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이 활자주조 매달려···알고보니 사연있네
이사람/ 국내유일 금속활자장 임인호..“배우겠다는 사람 없어 걱정”
금속활자장 없는 청주시는 생각할 수 없어, 대책 빨리 마련돼야
2012-09-26 홍강희 기자
관람객들은 이렇게 네 식구의 합작품인 직지 밀랍주조법 시연회를 보았다. 이들 가족은 금속활자 주조를 업으로 삼은 사람들이다. 지난 2009년 12월 중요무형문화재 101호 금속활자장으로 지정된 임인호 씨는 고향인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 활자주조공방에서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 그동안 조선시대 활자 48종을 복원했고, 현재 직지 상·하권을 복원하는 중이다. 고인쇄박물관에는 그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글자 새기는 것을 좋아했다. 서울에서 살다 87년 낙향해 글씨 파는 일을 했다. 그런데 96년에 동림 오국진 선생께서 연풍으로 찾아오셨다. 선생님을 만나 서각, 활자 주조의 원리와 기능 등을 배우면서 전수자가 됐다”고 말했다. 동림 선생은 생전에 직지 상·하권과 증도가, 월인천강지곡 등을 복원했다. 전수자부터 시작해 이수자, 전수조교를 거친 임 씨는 오 선생이 타계한 뒤 금속활자장이 됐다. 현존하는 세계 最古의 금속활자본 직지를 인쇄한 충북, 그 곳에서 태어난 사람으로서 직지와 운명적으로 만난 것이다.
이후 임 씨는 직지와 관련된 국내외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전국 유일의 금속활자장으로 이 분야에 관한 한 국가자격증을 받은 그가 직지축제에 가족들을 대동하고 나온 데에는 이유가 있다. 어찌 보면 가슴아픈 일이기도 하다. “작품을 만들어 판매할 수 있는 종목 같으면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건 돈을 내고 배우려고 한다. 하지만 금속활자 분야는 글자를 만들어 팔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아무도 없다. 그래서 아들을 가르치고 있다. 딸은 아직 어려 시키지 않았는데 날마다 보는 게 이 것이다 보니 곧잘 따라 한다”면서 “누군가는 금속활자장 명맥을 이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청주, 직지도시로서의 자존심이 있지
그러면서 “아들에게는 오래전부터 사명감을 가지고 이 일을 해야 한다고 주지시켰다”는 임 씨는 “아들이 다행히 반항하지 않고 따라하고 있다. 문화재과를 선택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내가 고향에서 농사지으며 이 일을 하듯이 아들도 아마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의 아들이 금속활자장 명맥을 잇더라도 그 이후에는 또 어떻게 될까 그것도 걱정이다.
금속활자장이 되기 위해서는 전수자-이수자-전수조교를 거쳐야 한다. 전수자에서 이수자가 되려면 3~5년, 이수자에서 전수조교가 되려면 통상 10년의 세월을 견뎌야 한다고 임 씨는 말했다. 그리고 전수조교에서 금속활자장이 되는 데는 정해진 시간이 없다. 그 만큼 힘든 일이 이 분야이다. 금속활자장이 되면 국가에서 월 130만원, 전수조교에게는 월 70만원을 지원한다. 전수자와 이수자 시절에는 한 푼도 받는 게 없다. 그러다보니 사명감 없이는 할 수 없다. 글자 복원 일도 자주 있는 게 아니어서 힘들 게 살아야 하는 건 자명한 일.
내년 4월이면 고인쇄문화전수관이 완공된다.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고인쇄박물관 앞에 건축중인 전수관이 완공되면 금속활자 제조기법 교육과 후계자 양성, 금속활자장의 기능보존을 위한 연구 및 조사활동 등이 이뤄진다. 금속활자장 보유자는 이 전수관을 운영하면서 후계자를 양성하고 기능을 연마한다. 그러려면 이를 배우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나와야 한다.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기술을 연마해도 장인 소리 듣기 어렵고, 설사 장인이 돼도 돈벌이가 어려워 선뜻 배우겠다는 젊은이가 없는 게 전통문화 분야의 가장 큰 과제이다.
금속활자장 없는 청주시는 생각할 수 없다. 직지의 도시 청주시를 설명해주는 것은 금속활자 인쇄술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이런 분야에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금속활자장인 임인호 씨와 청주시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임 씨는 고인쇄문화전수관에서 후계자를 키워야 하고, 청주시는 이를 지원하는 동시에 활자복원사업 등을 통해 직지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춰야 할 것이다.
지난 1998년 미국의 라이프지 등 대부분의 언론들은 “지난 1000년 가장 위대한 기술적인 혁명 100가지 중 1위는 금속활자 발명”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아니라 한국이 14세기에 금속활자를 발명했다고 확실하게 밝혔다. 이 위대한 기술혁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금속활자장이라는 장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당장은 임인호 씨가 충실히 역할을 하겠지만 미래는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