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류, 가공식품 끊고 ‘지독한 편식’

“그동안 고생 많았다 내 몸아, 비로소 자각하고 있었다”

2012-05-17     충북인뉴스

황민호의 ‘나로부터 생활혁명’②
마을연구소 ‘안남’ 책임연구원


단식은 곡기를 끊는 것이다. 한 마디로 몸을 비우는 것이다. 먹지 않는 것, 이것은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신비하고도 두려운 것이었다. 몸이 탈나지 않을까? 갑자기 어떻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고 쉬이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너무 극단적이라는 주변 여론도 있었고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는 우려 섞인 시선도 존재했다.

하지만, 그냥 단식이 아니라 효소 단식이라는 말에 의지가 됐고 곡식은 아니더라도 채소와 과일이 발효된 자연음료와 함께 한다는 것이 위안이 됐다. 무엇보다 단식은 내가 몸에 대한 공부를 시작한 첫 출발점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효소 단식을 시작하다

앞서 밝혔듯이 1월초 건강검진 결과서는 나한테 청천벽력이었고 충격이었다. 몸무게 108kg에 200에 육박하는 고혈압, 혈당, 중성지방, 콜레스테롤 수치가 다 기준치 이상을 초과했고, 간장, 신장 질환이 의심된다는 의사의 소견이 검은 먹물로 또렷하게 박혀 있었다.

집사람한테 알리기는커녕 건강검진 결과서를 먼저 받아 감추려고 우편함을 자주 열었고 혼자 끙끙 앓았다. 어떻게 하지? 고혈압은 ‘침묵의 살인자’라는데 갑자기 쓰러지면 어쩌지 이런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몸에서 불안한 전조 현상은 조금씩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 늘 찌뿌둥한 몸, 소화불량, 잦은 스트레스로 인한 짜증, 기억력 감퇴, 두통 등 몸의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스스로 이를 치유할 생각으로 끼니 조절을 하기 시작했다. 저녁을 고구마나 바나나로 때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위안에 불과했고 해결책이 될 수는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동료인 백정현 기자가 효소 단식을 제안했다. 마을 가까운 약국에 고혈압을 문의했더니 효소 단식을 권하더라는 것. 탐구심 많은 백기자는 효소 단식에 대해 찾았고 바로 실천에 옮기면서 나한테 같이 하자고 권유했다. 나는 망설였다.

효소가 무엇인지도 잘 몰랐고 무엇보다 단식이라는 말에 겁이 덜컥 났다. 백기자는 혼자라도 하겠다며 1월12일 쯤 먼저 시작했다. 나는 쉽게 용기를 내지 못하다가 백기자와 같이 팔당생명살림에서 유기농채소과일 효소를 5만원(1천미리 2병)에 주문했고, 4일 후 시작했다.

아직 신문사를 다니고 있었고 곧 신문사를 그만두는 것을 아는 후배들에게 단식이란 기실 몹쓸 짓이었다. 송별 회식은커녕 아는 지인들과 저녁 식사도 사실 포기한 셈이다. 그래도 신문사 그만두기 전에 몸 안에 독소를 빼내자는 일념으로 백기자와 의기투합했고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 안남배바우작은도서관 아이들이 어린이 농장에서 직접 재배해 수확한 농산물. 이 농산물로 직접 아이들이 효소도 만듭니다.

처음 맛본 효소, 그 달콤함과 포만감

처음 맛본 효소는 달콤했다. 마치 매실 원액과 비슷했다. 케일, 신선초, 더덕, 솔잎 등등의 약초와 딸기, 토마토, 매실, 대추, 살구, 약호박 등 과일, 당근, 도라지, 취나물, 돌나물, 미나리, 칡, 냉이, 땅두릅 등 30여 가지가 넘는 약초와 채소, 과일, 그리고 브라질에서 직수입한 유기인증 황설탕이 재료의 전부였다. 어떤 첨가물도 들어가 있지 않았고 이름을 알수 없는 이상한 화학물질도 없었다.

브라질에서 설탕을 수입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유기인증 황설탕이라는데 마음을 놓았다. 양평에 있는 두물머리 농장은 농약, 제초제, 화학비료 등 합성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대농이 아닌 소규모 가족농으로 1976년부터 유기농업을 실천하고 있는 역사가 깊은 농장이다.

