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스스로 해로운 것을 원한다
랜돌프 네스·조지 윌리엄스의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 피터 글루크먼·마크 핸슨의 <문명이 낯선 인간>
소종민 (공부모임 책과글 대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섭취해야 할 음식물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공장을 경유해서 만들어진 가공 식품도 있지만 그 재료는 자연에서 얻은 것에 불과하다. 물론 유화제나 조미료 같은 음식 첨가물들은 자연적 산물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인위적인 것이지만 이미 인체에 유해하다는 판정이 내려져 있어 기피 대상이 되었다. 우리가 늘 먹는 쌀과 물, 채소와 과일, 생선과 고기 등은 일체 자연에서 얻은 것이다.
몸에 탈이 날 때도 인간은 자연에 의존한다. 양약이든 한약이든 약(藥)의 기본 성분은 대다수 식물에서 얻기 때문이다. 동물은 탈이 나면 본능적으로 식물을 먹는다. 우스운 얘기지만 흔히 개나 고양이가 풀을 뜯는 일을 목격하곤 한다.
백석의 시 <절간의 소 이야기> 첫 구절에도 “병이 들면 풀밭으로 가서 풀을 뜯어 먹는 소는 인간보다 영(靈)해서 열 걸음 안에 제 병을 낫게 할 약이 있는 줄을 안다”고 하지 않던가. 사정이 그렇다고 해서 병원을 떠나 심심산골에서 이 풀 저 풀 마구 뜯어먹으며 자연 치유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늘어나지는 않는다. 자신의 몸보다는 마음에 더 의지해 있는 것이 오늘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치료 과정의 험난함을 기꺼이 감수하여 병원에 몸을 기탁해야만 안심되지 않는가.
그러고 보면 병원이 참 많기도 하다. 교회만큼 많은 것이 병원인 듯싶다. 조금만 돌이켜 보면,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우리는 병원에 절대적으로 의존해 있다. 산모가 열 달을 기다리다가 마침내 진통이 오기만 하면 바로 병원으로 향한다.
또 생을 마감하게 된 분들이 마지막으로 의탁되는 곳 또한 병원이다. 병원은 날이 갈수록 일상을 좌우하는 중대하고도 필수불가결한 공공기관이 되어 간다. 판검사 이상으로 대우받는 이들 있다면, 바로 의사이다. 하대(下待)하는 태도와 말투가 비록 거슬리더라도 의사의 진단과 처방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의사의 말 한 마디는 생사여탈(生死與奪)의 힘을 갖는다.
그러나 사회가 병원화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 문명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그 속도에 우리 몸은 너무 느리게 적응한다. 병(病)의 발생은 당연한 것이거니와, 병의 가짓수도 다양할 뿐만 아니라 병의 세력 또한 거세므로 우리의 몸은 24시간, 365일, 아니, 평생 병원에 의해 관리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이반 일리치의 지적 대로 병원이 병을 만들기도 하지만, <문명에 낯선 인간>에 따르면, 이미 초·분 단위로 정교하게 조직되어 있는 밀집된 시스템으로서의 사회 환경과 이에 우리 몸이 적응하지 못하는 ‘어긋남(missmatch)’이야말로 질병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에는 심장병을 앓는 환자와 의사의 대화가 소개된다. “선생님, 제가 만약 유전자 때문에 높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가진 것이라면 식생활을 바꾼들 무슨 이득이 있습니까?” “그런 유전자들은 인간이 진화해 온 정상 환경에서는 전혀 해롭지 않았습니다. 만약 당신이 매일 먹을 것을 찾아서 여섯 시간 또는 여덟 시간 정도를 걸어다닌다거나 당신이 먹는 음식물의 대부분이 복합 녹말로 되어 있다거나 야생 동물과 같은 기름기 없는 고기를 먹었다면 심장병에 걸리지 않았을 겁니다.” … “우리 대부분은 조상들보다 두 배 이상의 지방질과 더 많은 소금, 그리고 설탕을 먹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스스로 해로운 것들을 원하고 있습니다.”
신에 의해서 인간은 완벽한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주장과 더불어 인간은 진화의 정점에 있는 존재라는 주장은 너무나 오랫동안 우리 인간을 착각에 빠뜨려 왔다. 진화 의학의 창시자 랜덜프 네스와 진화생물학자 조지 윌리엄스는 ‘우리 인간의 신체는 물론 아주 정교하지만 동시에 믿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히 어설프게 설계되어 있다’고 말한다.
현대 생물학에 의하면, 진화는 진보를 뜻하지 않는다. 진화된 결과물로 이루어진, 지금 우리의 몸은 자연선택과 적응의 우연적 산물일 뿐이다. 자연은 의도를 갖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목적도 없다. 이토록 어설픈 몸을 만들기 위하여 45억 년이 흐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우리의 몸은 너무나 취약하다.
다만 우리 몸이 지닌 약점을 신석기 시대 이래 임시 처방으로 그때그때 막아낸 결과, 우리 몸은 성공적으로 간신히 면역·방어체계를 갖추었으며 적응력을 지니게 되었다. 문제는 근대 산업문명의 출현이다. 1만 년 넘게 수렵과 채취 그리고 농작으로 유지되어 온 인간의 몸이 지금과는 질적으로 다른 시스템, 즉 공장·학교·감옥·회사·군대 등 폐쇄적인 생산 회로에 갇히게 된 것이다. 오늘의 지식·정보 시스템은 한 발 더 나아가 신체 운동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구성되고 있다. 두뇌·손가락·구강·항문 운동만으로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 환경을 만들었다.
불행히도 질병의 심화는 신문명의 발전과 정비례 관계에 있다. 현대문명은 가히 몸-적대적인 시스템이다. 몸의 자기 치유는 불가능하다.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독립을 꿈꾸었지만 돌이켜보면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역설적이게도 자립 자존의 꿈은 ‘자연’이라는 타자를 배제하고서는 결코 이루지 못할 공상에 불과하다.
신간소개
고도원/ 해냄/ 1만3800원
<고도원의 아침편지>의 저자 고도원의 에세이 <꿈이 그대를 춤추게 하라>. 이 책은 생각만 해도 좋고, 힘들 때면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우는 잊고 있던 꿈, 작아져버린 꿈을 키워가도록 응원하는 70여 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가 ‘아침편지’를 통해, ‘깊은 산 속 옹달샘’에서의 만남을 통해 서로의 꿈을 응원하고 아픔을 다독이던 순간들과 저자에게 또 하나의 인생 학교가 되어줬던 순간의 배움을 오롯이 담아냈다.
셰리 터클/ 청림출판/ 2만3000원
<외로워지는 사람들>은 MIT 사회심리학 교수이자 연구자인 셰리 터클이 오늘날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의 디지털 기기로 네트워크화된 사회의 문제점을 진단한다. 테크놀로지에 열광한 이후 사람들의 모습을 정신분석학적, 사회심리학적, 아동심리학적, 인류학적 등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테크놀로지가 어떻게 사회와 사람들을 재형성하는지를 낱낱이 묘사한다.
월터 르윈/ 김영사/ 1만6000원
이 책은 물리학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뉴턴의 운동법칙, 빨대 실험을 통한 기압의 원리, 무지개를 통해 알아보는 빛의 원리, 현악기와 관악기를 통해 알아보는 공명의 원리 등 간단하지만 흥미진진한 실험을 통해 물리의 법칙을 설명하는 동시에 그의 전문 분야인 엑스선천문학이라는 생소한 분야에 대해서도 생생하게 설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