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왜 관심이 없는 거죠. 모든 걸 바꿀 수 있는 키워드인데요”

‘경제민주화를 위한 동행’ 이인선 대표

2012-10-11     박소영 기자

‘경제민주화를 위한 동행’ 이인선 대표(49)의 꿈은 어릴 적부터 정치인이었다. 남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고, 사람을 휘두르는 걸 즐기는 못된 버릇이 있다고 우스개 농담을 던지지만 그는 여전히 ‘정치’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사람들은 왜 정치에 관심이 없는 걸까요? 모든 재화와 서비스를 결정하는 게 바로 정치인데요. 전 권력을 가지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정치인이 여전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정치인의 꿈을 펼치기 위해 대학과 대학원에서 정치외교를 전공했다. 2008년 4월 총선에서는 흥덕갑에 진보신당 후보로 출마도 했다. 공식선거일 4일전 쯤, 민주노동당이 진보신당과 분당된 뒤 얼마 되지 않아 그는 기꺼이 후보가 됐다. 어려운 자리였다. 당원들조차 분당된 것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었다. 지지율도 미약했다.

“역대 진보후보들 가운데 가장 초라한 후보가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출마했던 것이 개인적으로는 손해였을 지도 몰라요. 어쨌든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선거였고, 진보정치운동이 갖고 있는 이상과 사람들의 생각이 차이를 확인했죠.”

2008년은 그렇게 그에게 급박하게 돌아갔다. 그해 2월 경제민주화를 위한 민생연대가 민주노동당 특위로 발족했고, 2008년 민주노동당에서 진보신당으로 분당, 4월에 총선 출마, 그리고 8월에 이씨는 경제민주화를 위한 민생연대 충북지부 사무실을 냈다.

이씨는 총선에 떨어진 후 좀 더 서민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됐다. 2000년대 카드대란으로 개인파산자가 생겨났고, 당 차원에서 대부업법 개정 운동을 하면서 성과도 쌓여있었다.

1997년부터 2002년 10월까지 대부업에 대한 이자율을 규제하는 조항이 없었다. 97년 IMF로 인해 실직자가 된 이들은 고금리 사채를 쓰면서 원금보다 수십배의 이자를 물게 됐지만 대책이 없었다. 현재 대부업의 이자율을 2002년 최대 66%로 규제한 이후 꾸준히 내려가고 있다.

그는 올해는 민생연대에서 ‘경제민주화를 위한 동행’으로 독자적인 간판을 달았다. 하지만 2008년부터 지금까지 해오던 일은 크게 변함이 없다. 금융, 주거, 노동상담을 해주고 아파트 거주자를 위한 커뮤니티를 지원하는 일이다. 특히 신용회복상담을 통해 파산신청자들을 도와주고 있다. 지금도 한 달에 20여명이 찾아온다. 파산신청은 변호사 및 법무사 사무실을 통해서 하게 되면 약 80만원~300만원의 비용이 들지만 이씨를 찾아오면 무료로 받을 수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비공식적인 노동시장 근로자, 한부모 가정 등이 주로 상담을 받으러 오죠. 빚을 진 이들이 택할 수 있는 마지막 길은 파산신청이에요. 그런데 이들을 도덕적으로 해이하다고 몰고 가는 건 문제가 있어요. 파산신청을 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사회구조적인 게 더 크기 때문이죠.”

경제민주화를 위한 동행은 일차적으로 파산신청자에 대해 맞춤상담을 한 후, 관련 서류를 챙겨준다. 이후 법률구조공단을 통해 법원에서 면책을 받도록 일련의 과정을 도와준다. 지금까지 충북에서 면책을 받은 사람은 80명이다. 면책률은 보통 95%정도다.

경제민주화를 위한 동행은 우암동 224-2번지 행복빌딩 1층에 터를 잡고 있다.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되는데 아직까지 상근인력을 둘 형편이 되지 않아 2명의 활동가들이 이틀에 한번 꼴로 출근한다. 이씨 또한 지난해부터는 충북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인증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 경제민주화가 핵심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는 것에 대해 반가워하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민생은 곧 노동이에요. 우리사회는 노동을 불온시하고 있죠. 노동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해요. 노동권을 강화하는 것,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는 사회가 결국 경제민주화를 실현시킬 수 있죠.”

진보정치운동은 지금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지금은 당을 잠시 떠나있지만, 한때 민주노동당 사무처장으로 일했고, 진보신당의 총선 후보로도 출마한 적이 있는 그다. “진보정치가 쪼개진 것이 안타깝긴 한데, 그렇다고 성과들이 사라진 것 아니잖아요.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를 진보정당이 가장 먼저 외쳤다는 걸 국민들이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기회가 되면 정치에 또 나올 것이냐고 묻자 그는 “꼭 내가 해야 된다는 생각은 버렸어요. 하지만 앞일은 모르는 거니까, 장담할 수는 없겠죠”라며 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