이 곳에서 5만원을 내고 대지향이라는 효소 두 병을 구입했다. 이 효소는 3년 숙성이 된 것이었고 설탕은 숙성되면서 나쁜 성분이 빠지고 몸에 좋은 과당으로 변한단다.

아무튼 첫 효소의 맛은 달콤했다. 그리고 마치 위 벽을 감싸안는 듯한 포만감을 주었다. 이상하게 배가 고프지 않았다. 효소 단식을 마냥 그냥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단식은 곡기를 끊는 중요한 몸에 대한 실험이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공부가 필요했다. 나는 백기자로부터 ‘나의 단식체험기’(http://ifasting.co.kr)란 사이트를 소개받고 단식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현재 그 사이트는 2007년부터 휴지기에 들어갔다가 다시 활동을 시작한다는 알림 공지가 떴다.

이 곳에는 단식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실제 체험기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다 몸에 대한 놀라운 변화에 대해 서로 소통하고 있었다. 이 사이트를 잘 살펴보면 단식에 대해 이렇게 기술되어 있다. ‘단식은 칼을 대지 않는 수술’이다.

▲ 안남어머니 학교 할머니 학생들이 직접 기른 채소로 자체 요리경연대회에서 요리를 하는 장면.


서양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의 말을 여기서 들어보자. “우리는 단지 그 의사가 활동할 수 있도록 도울뿐입니다. 우리 내부에 있는 자연치유력은 질병을 물리치는 가장 큰 힘입니다. 우리의 음식이 치료의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약은 음식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아플 때 먹는다는 것은 질병을 키우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서양의학의 아버지가 동양의 의식동원(의약과 음식은 근원이 같다는 뜻)을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다. 또 단식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단식은 단식원이나 어느 특정 종교단체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이미 검증되어 왔다. 나의 단식체험기에는 이런 단식에 관한 자료들이 많이 언급되어 있다.

단식의 시작, 구충약과 숙변제거제를 먹고

처음에는 한 5~7일정도 해볼 요량으로 시작했다. 단식하기 하루 전 날 구충약을 먹고 단식을 시작한 날부터 4일 남짓 마그밀이라는 숙변제거제를 구입해 먹었다. 이정도가 나의 단식체험기에 나오는 간단한 단식 실천방법이었다.

그리고 신문사 동료들에게 단식을 시작했다는 것을 알리고 효소원액을 싸 가지고 다니면서 단식을 실천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단식을 하면서 운동을 결코 게을리 하지 말라는 것이다. 최소 한 시간이상 걷기를 실천하라고 했다. 누군가는 그런다. 단식을 하는데 힘들어서 어떻게 운동을 하냐고 일 하는데 버겁지 않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내 경우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러웠고 편안했다. 가끔 배가 고플 때가 있었는데 그럴 경우에는 효소를 조금씩 자주 먹어 배고픔을 달랬다. 하루 세끼 보통 컵에 효소 원액을 물과 함께 마시는 것이 나의 식사의 전부였고 조금씩 배고플 때는 홀짝거리며 더 마시기도 했다.

백기자는 삼일째 되는 날 심한 두통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는 혈관 속 노폐물이 떨어져 나가면서 피가 탁해서 그런 통증이 유발되지만 곧 사라진다고 한다. 나의 경우에는 두통이 수반되지 않았다. 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고 편안했다.

일주일만 하고 끝내려 했는데 몸이 괜찮아 일주일을 더 연장하기로 했다. 1월16일부터 시작한 단식은 올해 민족 최대의 명절인 1월22일부터 24일까지 설에 민족 최대의 고비를 맞았지만 나는 자랑스럽게 극복해냈다.

부모님과 장인장모님도 단식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셨지만 건강하지 못한 내 몸을 바꾸기 위한 스스로의 노력에 응원을 해 주셨다. 아무튼 나는 내가 태어난 이래 설명절에 가장 맛난 음식을 눈앞에 두고도 못 먹는 비극적인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단식을 하면서 가장 놀라운 변화는 이런 기름진 음식들에 대해 먹고 싶은 욕구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나는 갈비와 부침개, 만두, 고추장불고기 등을 엄청 좋아했고 늘 배가 터지도록 먹고 콜라, 사이다 등 탄산음료와 아이스크림을 후식으로 먹곤 했다.

