기 시작하자 오히려 시민들의 격려전화와 함께 개인 의견광고가 접수되기 시작했다. 몇만원에서 수십만원까지 검찰 골리앗과 싸우는 다윗 언론을 돕자는 의견들이 확산됐다.
‘눈먼 검찰에게 다시 더욱 큰 독립언론의 힘을 보여주세요’ ‘충청리뷰! 너마저 배신하면 이민 갈꺼야~’ ‘검찰 사망진단서 발급요청’ 등 다양한 내용의 작은 박스광고가 모아졌다. 한호에 20~30개의 의견광고가 실려 역설적으로 평소 광고 수주액을 능가하는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범도민대책위원회와 충청리뷰 직원들은 서울 검찰청앞에서 2차례에 걸쳐 상경시위를 벌였다.
시민들의 여론에 비등해지자 일부 지역 매체와 중앙언론사의 취재보도가 시작됐다. 이듬해 KBS는 사회 개혁 프로그램인 <한국사회를 말한다>란 프로에서 대한민국 검찰 문제를 다루면서 한 사례로 충청리뷰 사태를 집중방영하기도 했다.
충청리뷰 광고주에 대한 수사가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검찰은 11월들어 서원대의 새천년관 신축공사에 칼끝을 겨눴다. 당시 김정기 총장이 L건설과 공사계약을 하면서 윤석위 대표의 회사에 하도급을 주도록 해 배임행위를 했다는 혐의였다. 김 총장은 전격구속됐고 입학시즌을 맞은 서원대는 큰 혼란에 빠졌다. 충청리뷰는 검찰의 부당한 수사에 맞서 직권남용 혐의로 당시 서영제 검사장을 비롯한 강경필 부장, 온성욱·김도훈·전훈일 검사를 형사고발하고 손해배상 청구소송까지 제기했다.
이듬해 1월 청주지법의 1심 재판결과는 검찰의 수사가 얼마나 부실했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재판부는 김정기 총장의 업무상 배임혐의에 무죄를 선고했고 윤석위 대표는 업무상 배임수재 혐의는 무죄, 철거업체로부터 받은 3000만원은 유죄를 인정,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언론사 대표와 대학총장의 커넥션으로 엮어 지역을 들썩하게 했던 사건은 한편의 코미디로 막을 내리게 됐다.
2월들어 서영제 검사장은 충청리뷰와 범도민대책위측에 비공식 사과의사를 밝혔고 청주시내 한 음식점에서 회동이 이뤄졌다. 당시 서 검사장은 “주임검사가 혐의점이 뚜렷하다고 보고하는 상황에서 믿고 맡길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지역 여러분들께 부담을 드려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이에 충청리뷰는 검찰에 대한 고소를 취하했고 사상 초유의 청주 검찰사태는 마무리됐다. 편파·보복수사에 대해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상태에서…….
검찰사태, 그때 검사들 어떻게 지내나
10년전 충청리뷰 기획수사를 지휘하고 수사에 동원됐던 검사들의 2012년 근황을 확인해 봤다. 먼저 서영제 검사장은 당시 노무현 정권 출범과 함께 서울지검장으로 영전됐다. 2005년 대구고검장을 마지막으로 옷을 벗은 서 전 검사장은 대형로펌 변호사로 변신했다. 2006년 자신의 한솔제지 사외이사 취업을 제한한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의 결정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검사 재직시 한솔제지 관련 사건을 관할했기 때문에 제동이 걸린 것인데 이의를 제기한 것.
충청리뷰와의 취재통화에서 “검사들이 외부 환경에 대해 둔감한 편이다. 해당 사건이 범죄가 되느냐, 안되느냐에 몰입하다보면 생기는 일인데……. 무죄판결에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이후에 김도훈 검사가 잘못됐다는 얘기도 들었고, 10년이 됐지만 아쉬움이 많은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수사 책임자인 강경필 부장은 2009년 검사장으로 승진돼 현재 울산지검장으로 재직중이다. 강 검사는 서울고검 송무부장 재직시 정부를 상대로 한 4대강 소송을 심리하고 있는 서울행정법원장과 재판장 집무실을 찾아가 소송의 조속한 진행을 요구한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기도 했다.
온성욱·전훈일 검사는 개인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고 김도훈 검사는 2003년 양길승 사건의 몰카 주범으로 기소돼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출소후 서울 회계법인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기독교 신앙간증 활동도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