그런데 단식을 하면서 몸에 변화가 서서히 생겼다. 눈 안에 그런 음식이 있어도 동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변사람들은 나의 고요한 단식을 깨트릴까봐 걱정하며 음식을 내보이지 않았지만, 갖은 냄새와 화려한 모양새도 내 눈길을 더 이상 사로잡지 못했다. 설 명절을 무사히 지내고 1월30일 2주간의 단식을 마무리했다. 2주간의 단식 끝에 나는 몸무게를 세자리에서 두 자릿수인 98kg으로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단식의 종료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내 몸의 시작이었다.

처음 밥상을 받고 눈물이 날뻔 했다

단식을 끝내면서 사실 걱정을 많이 했다. 고체 음식은커녕 효소와 물 이외에는 어떤 음식도 입에 대지 않았으니 내가 먹는 방법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갑자기 음식이 들어가면 탈이 나지 않을까? 또 막 먹어버려 원래의 식성으로 다시 돌아가면 어떻게 하지? 이런 고민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래서 이틀 동안은 미음으로 연명했고, 사흘 동안은 야채죽으로 끼니를 때웠다. 이 또한 단식 사이트에서 일러준 대로 했다. 효소보다는 맛이 없었지만 먹을 만 했다. 그리고 운동량을 조금씩 늘리기 시작했다. 자주 걷기 시작했고 산보도 간간히 시작했다.

그리고 2월초 내 조카 기연이가 다니는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학부모 모임이 있어 청원에 갈 일이 있었다. 거기에서 첫 밥상을 맞이했다. 보슬보슬한 현미, 보리밥과 알싸한 김치와 상추겉절이, 청국장 등이 밥상으로 차려져 있었다. 참으로 시골의 소박한 밥상이었고 예전같으면 거들떠 보지도 않았고 뜨는둥 마는둥 했을 터인데 처음 밥알이 씹히던 순간을 나는 잊지 못한다. 정말 눈물이 날 뻔 했다. 한 공기의 밥과 김치, 상추겉절이 등이 정말 맛있었다.

정말 감칠맛나게 꼭꼭 씹어 먹었다. 황홀했다. 2012년 2주간의 단식 이후 38년 동안의 육식의 식습관을 과감히 버리고 채식의 품 안으로 들어선 것이다.

정말 목숨 걸고 편식하자

기실 고혈압에 대한 걱정은 오래됐다. 만성이 돼서 피부에 와닿지 못했을 뿐. 이런 만성이 된 나를 일깨워 준 것은 200에 육박하는 고혈압수치도 있었지만, 2009년 MBC스페셜에서 방영된 ‘목숨걸고 편식하다’ 프로그램이 미친 영향이 크다.

이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의 열화와 같은 호응을 얻어 3편까지 제작되었는데 3편 모두 훌륭하다. 나는 그 프로그램에서 대구의료원에 근무하는 황성수 박사의 지론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단식 이후 채식의 길로 들어서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TV에서 고기, 생선, 계란, 우유, 흰쌀, 보리쌀, 달콤한 것 등 일곱가지와 술, 담배, 커피 등을 아예 먹지 말라고 한다. 술, 담배, 커피는 원래 잘 먹지 않았던 나는 단식 이후에 고기, 생선, 계란, 우유를 과감히 끊기 시작했다. 이 외에도 여타 육류 가공품 및 각종 탄산, 과일음료수, 과자, 아이스크림 등 모든 가공품들은 끊었다.

그야말로 자연식, 지역에 난 농산물로 생식을 하거나 약간의 조리법으로 뎁혀 먹기 시작했다. 정말 목숨을 걸고 편식을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하자 높았던 혈압은 점차 낮아지기 시작했다.

각종 지방과 콜레스테롤 등의 찌꺼기로 몸안의 장기간 소통을 가로막았던 노폐물들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고 깨끗한 피가 원활하게 돌면서 심장을 중심으로 뇌와 간, 위 등 장기가 서로 소통을 하기 시작했고 몸 안의 민주주의가 다시 구축되기 시작했다. 맑고 깨끗한 피가 뇌로 원활하게 공급되니 머리가 맑아졌다.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

그리고 건강과 먹을거리에 대한 책을 구입해 읽기 시작했다. 이 세상 누구보다 가까운 내 몸에 대해 38년이 지난 후에서야 비로소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그 동안 고생 많았다. 내 몸아! 나는 그야말로 자각하고 있었다. 이것은 극기가 아니라 정말로 즐거운 성찰이었다.